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이한 것에서 피어난 아름다움 - 초현실주의 거장들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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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거장들: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걸작전’.
본 전시의 전체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 본 전시에서 소개되는 모든 작품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위치한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의 소장품으로, 이 박물관은 유럽 전역에서 가장 큰 초현실주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독보적인 미술관으로 알려져 있다.
초현실주의의 핵심 키워드는 꿈, 욕망, 무의식, 기이함이다. 20세기 초에 파리에서 등장한 초현실주의자들은 꿈과 욕망과 같은 무의식적인 세계를 예술로 표출하면서 놀랍고 기이한 형태로 일상을 뒤엎었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은 결과적으로 예술의 사유 영역을 확장시켰으며 현대예술 발전에 기여하였다.
본 전시에서는 20세기 초 현대 예술의 혁명을 일으킨 마르셸 뒤샹, 초현실주의의 아버지인 살바도르 달리, 초현실주의를 창시한 앙드레 브르통의 대표작과 한국인에게 친숙한 벨기에의 출신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까지 유럽의 20세기 초를 휩쓴 다양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이곳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총 6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다. 차례로, ‘초현실주의의 혁명’, ‘다다와 초현실주의’, ‘꿈꾸는 사유’, ‘우연과 비합리성’, ‘욕망’, ‘기묘한 낯익음’이다. 섹션 1과 2에서는 어떻게 초현실주의가 생겨나고, 어쩌다 초현실주의가 자연스럽게 회화 및 조각 영역에 스며들고 발전했는지를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시대적 배경을 파악할 수 있다. 이후 세 번째 섹션부터는 섹션 별로 초현실주의가 가지는 굵직한 특징을 나누어 볼 수 있다.
SECTION 1: 초현실주의 혁명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 혁명
“기이한 것은 언제나 아름답고,
기이한 것은 모두 아름다우며,
사실 기이한 것만이 아름답다.”
(앙드레 브르통, 1924)
위 구절은 프랑스의 시인이자 추상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진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의 선언>에서 발췌한 문장으로부터 전시의 시작을 알린다. 읽으면 읽을수록 말장난 같기도 한 해당 문장은 ‘기이한 것’과 ‘아름다움’의 연관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한다. 기이하다고 여겨지는 ‘초현실주의’의 작품들로부터 과연 어떤 부분에서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지 말이다.
이곳에서는 살바도르 달리의 유명한 작품 ‘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은 물론, 르네 마그리트의 <붉은모델III>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르네 마그리트들의 작품이 인상 깊었다.
르네 마그리트, 붉은모델III, 1898-1967
인간의 맨발 같기도 한 동시에, 발의 모양새를 한 신발 같기도 한 이 작품. ‘이것 같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한’ 양가성은 르네 마그리트 작품에서 드러나는 주요 특징이다.
SECTION 2: 다다와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는 ‘다다(DADA)’의 여파로 생겨났다. 다다와 초현실주의는 둘 다 1차 세계대전 전쟁 시기에 생겨났으며, ‘정신세계’를 표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다다는 기존 존재하는 일상용품에 의미를 부여하여 예술 작품을 만들면서 이성, 질서 등과 같은 전통적인 생각을 뒤흔드는 일에 그쳤다면, 초현실주의는 새로운 예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미래에 대한 해결책까지 제시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작품으로부터 새로운 현실이 등장할 거라 믿었던 것이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만 레이의 <선물/대담함>이었다.
만 레이, 선물/대담함(Gift, Cadeau/Audace), 1921, 주철 및 구리 못
작은 다리미의 바닥에 일렬로 14개의 압정들이 박혀있다. 꽤 날카로워 보인다. 그런데 가장 이상했던 것은 작품 이름이었다. 처음에는 ‘선물’이라는 제목 이름에 놀랐고, 이어서 선물 이외에도 ‘대담함’이라는 제목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신기했다. 한 작품에 2개의 제목이라니. 무엇보다 어떤 의미로 두 제목을 붙였을지 궁금해졌다.
뒤늦게서야 알게 된 사실은 이러했다. 전시회 개장 날 오후, 만 레이는 어떤 한 술집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몇 잔의 위스키가 그의 상상력을 자극한 것이다. 갤러리로 돌아오는 길에 몇 가지 재료들을 사서 압정을 다리미에 풀로 일렬로 붙인 후 선물이라고 제목을 붙이고 전시회 작품에 이를 추가했다. 이 조각품은 후의 초현실주의 오브제를 예측해 만든 것이라고. 특히 옷의 주름을 펴는 것이 아니라 되려 찢어버리는 에로틱한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점이 더욱 아찔하게 느껴진다.
SECTION 3: 꿈꾸는 사유
초현실주의의 첫 번째 특징, ‘꿈’이다. 꿈은 꾸고 깨어나면 기억이 선명히 날 때도,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때로는 많은 것들이 얽히고설켜 펼쳐지는 이 무의식의 세계가 정말 말도 안 되는 그저 ‘꿈’일뿐이지만 괜히 흥미롭거나 불안한 꿈들은 그것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기록을 하기도 한다.
초현실주의자들에게 꿈은 꽤 흥미롭고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었고 자연스럽게 꿈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들에게 ‘꿈’이란 길들여지지 않은 생각을 표출할 수 있는 세계였고 무궁무진한 사유가 가능한 도구였다. 꿈을 그려낸 세계에는 환상과 악몽이 공존했다.
이때 등장하는 특징이 바로 ‘편집광적 비판’이다. 해석의 광란, 쉽게 말하면 하나의 이미지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함을 말한다. 마침 이곳에서는 살바도르 달리의 편집광적 비판의 성향을 잘 설명해 주는 책이 전시되어 있다.
살바도르 달리, 끝없는 수수께끼(The endless Enigma), 1939
©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 2013, ProLitteris, Zurich
언뜻 보면 하나의 모호한 뭉텅이처럼 보이는 이 그림은 사실 다양한 조각의 형상들이 포개어져 완성된 그림임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해변의 곶, 바다 위에 띄워져 있는 배들, 앉아서 돛을 감고 있는 여자, 턱을 괴고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철학자, 사냥개, 큰 얼굴 형상, 탁자 위에 놓인 어떤 기계와 과일들, 고대 신화에서 나올 법한 야수의 얼굴 등등. 어쩌면 더 있을 수도 있다.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며 하나씩 뜯어보는 재미도 있으니 두 눈을 요리조리 굴려가며 잠시 동안 끝없는 수수께끼의 과정을 경험해 보길 바란다.
SECTION 4: 우연과 비합리성
초현실주의의 또 다른 특징은 우연과 비합리성이다. 해당 섹션에서는 초현실주의자들이 작품을 창작하는 기법에 초점을 맞추었다. 바로, 자동기술법이다. ‘오토마티즘’(Automatisme)이라고 불리는 이 기법은 길들여지지 않은 생각, 무의식적 사고를 의식의 흐름대로 표현해 내는 방법을 말한다.
보통 초현실주의에 남성 작가가 대부분이었지만 여성 작가도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아르헨티나 출생의 런던 여성 작가 '에일린 아거'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바닷가를 많이 다닌 그는 해초류, 화석, 동물을 소재로 작품을 창작했다. 현재 전시에서는 대표적으로 <앉아 있는 사람>이라는 작품을 볼 수 있다.
에일린 아거, 앉아있는 사람, 1956, 캔버스에 유화
다른 작품들보다도 캔버스 위에 일어남이 심해 일부러 모양을 만들어내려 뭉친 것 같기도 긁어낸 것 같기도 한 울퉁불퉁한 붓 터치가 눈에 띈다. 사실 가까이서 보면 절대 ‘앉아 있는 사람’인지, 심지어는 어떤 동작을 취한 것인지 조차 분간이 잘 가지 않는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작품으로부터 몇 발짝 뒤로 걸으며 시선을 뚫어져라 보았지만 딱히 하나의 동작으로 단언하기에는 어려웠다. 앉아있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SECTION 5: 욕망
한편,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사랑과 욕망은 매우 중요한 주제였다. 이들은 성에 대해 얌전한 체하는 인식을 허물고 대놓고 성적인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곳에서는 나체와 성적인 주제를 포함한다.
특별히 해당 섹션에는 일명 ‘19금’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한스 벨머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는 관절을 가지고 성적인 묘사를 표현했다. 부풀린 풍선을 꼬아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냈는데 그 모습이 괴기하고 소름 끼친다.
개인적으로는 주프 모에스만의 <오후>, 1932가 인상적이었다. 작품 틀에 굵은 갈색 밧줄로 둘러져 있는 것도 이색적이었지만 그림 속에 모나거나 날카로운 모양새 하나 없이 흘러내리는 듯한 부드러운 곡선의 형상이 포개어져 있는 그 모습 자체로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SECTION 6: 기묘한 낯익음
- 말도로르의 노래 中
초현실주의자들은 우연한 만남에서 가능성의 세계를 보았다. 위의 구절은 당시 초현실주의자들이 빠져있던 소설, ‘말도로르의 성가' 속 그들이 특히 좋아했던 문구이다. 재봉틀과 해부용 탁자, 그리고 우산까지. 기묘하리만큼 연관성이 적은 임의의 물체가 만나 새로운 종류의 이상하지만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초현실주의 작품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대표적으로 만 레이의 <비-유클리드 오브제>가 있다. 우드, 메탈, 고무줄과 같이 완전히 다른 질감과 속성을 지닌 물질들을 조합하여 하나의 오브제를 만들어 냈다. 절대 만나지 않을 것 같은 이상한 조합의 결과물이다.
해당 섹션에서 도슨트 해설을 듣고 인상 깊었던 작품은 바로 르네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이었다. 영국 수집가이자 후원자였던 에드워드 제임스는 본인의 집에 무도회를 열며 르네 마그리트에게 3개의 그림을 제작하기를 요청한다. 바로 그 세 작품 중 하나이다.
르네 마그리트, 금지된 재현, 1937, Painting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후에 <자유의 문턱에서>를 보고 있는 제임스의 뒷모습 사진이 발견되면서 해당 작품은 제임스의 초상화임이 밝혀졌다. 그림을 보면 살짝 섬뜩하리만큼 이상한 지점이 있다. 거울인데 비친 모습 그대로가 아니며, 초상화인데 얼굴은 보이지 않고 뒤통수만 보인다. 분명 비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다. 제목 그대로 금지된 복제를 의미한다.
자신이지만 자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작품. 우리가 얼마나 현실을 대변하는 방식을 믿을 수 있는지, 진짜와 가짜를 넘어서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 등등 이 작품을 마주한 우리에게 여러 견해의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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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구성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단조로워 아쉬웠지만 그것 나름대로 작품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섹션별로 색깔을 달리 하여 특징을 나눈 부분에서 초현실주의의 맥락과 분위기를 느끼기 좋은 전시임은 분명했다.
전시 끝에서야 초현실주의 작품이 주는 기이함과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정의 연관성이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듯하다. 우연한 만남에서 만들어지는 기묘한 아름다움, 낯선 느낌으로부터 피어오른 호기심과 의문으로 세상을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가지는 것. 분명 그것은 기이하고 아름답다.
참고로, 현재 무료 정규 도슨트를 진행하고 있으니 도슨트 해설과 함께 하기를 추천한다. 가능하다면 자유롭게 전시장을 둘러보고 나서 도슨트 해설과 함께 주요 작품들을 감상하기를 바란다.
※ 현재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으로 인해 평일 무료 도슨트를 잠정 중단되었으며 앞으로 사전 예약을 받아 프리미엄 도슨트로 진행됩니다. 자세한 소식은 공식 SNS 계정(@culture.ni)을 통해 확인하길 바랍니다.
[신송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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