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쾌함을 감내하는 게 유행인가요 [드라마/예능]

넷플릭스 오리지널 <스위트홈>에서 <오징어게임>을 지나 <지옥>까지
글 입력 2021.12.1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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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는 그 어떤 플랫폼보다 대중의 반응을 빠르게 반영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한다. 한국에 넷플릭스 서비스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넷플릭스 코리아는 <스위트홈>을 공개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처음 보는 장르와 규모라며 감탄이 이어졌다.


넷플릭스 코리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대중이 <스위트홈>에서 발견한 재미는 여럿 있었지만, 아마 넷플릭스 코리아는 그러한 반응 중 ‘자극성’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곧 <오징어게임>을 선보이며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넷플릭스는 한 걸음 나아가 최근 <지옥>을 공개했다.


1절은 분명 재미있었다. 그런데 2절부터 의문이 생겼고, 3절에서는 역겨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잔인한 정도는 비슷한데, 왜 불쾌함은 점점 짙어진 걸까.

 

*세 작품의 스포일러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01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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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홈> 스틸컷

 

 

<스위트홈>은 가장 깊은 욕망이 발현하여 괴물이 되는 인간들의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린다. <스위트홈>에는 분명한 ‘우리 편’이 있다. 괴물인가 아닌가 하는 단순한 선을 긋는 게 아니다. 같이 살아남기로 했다면, 함께 필사적으로 생존을 위해 노력한다. 괴물화가 진행 중인 주인공 현수는 팀을 위해 미끼가 되고, 정재헌은 몸을 던져 희생한다. 누군가의 숭고한 죽음으로 누군가는 살아남아 탈출한다.


<오징어게임>은 오로지 한 사람만 살아남는 생존 게임이다. 당연히 영원한 아군은 없다. 피차 모두 벼랑 끝에 매달려있는 인생이다. 조폭 덕수의 무리는 힘으로 약한 이들을 죽여대며 경쟁자를 줄여나간다. 상우는 알리를 속여 게임에서 승리하고, 다친 새벽을 죽인다. 기꺼이 남을 위해 삶을 매듭지은 이는 지영 외에 아무도 없었다.


<지옥>에서 일명 ‘천국’의 고지를 받은 이들은 해당 날짜와 시간에 사자들에게 뒤쫓기고, 마침내 고통스럽게 ‘지옥’으로 소멸한다. 점차 죄를 지은 이들이 고지를 받는다는 믿음이 번진다. 추종자 무리 ‘화살촉’은 천사와 사자의 등장이 죄지은 자들을 벌하기 위한 신의 움직임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신을 믿지 않거나 과거에 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직접 폭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신도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람들은 누구도 신뢰하지 못하고 서로를 두려워한다. 의문의 계시와 존재는 소수를 죽이지만, 사람들의 절대적인 믿음은 모두를 죽인다.

 

 

 

02 약자와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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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스틸컷

 

 

<스위트홈>의 주민들은 하나같이 초라한 면이 있다. 누구 하나 월등히 잘난 이도 없으며, 모두 각자의 결핍을 안고 있다. 그린홈 주민들의 모습에 처음에는 ‘이래서야 생존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끈끈히 의기투합해 생존한다.


<스위트홈>의 여성들은 강하다. 노인은 현명하며, 아이들은 용감하다. 휠체어가 필요한 이는 누구보다 전술과 도구 제작에 능하다. 각자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등을 맞대고 싸운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이를 먼저 버리는 게 아니라 끝까지 보호한다. 현실에서도 전혀 흔하지 않은 광경이다.


<오징어게임>은 그 흔한 느와르 영화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몇 없는 여성 캐릭터들에게서 총기(聰氣)를 빼앗고 허무한 죽음을 맞게 한다. 유일하게 감독이 적극성을 부여한 여성 캐릭터 ‘박미녀’는 생존을 위해 자신의 몸을 수단으로 사용한다. 외국인 노동자는 끝까지 순해 빠진 성격을 유지하다가 배신당해 사망한다. <오징어게임>은 이렇게 사회적 약자들을 이미 통용되는 단편적인 이미지로 사용하고 쉽게 버리기를 반복한다. 약자의 삶을 깊게 사유해본 적 없는 좁은 시야가 여실히 느껴졌다.


<지옥>은 작품 의식을 핑계 삼아 약자들을 잔인하게 살해한다. 아이를 둔 한부모 가정의 여성은 대중이 보는 앞에서 온갖 폭행을 당한 후 사망하고, 여성 노인은 집단 폭행을 당해 즉사한다. 이 두 장면은 꽤 오래, 노골적으로 표현된다. 이런 식으로 살해당하는 장면을 제작자가 보고 싶어서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약자의 모든 발길질과 웅크림, 절규는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진짜’에 가깝다.


<지옥>이 표현한 폭력은 누구에게는 이미 지독한 현실이다. 굳이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한 세계가 아니더라도, 힘을 가진 이들에게 짓밟히는 건 약자들의 일상이다. 그래서 노골적인 폭력과 죽음의 연출이 놀라우리만큼 불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혀 새롭지 않았다.

 

 

 

03 비판과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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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스틸컷

 

 

불쾌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전부 현실 비판적인 작품이 되는 건 아니다. 잔혹한 상황에 약자를 굴려대는 건 현실에서도 충분하다. 제작자는 눈앞의 현실을 만들어낸 깊숙이 숨겨진 거대한 세계를 직면해야 한다.


좋은 제작자는 표현하고 싶은 대상을 직접 면밀히 관찰한다. 기득권층의 안정적이고 얕은 시야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제작자는 언론과 미디어에 드러나는 약자의 일부 이미지에 의존해 캐릭터를 제작한다. 당연히 그렇게 탄생한 캐릭터는 누구의 공감도 사지 못하고 생명력을 잃는다.


<스위트홈>은 무너지는 세계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사랑의 힘을 보여준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딸을 찾기 위해 내보내 달라며 호소하는 엄마와 아이들을 위해 목숨을 내건 위험을 감내하는 어른들이 있다.


<스위트홈>은 사회적으로 외면받은 이들의 작은 복수도 선보인다. 주민들에게 심한 하대를 받았던 경비원은 괴물이 되어 돌아온다. 남편에게 오랜 기간 가정 폭력을 당한 아내는 괴물이 된 남편을 죽일 기회를 얻는다. <스위트홈>이 공개될 즈음에도, 지금도 경비원 처우 문제와 가정 폭력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은 채 ‘내부 사정’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 <스위트홈>은 그들에게 복수의 기회를 주고, 성공도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현실의 문제 탓인지 그 끝이 썩 통쾌하지는 않았다.


<오징어게임>은 자신의 삶이 벼랑 끝에 있다고 여기는 인간들에게 면죄부를 부여한다. 무차별적인 살인과 폭행, 장기매매, 접대 등 제작자가 시도해보고 싶었던 ‘지하 세계’의 모든 걸 표현한다. 그리고 마지막 화에서 주인공 기훈이 싸움을 그만두고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으며, 사망자들의 가족을 챙기는 모습으로 앞선 모든 행위를 간단히 미화한다. 각양각색의 혐오를 똘똘 뭉쳐 커다란 바위를 만들어두고, 이타주의라는 얇은 천으로 그 바위를 덮어둔 듯 했다.


<지옥>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매우 철학적이다. 3화까지는 은근하게 공리주의를 설명하며 법과 정의, 악의의 모호한 개념을 말한다. 4화부터는 일종의 종교를 향한 맹신과 권력을 표현한다. 모든 장면에서 제작자의 염세적인 시선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토록 노골적이며 구체적인, 길게 이어지는 폭력 장면들에서 오히려 제작자도 이런 현실을 즐기는 쪽에 가깝지 않은가 싶은 의문이 들었다.


<지옥>은 마지막에 이르러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희생하는 부모를 보여준다. <오징어게임>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메시지를 엔딩에 살짝 얹어 잔혹한 연출을 중화하고 싶은 듯했다.

 

 


04 끝으로



<스위트홈>은 약자의 존재를 분명히 확인하고, 그들을 소외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붕괴할 세상의 끝에서도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자고 제안한다. <오징어게임>은 모든 약자를 평면적으로 표현한다. 사회적 구조로 인한 그들의 고통과 발버둥은 철저히 외면하고 부정한다. <지옥>은 <스위트홈>과 마찬가지로 누가 약자인지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하자마자 그 무리를 먼저 말살한다.


이게 현실인데 뭐가 문제냐는 식의 태도는 세상을 전혀 나은 방향으로 바꾸지 못한다. 미디어는 분명히 대중에게 영향을 미친다. 앞서 말했듯, 현재 넷플릭스는 대중의 반응을 가장 빠르게 콘텐츠에 반영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빠르게 확산해 유행과 사상을 쉽게 만들기도 한다.


잔인한 드라마가 흥행할수록 대중은 해당 작품 자체 뿐만 아니라 그를 2차적으로 다루는 미디어와 SNS를 통해 반복적으로 폭력을 학습한다. 최근 <오징어게임>의 유행이 그러하다.


인기 있는 콘텐츠일수록 솔직한 비판은 어려워진다. 작품의 좋은 요소를 꼽으며 비판을 비난하는 이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과 콘텐츠 제작자의 소통이 쉬운 현시대가 누구든 불편한 부분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한다.


넷플릭스 코리아 오리지널 콘텐츠가 보여줄 잔혹함의 끝은 어디일까. 감히 알고 싶지도 않다. 대중의 반응을 핑계로 수많은 이를 간접적으로 공격하는 콘텐츠는 부디 <지옥>이 마지막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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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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