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정의할 수 없는 그 유일함으로 - 힙하게 잇다 조선 판소리 [도서]

더할 나위 없이 새로이 울려 퍼지는 우리 소리
글 입력 2021.12.1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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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할 때도, TV를 볼 때도 어쩐지 익숙하면서도 흥겨운 국악의 자락을 자주 듣게 되는 것 같다. 친근한 가락에 서양 악기와 현대식 편곡으로 우리 전통 음악이 조금 색다르고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된 시도는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례로 한국관광공사는 ‘한국의 리듬을 느끼세요’라는 제목의 홍보 영상을 제작하면서 국내 주요 관광 명소를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와 현대 무용그룹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의 협업으로 소개했다. 해당 영상은 국내외로 큰 화제를 모았는데 코로나로 이전처럼 자유로운 여행이 힘들어진 시점에서 한국 곳곳의 도시 전경이 볼 수 있다는 것 외에도 그 전경을 더 멋들어지게 해주는 음악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범 내려온다”, 판소리 “수궁가”를 재해석한 이 노래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익숙한 이야기를 신선하게 들려준다. 판소리를 주제로 하면서 요즘 세대가 열광할 만한 힙하고 신나는 음악을 만드는 이날치 밴드 외에도 국악의 현대화 시도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나는 어떤 시각으로 국악을, 판소리를 바라보았는지 떠올려보았다. 좀 편협하지만, 내가 바라본 국악, 판소리는 “한”을 중점으로 한 음악 장르였다.



이날치_관광공사.jpg

 


“한”이라는 것을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어렴풋이 알지만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개념이다. 수많은 세월 외세의 침략과 어려움 속에서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 민족의 정서 정도라고 겨우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일지 그 역사를 지나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남아있는 옛 노래에게는 한이 느껴진다. 기쁨과 풍자를 다루는 노래에서도 어쩐지 서글픈 정서가 짙게 깔린 것만 같은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지금까지 필자는 국악, 판소리라는 주제를 접하면 자연스레 “서편제”를 떠올리곤 했다. 딸이 좋은 소리꾼이 되기 위해 눈을 멀게 한 아버지, 그를 운명으로 받아들인 딸. 이해하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주제, 이것이 우리 역사의 음악에서 이어져온 것인가를 생각했던 날들과 현재 더 다채로운 모습의 국악을 떠올려보면 스스로 얼마나 편협한 사고로 우리 전통음악을 바라보았는가 싶다. 새로운 국악의 모습에 반가우면서도 참 그동안 내가 많이 몰랐구나 싶은,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던 무렵에 이 바람을 이루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책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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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하게 잇다 조선 판소리”의 저자 김희재 작가는 21년 차 소리꾼으로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유행을 타는 우리의 전통 음악이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다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주 잠깐 타오르다가 지는 불씨가 아닌 모두의 안에서 계속 빛나는 존재로 남을 수 있도록 대중과 장르 사이에 연결고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책에 장르의 법칙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판소리의 이야기를, 평소 청자로서 궁금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익숙하지만 많이 알지 못했던 이들을 위해 글을 적어내리는 과정을 기쁘고 보람찼다는 저자는 마치 보지 못한 이에게 빛줄기를 부여하는 것 같은, 헬렌 켈러에게 셜리반 선생이 물을 가르쳐주었던 이야기를 예시로 든다. 이와 같은 서문에서 소리꾼인 저자의 지식과 더불어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국악을 새로이 소개하는데 섬세하게 다가가는 모습이 문장을 통해서 전해진다.

 

*

 

저자는 판소리라는 장르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해외에서 한국 영화가 장르 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판소리 역시 어떤 뚜렷한 장르라고 현재까지 판명 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어서 판소리는 사실 음악이며 문학이고 또 극예술 장르라고 말하며 경계를 파악할 수 없는 서로 역할이 뒤얽혀있다고 언급한다. 즉, 이는 서양의 장르론에서만 바라볼 수 없는 우리만의 복합적인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복합적인 판소리 작품 몇 가지의 이야기를 저자는 우리에게 소개하며 또 쉽게 풀어낸다. 앞서 언급한 <수궁가>, <홍보가>, <춘향가> 등 판소리의 구절을 해석할 뿐 아니라 현대적인 시각에서도 이야기에 담긴 뜻을 풀어내며 더욱 친근하게 독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한다.


 

사람들이 제게 왜 판소리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전에는 소리가 지닌 섬세하고 통쾌한 음악성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답이 사뭇 바뀌었습니다.


”판소리의 이야기가 소리와 춤, 익살스러운 연기로 승화되었을 때 생기는 특유의 재미는 그 어떤 예술 장르도 가지지 못한 독보적인 매력입니다.”


저는 이 점을 깊이 사랑합니다. 판소리가 음악으로서 극으로서 재미와 감동을 지니는 까닭은 판소리가 지닌 ‘문학성‘으로 비롯됩니다. 우리가 판소리에 울고 웃고 빠져드는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 44p

 

 

두 번째 장에서 저자는 우리나라 각 지역마다 사투리가 있듯이 판소리에도 각 지역마다의 색채를 띤다는 점을 짚어준다. 다른 지역에서 다른 사투리가 있듯이 지역마다 다른 창법을 쓰며 어떤 소리의 색이 더 또렷한지를 소개한다. 아울러 판소리에 쓰이는 박자, 서양 음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 독특성을 분명히 정의하며 이어서 판소리의 원리, 그리고 이를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한 소리꾼이 갖추어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풀어낸다.


소리꾼이 되어 수련을 통해 명창이 되는 과정 자체도 고된 것인데, 자신이 속한 음악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더욱 고달플 것이다. 저자는 소리꾼으로 길을 걷게 된 자신의 경험도 함께 서술하며 최근 전통문화 예술이 주목받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언급한다. 더 많은 이들이 알고 즐기는 장르는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이는 또 다른 새로운 소리꾼을 탄생시키고 더 장르의 활발함을 촉진할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장에서 저자는 국악을 새로운 장르로 개척한 음악가들과 오랜 시간 동안 한 길을 걸어온 명창들을 소개한다. 환각적인 사운드를 만드는 사이키델릭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한 ’악단광칠‘과 국악기와 전자 음향을 접목한 ’잠비나이‘,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이날치 밴드‘까지. 그저 아 국악으로 저렇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넘어서 독자들은 각 팀이 어떤 방향을 지향하는지를 세심한 설명으로 확인할 수 있다.

 

판소리의 깊은 매력에 빠져보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헷갈리는 독자를 위해 저자는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현대 명창들을 소개한다. 명창계의 대들보라 할 수 있는 김수연과 안숙선, 탁월한 쇼매십을 지닌 조상현과 조통달, 그리고 애틋한 그리움의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김소희 등 각 명창의 특징이 책에 담겨있다.


 
시대가 명창을 낳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좋은 명창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시대 흐름을 맞추어 문화예술도 변화하고 이에 적응해나가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저 역시 젊은 소리꾼으로서 고민이 많고 살아남기가 참 퍽퍽하지만 명창의 무대를 보면서 우리 소리의 참된 가치를 잃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굳건히 하고 있습니다.

- 301p

 

 

저자는 판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담아내기가 참 어려운 과정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참고 버티는 과정에서 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었듯이 그 또한 자신을 당당하게 해주고 버티는 힘을 길러주었다고 말한다.


판소리가 인간문화재라는 보호의 그늘에서 벗어나길 희망한다는 구절에서는 대중들이 이 장르를 더 익숙하게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짧은 어느 한순간에 유행이 아닌 더 다채롭고 새로운 판소리 음악과 오랫동안 이곳에 자리한 전통의 가락이 꾸준히 이어지길, 그렇게 되기 위해 저자의 기록은 쉽고 친절한 판소리 입문서로서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판소리가 일상으로 즐기게 되어 대중에 의해 입혀지고 쓰이며 새로워지면서 인간문화재 보호의 그늘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돌고 돌아 또 전통이 되는 것처럼, 이 신나는 놀이를 많은 사람이 격의 없이 즐기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이 뒤야 뉘가 알리요, 더질더질.

 

- 310p

 

 

 

강지예_컬쳐리스트.jpg

 

 

[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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