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전시 - 초현실주의 거장들 [전시]

글 입력 2021.12.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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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안 맞아.


자신과 반대인 사람을 만났을 때 많이 하는 말이다. 나는 무조건 안 맞는다고 결론 짓기 전에 상대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르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점은 분명 있다. 그 후에 나랑 맞는지, 안 맞는지 결론 지어도 늦지 않다.


나한테 ‘초현실주의 거장들 :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걸작전’은 나와 반대인 사람과 대화해보는 시간이었다.



초현실주의 포스터_1108.jpg

 

 

‘초현실주의 거장들’은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걸작전으로 전시작품들이 박물관 소장품이라고 한다.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마르셸 뒤샹 등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원화를 직접 볼 수 있다. 이 전시는 3월 6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다.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은 1849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설립됐다. 유럽에서 인상주의와 초현실주의 컬렉션으로 독보적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초현실주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전시는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섹션 초현실주의 혁명, 2섹션 다다와 초현실주의, 3섹션 꿈꾸는 사유, 4섹션 우연과 비합리성, 5섹션 욕망, 6섹션 기묘한 낯익음으로 운동의 역사, 초현실주의의 시초가 된 다다이즘 그리고 초현실주의의 특징을 세밀하고 밀도 있게 담아냈다. 짜임새가 좋은 전시라서 섹션에 따라 초현실주의자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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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

 

 

우리가 초면인 사람과 대화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자기소개이다. 나이나 직업에 대해 소개하는 자기소개가 아닌,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또는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대충이라도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1섹션과 2섹션이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혁명 탄생 배경과 초현실주의의 시초, 이 혁명에는 어떤 인물들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다.


초현실주의는 전쟁으로 힘든 시기를 겪은 유럽의 예술가들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 감정적 갈등 안에서 찾은 새로운 돌파구였다. 현실을 다르게 보면서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전쟁 원인과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깃든 혁명이었다.


문학가 앙드레 브르통은 1924년, 선언문으로 초현실주의 시작을 알렸다.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폴 엘뤼아르, 살바도르 달리, 트리스탕 차라, 르네 마그리트, 만 레이 등 다양한 분야의 여러 예술가가 운동에 참여했고, 그 덕에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 사진, 그림, 오브제 등이 창조되었다.


앙드레 브르통은 초현실주의를 심리적이고 몽환적인 이미지로 정의했으며 정신적자동기법인 ‘오토마티즘’을 이용하여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을 표현했다.


사실 초현실주의의 시초는 ‘다다(DADA)’였다. 다다주의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현실에 안주하는 사회를 거부했다. 그들은 전쟁을 피하려고 스위스로 도피했고, 그곳에서 자극적인 연극과 춤, 귀에 거슬리는 음악, 비문맥화된 시로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다다와 초현실주의의 탄생 배경은 비슷하지만,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다. 다다이즘은 '찾아낸 일상용품(Objects trouvés: 오브제 트루베)'으로 예술작품을 만들어 전통적인 생각을 뒤흔들었다. 초현실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초현실주의가 표현하려고 했던 꿈, 무의식, 심리적인 자율성은 3섹션부터 들여다볼 수 있었다.

 

 

 

공감대 형성



초현실주의자들은 ‘꿈’에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꿈’을 길들여지지 않은 생각을 활용하기 위한 도구로 해석했다. 환상과 악몽을 넘나드는 세계. 방해받지 않은 생각이나 마음,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매력을 갖고 있으니 그들이 ‘꿈’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거다.


한편, 환각에 시달리던 달리는 본인의 환각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관객과 공유하고자 했다. 그는 편집증적 사고를 해석의 광란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하나의 이미지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감대가 형성됐다. 문화예술은 향유하는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그림, 영상, 글, 조형물 등 하나의 작품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나는 이 점이 문화예술의 큰 장점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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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아프리카의 인상

 

 

다시 달리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편집증적 사고를 관객과 공유하고자 했던 그의 마음을 작품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이미지를 겹치는 방법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작품을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도록 했다. 편집증적 사고를 담아낸 작품 중 인상 깊었던 것은 「스페인」과 「아프리카의 인상」이었다.


가까이서 보면 전투하는 전사들이, 멀리서 보면 여성이 보이는 「스페인」, 여러 이미지가 겹쳐 보이면서 곳곳에 여러 얼굴과 몸짓이 보였던 「아프리카의 인상」


두 작품은 보이는 이미지에 따라 다른 감정을 느꼈다. 사람의 한 면만 보고는 파악할 수 없듯이 그림도 한 면만 보고 알 수 없다. 요리 보고, 조리 보아야 작품의 진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배움을 얻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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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삽화가 된 젊음

 


초현실주의자들은 연관성이 있는 것들끼리 나열하거나 모아놓으려는 인간의 관습을 깨트렸다. 기묘한 방법으로 일상의 이미지나 사물들을 모아놓으며 색다른 만남을 창조했다. 이는 특히 「삽화가 된 젊음」에서 돋보였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사물과 동물을 길 위에 나열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기묘한 낯익음이 처음에는 황당하고 난해하게 느껴졌지만, 어느새 이에 적응된 나를 발견했다.


사물은 항상 연관성이 있는 것과 함께하고,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야 보기에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것들이 한 그림에 모여 있는 것을 직접 보니 ‘생각보다 괜찮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좋은 자극이 되었다. 어떠한 성질을 가진 사물이 아니라 순수하게 사물을 볼 수 있었다.


기묘한 낯익음은 생각을 전환해줬고, 영감을 불러오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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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유리집

 

 

섹션 구성이 잘 되어 있어서 초현실주의자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시 의도에 비해 조금 불친절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초현실주의 시대와 코로나 시대가 닮아있는 만큼 대중의 공감대 형성에 포커스를 맞춘 것 같았다.

 

타깃이 초현실주의 마니아가 아닌 ‘대중’이었다면, 제목 밑에 간략한 설명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오디오 가이드가 따로 있었긴 했지만, 유료라서 그런지 다른 전시에 비해 가이드를 듣는 관객이 적어 보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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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금지된 재현

 


이번 전시를 보고, 글을 쓰면서 초현실주의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막연하게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을 허물고, 소통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나와 반대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의 사상과 비슷한 부분도 있었고, 다른 점이 새로운 자극이 되어 배울 수 있었다. 초현실주의자들 덕분에 우리에게 익숙한 데칼코마니, 콜라주 기법이 탄생했다. 그들의 공을 인정하는 바이다.


나와 다르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그러나 대화를 해본 후 달라진 점은 하나부터 열까지 안 맞는 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소통이 되었다고 본다. 아트인사이트가 말하는 ‘문화는 소통이다’가 무엇인지 체감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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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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