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미술계를 뒤흔드는 현상 그 자체, 뱅크시 벽 뒤의 남자 [도서]

글 입력 2021.12.1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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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 아트의 메이저 입성은 이제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아는 체 하고 싶어서이든, 진짜 '덕후'라서 마이너한 장르에 관한 것을 꿰뚫어서든 소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소위 말하는 언더의 예술이나 문화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양지화되었가 때문이다.

 

20-30년 전만 해도 음습하거나 가난한 이미지였던 언더그라운드 문화는 이제 독특하고 매력있는 이미지로 대중에게 새롭게 다가가고 있다. 그 중 하나의 예로 최근 인기를 끌었던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들어볼 수 있다. 필자도 즐겁게 챙겨보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스타성을 지닌 다채로운 캐릭터의 출연자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그들이 만들어내는 낯설지만 즐거운 무브에 대중들이 열광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낯섦이라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 재미를 주고 인기를 끌려면 그 콘텐츠가 무해하다는 것과 건강한 신념을 가진 것임을 어필해야 하는데, '스우파'는 그 두 가지를 만족한 사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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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를 이야기하면서 '스우파'를 이야기하는 것이 동떨어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주류 사회에 순응하지 않는 예술을 다루는 데서 출발했다는 공통된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스트릿 댄스가 방송을 통해 존재감을 알리고 점차 그들의 인지도와 몸값을 올리고 있듯, 뱅크시의 그림이 시장에서 얼마의 값에 매겨졌냐는 것으을 궁금해하는 이가 더 많아졌다는 것으로 주류 '시장'에서도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달리 보면, 하위 문화와 주류 문화의 구분 자체가 사라지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


“사람들은 종종 낙서가 예술이 될 수 있는지 묻습니다. 음, 틀림없이 예술이죠. 그 얼어 죽을 테이트에도 걸려 있잖아요?”

 

뱅크시의 삶과 예술을 폭넓게 추적한 최초의 책! 저널리스트의 눈으로 바라본 뱅크시의 어제와 오늘. 뱅크시, 그는 과연 누구인가?


‘거리의 무법자’, ‘아트 테러리스트’, ‘얼굴 없는 화가’, ‘익명의 혁명가’, ‘미술계의 반항아’…. 뱅크시를 수식하는 표현은 다양하다. 얼굴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 치고 꽤 화려한 명성을 누리고 있다. 경매에 나오면 수백만 달러에 팔리고, 안젤리나 졸리나 브래드 피트 같은 헐리우드 스타들도 뱅크시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 2010년에 뱅크시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었으며(이때 그는 종이 봉지를 뒤집어 쓴 사진을 공개했다), 2019년에는 미켈란젤로를 제치고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과거에는 뱅크시의 ‘불법적인’ 거리 미술을 지우기 바빴던 시 당국이, 이제는 오히려 뱅크시가 자신의 관할 도시에 와서 그림을 남겨주길 기다리며 그의 그림을 열심히 보호한다. 뱅크시는 사법 당국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익명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뒤바뀐 셈이다.

 

이렇듯 정체를 숨길 이유가 사라졌다 해도 이 책의 목적은 뱅크시의 ‘가면’을 벗기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뱅크시의 팬과 추종자, 심지어 그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는 과거의 동료들조차도 그의 정체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을 도우려고 부자에게서 재물을 빼앗(지는 않지만 아무튼 상류층을 조롱하)는 ‘로빈 후드’처럼 묘사된 이 남자의 미스터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주류에 침투하다


 

뱅크시는 철저히 주류에 침투하는 작가이다. 자본주의와 엘리트 중심의 예술에 반항하고 반전과 사회 불평등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낸다. 그의 시작이었던 그래피티가 주로 저항의 목소리가 담긴 습격의 예술이었듯 뱅크시는 침투의 정체성을 꾸준히 가져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MOMA, 테이트모던 갤러리 등에 명화를 비틀어 그린 그림 혹은 정치를 풍자하는 그림을 몰래 걸어놓고 나오는 말 그대로의 '침투'를 퍼포먼스로 여러 차례 실천했던 것은 뱅크시라는 이름을 알리는 데에 큰 몫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래피티를 더욱 빠르게 그릴 수 있도록 손으로 직접 스프레이를 분사하여 드로잉하는 라이팅 대신 (뱅크시가 최초는 아니지만) 스텐실 기법을 활용하여 이전보다 많은 그림을 단시간에 여러 곳에 그려내며 자신을 노출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늘리기도 했다.

 

빠르고 넓게 침투하는 것, 그것이 초기에 뱅크시가 택한 주류에 저항하는 방식이었다.

 

 


사건 그 자체가 되다


 

뱅크시의 그림에는 독특한 감도가 있으며감이 뛰어나며 사회적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의 작품이 각광받는 더 중요한 이유는 그가 작품을 알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소비하게 하는 방식이 꽤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소비자들에게 보여주기보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있던 시기였음을 고려해 작품 판매를 온라인에서 시도했던 점은 당시로서는 아주 획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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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 중에서 최초로 작품을 프린트로 제작하여 온라인에 공개해 판매를 진행했을 때에는 몇 분만에 모두 매진이 되었고, 온라인 상의 판매에 의구심을 품었던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오프라인으로 한정판 프린트를 따로 제작하여 구매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제 그의 온라인 판매 페이지는 문을 닫았지만, 뱅크시가 판을 짜는 데에 소질이 있는 천재적인 기획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은 이후에도 많았다. 2018년 104만 파운드에 낙찰되었던 풍선과 소녀가 낙찰 직후 분쇄되어 '사랑은 휴지통에'로 작품의 제목을 바꾸었던 사건은 이미 유명하다.

 

현대 미술 시장의 작품 거래 관행에 대한 비판이 목적이었던 이 퍼포먼스는 지금까지도 충격적인 사건으로 회자된다.



 

반항의 갈림길


 

그러나 대중이 그의 작품을 원하는 데에는 작품에 담긴 의미가 전부는 아니다. 수익성이 좋은 투자가 된다는 것도 큰 몫을 했다. 뱅크시가 미술관에 침투하는 돌발적인 퍼포먼스를진행하며 점차 이름이 알려지고, 그의 작품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최초의 구매자들은 뱅크시의 작품을 되팔아 몇 배의 수익을 남길 수 있었다.

 

경제 불황으로 인해 2000년대 후반 잠시 주춤하였으나 이내 상한가를 넘어서며 지금까지도 그의 작품은 다음 경매에서 더 높은 가격에 낙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뱅크시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주류에 저항하며 평등과 반전을 말하는 작품이 결국 미술 시장의 중심에 있고 주류에게 '잘 팔리고' 있으니 반항아라는 그의 정체성이 무색해지는 것이다.

 

최초 판매가 아닌 이상 작품이 높은 가격에 시장에서 책정되는 것이 뱅크시에게 직접적인 이익으로 돌아오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취할 수 있는 이익(가령 브랜드나 셀럽과의 콜라보)들도 그래서 모두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반항아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유지하기 위한 가시적인 액션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

 

주류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담아내지만 의도치 않게 주류가 된 작가. 이제 그를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평론가들은 갈림길에 선 반항아라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돌발적인 행동과 획기적인 기획으로 반항아의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매번 상한가를 넘어서는 작품을 찍어내는 작가가 된 지금도 그러한지 그들은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은 점차 그를 이렇게 기억할 것 같다. 수많은 팬을 거느리며 매 작품을 이벤트로 만드는 작가. 주류 사회의 불합리성을 익명으로 폭로하는 작가. 매력적인 현상 자체가 된 작가. 그래서 계속 다음 판이 궁금하고 기다려지는 작가. ‘궁금하다’는 것만큼 작가의 생명력을 말해주는 단어가 또 있을까.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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