[Review] 조선 최대의 악녀로 남은 인물의 재탄생 - 문정왕후 윤씨 [공연]

극단 떼아뜨르 봄날의 리드미컬 궁중 가무 액션 퍼포먼스
글 입력 2021.12.1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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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왕후 윤씨>는 조선의 제11대 왕 중종의 세 번째 아내이자 제13대 왕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를 극적 상상력으로 빚어 연출한 리드미컬 궁중 가무 액션 퍼포먼스 연극이다. 연극은 문정왕후 윤씨의 삶과 그 안에서의 실제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조선 최대의 악녀로 기록된 문정왕후를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내 색다른 재미를 준다.


문정왕후는 조선의 27명의 왕 중 11번째 왕인 중종의 세 번째 아내로 1501년, 17살의 나이에 궁궐에 들어왔다. 5년 뒤인 1506년엔 중종반정이 일어났다. 중종반정은 박원종을 중심으로 신하들이 왕, 연산군을 축출한 사건이다. 신하들은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 이역(중종)을 왕으로 옹립했다. 공신들에 의해 엉겹결에 왕이 된 중종은 연산군의 폐정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각 방면에서 진흥정책을 펼쳤지만, 이는 공신들의 세력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실패했다. 문정왕후는 17살에 궁에 들어온 뒤부터 세력이 엎치락 뒤치락거리며 기묘사화, 작서의 변 같은 사건들이 발생하고 또 반정과 역모가 끊이지 않는 불안한 왕권을 옆에서 지켜봤다.


중종의 첫째 부인인 단경왕후 신 씨는 고모가 연산군의 부인이라는 이유로 공신들의 압박으로 폐위되었고, 둘째 부인인 장경왕후 윤 씨는 조선 제12대 왕 인종을 낳고 6일 만에 사망했다. 셋째 부인이자 연극의 주인공인 문정왕후 윤 씨는 공주만 4명을 낳다가 35세에 어렵게 막내로 아들을 낳았으며 그가 조선 제13대 왕 명종이다.


조선왕조실록 속 문정왕후는 성질이 독하고 질투가 심했다고 기록되었다. 특히 중종이 죽고 난 뒤 인종이 30세에 왕위에 오르고 8개월 만에 원인 모를 병으로 죽었는데, 문정왕후가 생모가 없는 인종을 대신 키우며 그를 원수 대하듯 했고, 몇 번이나 죽이려고 시도했으며 그의 이른 죽음 역시 문정왕후의 독살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이다.


인종이 그렇게 죽고, 문정왕후의 아들이자 조선의 제13대 왕 명종이 왕위에 올랐을 땐 그가 고작 12세였다. 따라서 이후 8년 동안 문정왕후 윤 씨는 명종의 어머니로 수렴청정을 하며 사실상 통치권 행사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65세에 사망했는데 그때까지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왕권을 쥐고 흔들었던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연극 <문정왕후 윤씨>에서는 이러한 그녀의 모습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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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왕후 윤씨>의 연출가는 남성 사대부 중심의 조선 중기에 왕권을 직접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죽을 때까지 지배력을 유지했던 그녀가 그저 나쁘기만 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믿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그녀를 대놓고 미화해보겠다는 생각으로 현명하고 단호한 모습으로 작품에서 새로 그려내었다고 연출 노트에서 밝혔다.


사건과 인물들은 실제이지만, 문정왕후만은 완전히 다른 인물인 것이다. 극에서 그려진 새로운 문정왕후는 어릴 때부터 똑똑했으며 생모가 죽은 인종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살뜰히 보살폈고, 첫 만남부터 인종의 죽음까지 가슴 절절한 교감이 있었다.


명종이 즉위하고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시작한 해에 문정왕후의 친동생 윤원형 일파인 소윤이, 인종의 외삼촌 윤임의 대윤을 제거하며 100명에 달하는 인물을 대규모 유배, 숙청했던 사건인 을사사화가 발생한다. 이후 2년 뒤에 정미사화라고도 불리는 양재역 벽서 사건이 발생하여 남아있는 윤임의 일파들이 숙청당한다.


연극에서는 이를 세치 혀를 휘두르는 주변 인물들에 의해 문정왕후가 어쩔 수 없이 손에 피를 묻힌 사건으로 그려냈다. 이 모든 거대한 역사를 배우 11명과 기타 한 개, 그리고 장구 하나가 그려낸다. 하지만,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과 목소리, 절절한 기타 소리, 그리고 공백 없는 이야기 전개가 무대를 꽉 채우며 관객을 조선 중기 역사의 흐름 속으로 데려다 놓는다.


극이 시작되면 무대의 왼편에서 11명의 배우가 아주 천천히 걸어 나오며 극 중 배경을 한목소리로 전달한다. 배우들이 배경 설명을 읊으며 한정된 움직임을 통해 별다른 음악이나 무대 장치 없이도 극으로 서서히 몰입하게 만들어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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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서 가장 특이했던 점은 1506년 중종반정부터 1565년 문정왕후가 죽기까지 수많은 주변 역사적 인물들을 배우 11명이 모두 돌아가며 맡아 연기하는 방식이었다. 배우 1명당 최소 3역은 맡아 연기했다.

 

그런데도 전혀 정신 사납거나 헷갈리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인물들의 죽음이나 유배를 모두 정확하게 묘사하여 이제 극에서 없어지는 인물이라는 것을 확실히 했기 때문이고 또, 모든 배우가 다른 배역을 연기할 때는 표정이나 목소리, 말투를 완벽하게 바꾸어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특히 17살의 문정왕후부터 65살의 문정왕후까지 한 배우가, 3살의 인종부터 30살의 인종까지 한 배우가 연기하는데,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배우들의 연기가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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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왕후 윤씨>의 대사는 재치 있는 말 표현으로 리듬을 만들며 기타 멜로디와 함께 하나의 소리로 어우러진다. 배우들의 역동적인 액션 또한 박진감 넘치며 스토리를 리드미컬하게 이끌어가며 무대를 꽉 채운다.


조선을 들여다보면 왕의 자리는 철저하게 외롭다. 형제가 많아질수록 왕권에 대한 위협이 커질 뿐이고, 오늘 충성하던 신하가 내일은 배신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정왕후 윤씨>에서도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왕에게 세 치 혀를 휘두르는 인물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손가락 한번 까딱하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것만 같은 어마어마한 권력인 '왕권'을 쥐고도 어떻게 신하들에게 휘둘릴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었던 필자는 신하 역을 맡은 배우 몇 명의 목소리만으로도 왕 자리의 부담감과 위협감을 느끼며 숨이 막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연극은 그런 숨 막히는 자리에서도 문정왕후가 견고한 가치관으로 지배력을 유지한 것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아쉬운 점은 문정왕후가 죽은 뒤 조선이 급속도로 평화를 되찾았다거나 아들 명종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악을 쓰거나 때리는 등 권력을 독점하며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했던 만행들을 모두 알고 연극을 봤던 터라, 그러한 실제 문정왕후의 모습을 모두 잊을 정도로 연극의 스토리 속 새로운 문정왕후가 매력적이고 설득력을 갖췄길 바랐는데, '결국 악한 사람은 문정왕후의 주변 신하들이었다' 정도만으로 표현되었다는 점이었다. 극 중 그녀는 착하긴 하지만, 결국 공신에게 휘둘렸던 지아비 중종과 똑같이 친동생 윤원형에게 휘둘려 그의 뜻대로 움직여준 인물로 표현되었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문정왕후 윤씨>는 무조건 선한 사람과 무조건 악한 사람이 있기보다는 상황의 맥락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행동들이 있다는 점을 연극을 통해 강조했다. 조선 중기를 절제된 표현을 통해 감각적으로 그려낸 연극을 통해 무게감 있는 조선시대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은 변한다. 그로 인해 역사 속 인물의 평가 또한 다양해진다. 문정왕후를 그저 한 사람으로서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한 것에서 이 연극에 큰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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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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