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설극장] 브로드웨이 TKTS, 한국 도입을 희망합니다

브로드웨이 TKTS를 통해 본 한국 공연계의 숙제
글 입력 2021.12.0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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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감사 연휴를 맞이해서 오랜만에 브로드웨이로 향했다. 모처럼의 휴일이라 오랜만에 종일 극장을 즐기고 싶었고, 하루에 두 개의 공연을 보기로 했다. 친구와 함께 저녁 공연 티켓만 끊은 채 이른 마침 맨해튼으로 향했다. 맨해튼에 11시 전까지 도착해야 했다. 당일 공연 할인 티켓을 구해서 마티네 공연을 보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브로드웨이는 티켓을 할인가에 구매할 수 있는 공식적인 방법이 5가지 정도 있다. 지금부터 소개하려고 하는 'TKTS'를 비롯해 '러시티켓(Rush Ticket)', '로터리(Loterry)', '브로드웨이위크(NYC Broadway Week)', 그리고 '스탠딩티켓(Standing Ticket)'이다. 각각 할인율과 조건이 다르긴 하지만, 잘 이용하면 비싼 브로드웨이 공연을 조금이나마 저렴한 가격에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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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TS 부스는 당일에 남은 표를 할인해서 판매하는 부스로, 뉴욕에 네 군데 정도 있다. 아주 인기가 많은 공연은 남은 표가 없어서 제외되긴 하지만, 공식 사이트나 앱을 통해 할인 중인 공연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공연이 있는지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줄을 서 있으면 그 자리에서 홍보하고 팜플릿을 나눠주는 공연들도 있어서 굳이 정보를 찾아가지 않고 즉석에서 골라도 괜찮다.


친구와 나는 아무런 정보 없이 TKTS 부스로 향했기 때문에 줄을 서서 내내 공연을 찾아봐야 했다. 타임스퀘어 한복판의 TKTS 부스는 높은 접근성으로 인해 줄이 무척 길었다.  뮤지컬 "Phantom of the Opera", "Chicago" 등 유명한 공연들도 많았지만, 선착순 판매로 다수 종료되었고, 거리가 먼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장까지 향하기에 촉박했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효율성에 따른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무조건 가깝고 싼 공연. 우리의 유일한 조건이었다. 그렇게 선택한 공연은 바로 뮤지컬 "Caroline, or Change"였다. 가장 싼 자리로 두 자리 연석 티켓을 달라고 하니 바로 처리해주었다. 공연이 어떨지는 사실상 복불복이었지만, 어떤 공연이든 즐겁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의 이벤트에 참여한 기분이었다. 실제로 줄을 서며 엿들은 대화들에 의하면 그저 아무 공연이나 보기 위해 TKTS로 향한 사람들도 많았다. 가족 단위로 줄을 서 있는 사람들도 많았고, 홍보하는 사람과 공연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연을 향한 관심 하나로 아침부터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라니,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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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단 한 번도 현장 예매를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겐 더없이 신기한 경험이었다. 보통 내가 보고 싶었던 공연들은 온라인 예매도 쉽지 않을 만큼 티켓을 구하기 어려웠을뿐더러, 현장 예매가 가능하다고 해도 할인율이 낮아 굳이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TKTS처럼 통합된 판매 부스가 없는 것도 한몫했다. 대학로의 코미디 연극들을 판매하는 야외 부스들 외에, 더 많은 공연을 다루는 통합된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오프라인으로 무작정 향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온라인 예매도 보통 시작 3~5시간 이전에 막히기 때문에 전화로 하나하나 티켓 현황을 물어봐야 했고, 몰랐던 공연을 우연한 기회로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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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이 시스템에 문제를 느꼈다. 온라인 예매는 간편하지만, 소비자의 주체성을 요구한다. 하지만, 정보가 부족한 소비자에게 주체적인 소비를 바라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마케팅 탓을 할 일이 아니다. 무조건적으로 기대만 높이는 마케팅은 공연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에겐 독이 될 수 있다.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한국의 공연계는 응집력이 부족하다.


한국의 공연의 할인제도 자체는 잘 돼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잘 찾아본다면 여러 이벤트도 진행 중이고, 할인율이 생각보다 높은 공연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재관람 할인, 기획사 할인 등 대중들에겐 진입장벽이 큰 할인제도와 기획사 SNS 등 정말 "잘" 찾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할인제도들이 대다수이다. 전부 내가 유용하게 이용하는 제도들이긴 하지만, 대중들에겐 불친절한 제도들이다.


타임세일, 선물 증정, 스페셜데이 등 재미있고 유용한 이벤트들이 분명히 많은데, 어째 아는 사람들끼리의 파티처럼 지나간다. 당연히 기존 고객들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이벤트들을 기획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공연 산업 자체를 생각했을 때 발전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기존 소비층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신소비자의 유입을 이끌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TKTS와 같은 통합 오프라인 부스나 이벤트는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느꼈다. 물론 한국의 공연계가 브로드웨이만큼의 명성을 지니고 있진 않지만, 반대로 부족한 접근성이 발전의 제약이 되고 있을지 모른다. 언제까지나 온라인상에서 "더 보기" 버튼을 클릭하지 않은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반면, 한국의 온라인 티켓 플랫폼은 정말 잘 되어 있다. 오히려 브로드웨이가 한국보다 복잡하고 불편하다고 느꼈다. 한국이 예약 관리나 취소 등의 처리가 매끄럽고, 플랫폼 UI도 훨씬 깔끔하다. 게다가 2~3개의 플랫폼이 대표적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나름의 통합성고 갖추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는 것과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대학로 코미디 공연이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하나의 이벤트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로로 향하는 사람들은 작품에 대한 기대보단 공연이라는 문화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더 크고,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하는 과정도 하나의 이벤트로 인식한다.


고가의 공연이라고 해서 대중화에 소홀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브로드웨이의 TKTS에서 구매한 나의 티켓은 가장 싼 공연이었음에도 4만 원이 넘었고 할인가 20만 원이 넘는 공연들도 상당히 많았다. 브로드웨이의 명성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가도, 그것 역시 하나의 선입견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지갑을 열기 마련이다.

 

공연장까지의 거리 역시 마찬가지다. TKTS에서는 브로드웨이와 오프브로드웨이의 공연 티켓을 모두 판매하는데,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의 경우, 지하철을 이용해서 이동해야 했던 공연장도 많았다. 하지만, 홍보하는 사람들이 이동 경로와 시간을 상세히 알려주었고, 근처의 관광지나 맛집까지 소개해주고 있었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처럼 일정이 촉박하지 않다면 충분히 도전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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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에 대한 수요는 분명하다. 하지만 공연이라는 상품 자체가 막이 오르기 전까진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 점을 소비자도 생산자도 인정해야 한다. 캐스팅, 시놉시스, 수상력 등으로 기대치를 높이는 것 이외에, 막이 오르기 전의 과정까지도 공연의 일부로 볼 필요가 있다. 다른 어떤 문화예술보다도 공연은 이 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뉴욕 관광안내 책자에도 브로드웨이 공연 티켓 할인 방법은 상세히 적혀 있다. 관광객들은 경험 삼아, 또 그 나름의 이벤트를 즐기기 위해 이에 참여한다. 이 자체로 이미 하나의 여행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다. 휴일에 할 일이 없어 나온 가족들, 데이트를 하기 위해 나온 커플들, 그냥 놀러 나온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할인제도는 소비의 만족도를 높여주고 통합 시스템은 홍보 효과를 야기한다.


공연 산업의 성장에서 대중화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숙제이고, 대중화의 필수요소는 낮은 진입장벽이다. 언제까지나 예쁜 포스터와 전문가의 추천사에 의존한 채 대중의 관심을 기다릴 수는 없다. 한국의 공연계는 조금 더 친근하고, 한층 더 공격적으로 나서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대중이 공연 "A"에 관심이 없다면, "공연"에 관심을 갖게 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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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TS에서 급히 예매한 뮤지컬 "Caroline, or Change"는 작품 면에서 나의 흥미를 전혀 끌지 못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좋은 경험이었다. 온라인으로만 예매하려 했다면 만날 일이 없었을 공연을 덕분에 알게 되었으니까. 나와 같은 경로로 예매한 누군가는 이 공연에 엄청난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그 덕에 다른 공연도 보러 갔을지 모른다.


모든 상품이 그렇듯 호와 불호가 동시에 존재해야 산업은 성장한다. 그러기 위해선 나처럼, 일단 봐야 한다. 아무튼 보게 만들어야 한다. 일회성 소비보다 무서운 것은 무관심과 외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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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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