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두가 연대하는 세상 [도서/문학]

글 입력 2021.12.10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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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 바로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다. ‘세계인권의 날’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다운 권리를 누리고,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여기, ‘인권’이 흔들릴지도 모르는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소설 『천 개의 파랑』 속 주인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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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천 개의 파랑』을 읽고 난 후에 든 생각은 ‘살아가기 참 힘들다’였다. 누군가에게는 따뜻하게 읽힐 수 있는 소설이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소설이었다.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사회 속에서 누군가는 소외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서로 처절할 정도로 연대하기 때문에 더욱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소설 속에서 나는 여러가지 사회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고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01.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소녀 ‘은혜’


 

 
“그렇게 만연해지고 당연해지면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했다. 때때로 어떤 일들은, 만연해질수록 법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 일에서 손을 놓아버리곤 했다.”
 

 

우리가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는 환경 속에서도 누군가는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가 당연하게 살아가는 배경에도 당연하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당연함’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천 개의 파랑』 속 은혜가 그렇다.

 

은혜는 장애인이다.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사실 거의 외출하지 않기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생활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녀가 외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아니다. 바로 ‘민폐가 되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녀는 스스로 외출하는 것도 힘들다. 휠체어를 위한 길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쉽지 않다. 배려의 행동이라고 다가오지만, 깜짝 놀라기가 일쑤이다. 모든 길, 모든 건물의 입구에 휠체어를 위한 포장도로와 리프트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당연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은 정부 입장에서도 부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외면당한다. ‘기다려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02. 안락사 당할 위기에 처한 경주마 ‘투데이’


 

경주마 ‘투데이’는 말 그대로 경주를 위한 말이다. 사람들의 유흥거리인 셈이다. 한 때 아주 잘나가던 투데이는 경기 중 부상을 당하게 되고, 바로 퇴출이 된다.

 

사실 상 퇴출당한 말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안락사를 당하게 된다. 소외되는 인간을 돌보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나아가 우리는 모든 생명들과 함께 연대해야 한다. 소외되는 생명이 없도록,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도구화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큰 지구와 우주를 보았을 때 우리는 모두 같은 작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채식주의자’들이 많아진 듯하다. 물론 저마다의 이유 때문에 채식을 시작한 것이겠지만, 그 중 한가지 큰 이유는 바로 ‘동물권 보호’이다. 인간의 무분별한 사냥, 식육 등으로 인해 몇몇의 동물은 멸종되고, 많은 가축들은 생명으로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 그야말로 동물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채식과 같이 동물을 동물로서 존중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03. 하반신이 부서진 채로 폐기를 앞둔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우리는 같은 인간, 동물을 넘어서 비인간, 비생명까지 고려해야 하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고려는 다른 문제들에 대한 고려보다 더욱 더 까다롭다.

 

우리는 ‘로봇권’도 보장해야 할까? 사람들은 로봇을 주로 ‘인간의 편리를 위해서’ 사용한다. 감정이 없는 도구로만 생각한다면 로봇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한가지 고려를 더해보자. 『천 개의 파랑』 속 로봇, ‘콜리’는 설계하는 과정 속에서의 약간의 오류로 감정을 느낀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감정을 느낀다기보다는, 생각을 한다. 감정을 묘사할 수 있고 사람들의 감정들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다. 자신이 폐기될 것이라는 사실도 인지하고 ‘슬픔’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우리는 ‘콜리’를 존중해야 할까? 『천 개의 파랑』 속 주인공들은 연대하고 함께하지만, 현실 세계 속에서의 ‘로봇권’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앞서도 말했지만, 『천 개의 파랑』이 아프면서도 따뜻한 이유는 그들이 모두 ‘연대’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위한다. 세상이 원하는 결과는 아니더라도, 그들이 생각하는 가장 따뜻한 결말을 내린다. 이로써 우리는 오히려 그들에게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잠시나마 인간, 생명, 그리고 나아가 비생명까지 모두가 연대하는 세상을 꿈꾸게 된다.

 

 

동식물과 자연, 다수에 속하지 않는 인간을 배제하는 발전을 추구한다면 인류는 빠르게 멸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 개의 파랑』을 읽으며 다시 배워야만 한다. 행복과 위로, 애도와 회복, 정상성과 결함, 실수와 기회, 자유로움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는 ‘천천히, 천천히’ 나아가도 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무엇도 배제하지 않고 함께 나아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따뜻하고 찬란한 소설을 만났다. 고맙고 벅차다.”


- 최진영(소설가) 의 추천평

 


[윤영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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