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 [도서/문학]

김광규 시인의 '미래'
글 입력 2021.12.0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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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에디터의 주관적인 해석과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광규의 '미래'라는 시는 자신의 경험 중 일부의 순간을 담아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미래에는 ‘희망’이 빠져있다. 이것이 곧 현실이기도 하다. 허황된 미래에 대한 공상에 빠지는 것보다 현실을 자각하고 다시 나의 내면을 돌보며 길을 찾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시를 통해서 내 미래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또한 방황하는 이십 대에게 이 시를 추천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첫째, 우리의 일상성을 포착하면서 우리가 쉽게 느끼는 고민과 감정들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여운을 남긴다. 여운은 반복되는 생각을 이끈다. 짧은 시 몇 줄이 긴 생각을 이어가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김광규 시인의 <미래>라는 시는 나의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시였다. 지금부터 이 시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9시 30분 서울역 도착

기차 시각표에 적힌 그대로

세련된 상표 붙은 인형들 싣고

서둘러 특급 열차 달려간 뒤

초여름 들판에 빈 철로가 남는다

 

꼬불꼬불 밭둑길 논둑길 따라

타박타박 걸어가는 어린 여학생

하얀 블라우스와 까만 치마

훈풍이 스쳐가고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그녀의 앞날

논물에 얼비쳐 눈이 부시다

 

김광규 <미래>

 


이 시를 감상하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과거의 나’의 모습은 2연의 ‘어린 여학생’이다. 또 김광규의 시선은 어린 여학생에 닿아 있다. 그리고 나의 시선 역시 이 어린 여학생으로 저절로 향했다.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나를 이 시에 대입해보았다. 또한 1연에 뛰어가는 이는 ‘현재의 나’의 모습이다. 어딘가로 향하고자 현재 나는 서울역에 도착해 기차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타는 열차는 ‘특급 열차’이다. 이 특급 열차는 정확히 19시 30분에 도착한다. 어쨌거나 이제 나는 선택의 여지 없이 이 특급 열차를 타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 이유는 이 특급 열차가 나를 좋은 길로 인도해줄 것이리라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꿈을, 미래를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내가 가진 꿈이라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두려워하고 망설이게 되고 그리하여 결국 내 선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길을 찾게 된다. 그것이 마치 특급열차를 타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특급열차는 타기만 하면 정해진 시간에 맞춰 알아서 도착하기 때문이다. 즉 나의 진정한 꿈의 열차는 도달하기에 어쩌면 힘든 것이지만, 반면에 이 특급 열차는 시간만 지나면 알아서 나를 어느 곳으로 데려다주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안정적이고 정석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그 길로 말이다.


그런데 이 특급열차에는 나뿐만 아니라 세련된 상표를 단 다른 인형들도 타는 열차다. 꿈을 위해 모았던 상표들은 세련된 경험들이지만, 정작 나와 그들은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는 아무 관련 없이 갈 길을 잃고 주체성 없는 인형이 되어 열차에 오르게 된다. 혹은 다들 하나 같이 이 특급 열차에 오르기 위해 ‘세련됨’이라는 기준에 맞춘 똑같은 경험을 가지고 오르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특급 열차는 시간 맞춰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떠나야 한다. 뭐가 그리 급한지 우리는 결국 꿈을 포기하고 안정적이라고 정해진 길을 서둘러 간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빈 철로가 남는다.’ 꿈을 향해 열심히 쫓아가고 충분히 내 삶에 대해 충실했다고 생각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비어있을 뿐이다. 혹 우리는 아무 의미 없는 정해진 열차 선로를 달리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1연이었다.

 

그리고 2연에서 시인의 시선은 어린 여학생, 즉 ‘과거의 나’로 옮겨간다. ‘꼬불꼬불 밭둑길 논둑길’이 등장하는데, 이는 쭉 직선으로 이어진 열차 선로와는 너무나 대비된다. 어린 여학생은 그 꼬불꼬불한 길을 그저 묵묵히 타박타박 걸어간다. 이는 서둘러 직선으로 펼쳐진 선로를 달려가는 특급 열차와 대비된다. 하얀 블라우스와 까만 치마는 우리가 학창시절 입었던 교복을 연상시킨다. 학창 시절 우리는 무엇을 할 때 ‘서두름’이 없었다. 현재보다 꿈도 자유롭게 꾸고, 천천히 흘러가는 삶을 즐겼다.

 

또 시에서 어린 여학생이 걷는 꼬불꼬불한 길은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그녀의 앞날’이었다. 쭉 이어진 특급 열차를 타고 가는 1연에서는 길이 하나이다. 꼬불꼬불하지도 않아 다른 곳으로 빠질 일도 없다. 반면에 어린 여학생이 걷는 길은 꼬불꼬불해서 길을 선택할 여지가 많다. 그래서 그녀의 앞날은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마치 그 시절 무궁무진한 도전과 다양한 꿈을 꾸었던 우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러한 여자아이의 그림자는 논물에 얼비쳐서 눈이 부시기까지 하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와 달리 천천히 걸어가도 꿈을 꾸며 빛이 났다.

 

이 시의 제목은 <미래>이다. 시에는 전혀 미래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데 왜 미래일까? 구분하자면, 1연은 현재이고 2연은 과거이다. 그리고 시인은 의도적으로 과거를 앞이 아닌 뒤인 2연에 배치하였다. 현재 우리는 과거를 잊은 채 정해진 삶을 살고 있지만 과거를 2연에 배치하여 과거에는 빛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대비하여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 빛나는 꿈을 가지고 살았던 우리는 현재는 특급열차의 기준에 맞추어 똑같은 스펙을 가지고 정해진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혹은 2연에서 그 특급열차의 오른 내가 저기 멀리 창밖의 꼬불꼬불한 논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 어린 여학생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자신이 저 여자아이처럼 빛났던 과거를 생각한다. 결국 이러한 배치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원하지만 현실에 순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게 만든다.

 

이 시는 지금 나의 상황 아니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모습이 아닐까. 특급 열차에 올랐지만, 중요한 무언가는 놓고 온 듯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열차에 오르고 있다. 이 시를 보고 나서 뒤를 돌아보게 만들 만큼 후회로 남는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아졌다. 이 시는 미래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만드는 시, 내 삶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1연과 2연에 드러난 현재와 과거와 달리 시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다음의 미래는 읽는 독자에게 맡기는 듯하다. 마치 어떤 미래를 그려 나갈지는 앞으로를 살아갈 당신에게 존재한다는 듯 말이다.

 

 

 

이윤주.jpg

 


[이윤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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