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요리를 해준다는 건 사랑한다는 또 다른 표현 [음식]

요리를 할 때면 늘 생각나는 사람
글 입력 2021.12.0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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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생활의 삼대 요소는 의식주다. 혼자 살이의 모험을 감행하는 이들은 이 필수적인 삼대 요소를 영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신경 쓰는가. 그중 나는 ‘식’을 위한 노력이 가장 수고스럽다. 자취 생활 곧 칠 년째 접어드는 나는 여전히 혼자 밥을 해 먹을 때면 자신의 몫에 더불어 나의 의식주 책임까지 대신했던 엄마가 생각난다.

 

*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따뜻한 것으로 속을 데우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배달음식으로 때워야겠다는 귀찮음이 몰려왔다. 게으름은 늘 자기 합리화로 이어진다. 아플 땐 남이 해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변명으로 스스로의 소비 패턴을 정당화하려는 나를 빠르게 후려치는 이번 달 식비 걱정은 기어코 장바구니를 들고 나서게 만든다.

 

 

 

그녀의 살림살이 방식


 

장을 볼 때면, 자주 요리해 먹는 야채들 위주로 산다. 기본적으로 버섯과 양파는 냉장고에 늘 구비되어 있어야 왠지 안심이 된다. 어떤 음식에 넣고 볶아도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평범함에서 오는 안정감이랄까. 다 똑같아 보이는 재료들 앞에서 한참을 그램 수와 가격을 비교하며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고작 다진 마늘이 담긴 작은 통 하나를 들고, 왜 크기와 가격은 반비례할까, 따위의 생각을 하다가, 그냥 통마늘을 사서 칼로 으깨 직접 다져버릴까, 여러 시뮬레이션을 한창 돌리던 와중, 마트에서 분주하게 재료의 질과 가격을 눈으로 빠르게 훑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트에서 엄마는 늘 눈이 부지런했다. 꼼꼼했다. 저렇게 해서 얼마나 아낄 수 있는 거지,라며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눈을 하고선 엄마 뒤를 졸졸 따르다 고작 과자나 집어 들어 카트 안 소복이 쌓인 물건들 맨 아래에 몰래 숨기곤 했던 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헛웃음이 났다. 계란 한 판 가격조차 모르던 내가 고작 어깨너머로 엄마의 살림살이 방식을 봐 왔다고, 지금 다진 마늘 따위 앞에서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있다는 건가. 내가 여태 요리를 할 때마다 엄마가 생각났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간혹 냉장고에서 손길이 오래 닿지 않아 이미 썩어버린 야채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엄마에게 전화해 야채가 원래 이렇게 빨리 썩냐는 어이없는 질문으로 엄마를 헛웃음 짓게 하곤 한다. 여전히 엄마에게 전화해 도움을 요청하는 나는 도대체 언제쯤 그녀의 발자취를 다 따라갈 수 있을까.

 

 

 

부지런한 사랑


 

나는 본가에 내려갈 때마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며칠 만에 불어버린 몸이 그 마음을 증명해 준다. 집에 내려온 첫째 날과 미묘하게 달라진 얼굴 윤곽선을 매만지며 이게 다 엄마가 음식을 맛있게 해서 그래, 와 같은 기분 좋은 투정을 부리다가, 근데 엄마 음식은 왜 이렇게 다 맛있어?라는 칭찬 섞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러면 엄마는 늘 호탕하게 소리 내어 웃었고, 그게 다 사랑이 들어가서 그런거야,라는 장난인지 진심인지 헷갈리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의 그 말은 왠지 사실 같기도 하다.

 

내가 먹을 끼니를 직접 차린다는 것은, 재료 준비와 손질부터 시작해서 식사 후 설거지까지 포함하는 매우 수고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손수 만든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것은 바쁜 와중에도 최소한의 여유와 안위만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조금만 사겠다는 다짐은 가뿐히 무시한 채 이미 무거워진 장바구니를 낑낑거리며 들고 돌아오면 직접 차려먹겠다는 의지가 한 풀 꺾인다. 나 대신 누가 요리 좀 해줬으면 좋겠다,라며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늘어지다가 점점 더 허기지는 배를 붙잡고 야채를 손질한다. 따가워지는 눈을 부릅떠가며 일일이 양파를 까고, 썬 버섯과 함께 볶는다. 다른 재료를 준비하는 사이 살짝 타버린 야채들을 부산스럽게 뒤집으며 살짝 탄 게 더 맛있는 거 아니겠냐는 자기 합리화로 마무리한다.

 

한번은,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는 언제부터 요리를 잘했냐고 물었다. 엉성한 자태로 자취방 좁은 부엌 한편에서 고군분투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다 뱉은 질문이었다. 엄마는 하다 보니까 하게 된 거지,라는 제법 심심한 대답을 했다. 원래는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었는데 우리 가족 먹일 밥을 만들어야 하니 어떻게든 요리를 잘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엄마는 필요에 의해 요리를 잘 했던 것이다. 어떻게든 맛있고 든든한 음식을 먹이고 싶은 그 마음. 여태 내가 먹어온 끼니 수를 헤아려보다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엄마의 애정을 더듬어본다. 든든한 식사 덕에 유지해올 수 있었던 안위는 물론, 맛에서 비롯된 기쁨 또한 누릴 수 있었던 건 엄마의 부지런한 사랑에서 시작된 것이다. 엄마의 부지런한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제는 내가 아닌 그녀 자신을 위한 요리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엄마의 여유를 바라본다.

 

*

 

결국 직접 죽을 만들어 아픈 몸을 달랬다. 오랜만에 아무런 시청도 하지 않고 오로지 식사에만 집중했다. 한 입 떠먹으니 금세 따뜻해지는 몸의 온기를 느끼며 나를 위한 이 작은 한 그릇을 만들기까지의 수고스러운 과정을 떠올려본다.

 

요리를 하면서 내가 늘 엄마를 떠올렸던 건, 결국 요리에 담긴 엄마의 마음을 떠올린 것과 같다.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이 모든 요리 과정에는 결국 애정이 기반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문득 사랑의 촉감을 느낀다. 어떤 종류의 사랑은 너무나 방대해서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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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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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도락
    • 저도 글을 읽으니 부산가서 엄마밥 먹고 싶어지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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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취생
    • 마음이 따뜻하고도 짠한 글이네요, 당연한듯한 엄마의 사랑을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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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풍
    • 헐~나는 반찬투정도 자주했었는데 그게 아니네요.
      이젼 엄마의 사랑을 먹는마음으로 먹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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