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새로운 여성상, 영화 '베네데타'

글 입력 2021.12.0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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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아무런 정보 없는 백지 상태에서 영화를 보면서 그 위로 색과 형태를 채워가는 것을 즐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르는 게 약일 때의 안정감보다는 아는 게 힘임이 드러나는 순간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영화 관람 전 미리 관련 정보를 알고 가는 것을 선호한다.

 

말하자면 백지 위에 희미한 HB연필로 가이드 라인을 그려 놓는 것과 같다. 시놉시스을 읽고, 스틸컷을 통해 영화의 톤을 파악한 후에 한 줄 평을 훑어보면 집중적으로 마케팅하고자 하는 지점을 파악할 수 있다. 즉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이 관객을 이끌고자 하는 방향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영화 <베네데타>를 관람하기 전에도 같은 수순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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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신부 성스런 사랑 불경한 창녀 성녀 광녀 신성 모독 은총... '모두가 베네데타'

 

성흔과 그르스도와의 심장 교환, 신과의 결혼 등 종교적이고 에로틱한 무아경으로 신비주의로 추앙받으며 수녀원장에 오른 베네데타, 수녀원에 들어온 바르톨로메아라는 처녀와의 사랑이 교회에 적발되면서 한 순간에 불경한 창녀로 매도되는데...

 

- 영화 <베네데타> 시놉시스

 

 

<베네데타>의 시놉시스는 가히 자극적이라고 느낄 만 하다. 수많은 멸칭이 붙은 레즈비언 수녀의 스캔들 실화라니. 그러나 이 모든 자극적인 카피라이팅 사이에서도 내가 주목한 것은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줄 가능성'이었다. 17세기 당시 공고한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 하에 권력을 유지했던 것이 교회이고, 그 보수성의 감옥 극단에 위치했던 이들이 '수녀'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순결함, 정절을 지킬 의지, 순종적인 성향 등의 봉건적인 여성적 가치를 목숨처럼 수호해야 했던 인물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러한 수녀가 이 모든 가치를 배반한 바 있다니. 그는 분명 아주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게다가 그가 실존 인물이라니.

 

실화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어쩌면 그 함의를 공격 받을 지도 모른다. 영화가 단지 현실을 전달하거나 특정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방식으로만 사용된다고 상상해보라. 예술의 지위를 얻기 위한 그 모든 지난했던 영화인들의 투쟁이 허무하게도, 영화는 그저 '그릇'으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의미있는 이유는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들이 픽션이라는 극 형식에 둘러싸여 플러스 알파의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영화적으로 재구성된 실화는 분명 영화만이 발굴할 수 있는 사건의 단면이나 함의 등을 끌어낼 수 있고, 이로 인해 실제 사건의 인과는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 해서 실화 바탕인 <베네데타> 역시 이에 준해 관람하는 것이 하나의 재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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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영화는 새로운 여성상의 일면을 보여주는데 성공했다고 여긴다. 특히 신성 모독을 다룬 영화 중에서는 꽤나 참싱성이 돋보였다. <베네디타> 관련 대부분의 리뷰들이 밝히듯, 이 영화는 진실과 거짓,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간다.

 

영화에서 서사적 텐션을 드러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관객에게 정보를 더 주고 무지한 인물의 행동에 긴장감을 느끼게 하거나, 인물이 알고 있는 것을 관객에게는 끝까지 보여주지 않다가 반전을 도모하는 등의 수순이다. 그러나 <베네디타>는 인물들과 관객이 동일한 양의 정보를 인지한 채로 흘러간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신'의 존재에 대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종교와 신, 현전과 부재의 문제에 있어 진실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할까. 우리는 모두가 무지하다.

 

이 영화에서 절대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베네데타도,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수녀원의 일원이 된 바르톨로메아도, 베네데타 이전의 원장 수녀였던 펠리시타, 그의 딸이자 역시 수녀인 크리스티나 모두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신과 믿음의 가치를 적절히 이용한다. 심지어 신 그 자체도 선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주인공 베네데타에게 매력을 느껴 그를 응원하며 보긴 했지만, 온전한 정을 내어줄 수 없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성흔, 즉 성흔이 정말 스스로 상처를 내어 만든 것인지에 대한 답도 명쾌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베네데타가 궁지에 몰릴 때마다 나오는 굵고 날카로운 목소리는 베네디타의 뛰어난 연기력과 처세력을 보여주는 것 같다가도, 영화는 그가 정말 신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가정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이 영화는 베네데타가 성녀에서 창녀로 전락할 뻔하고 다시 성녀로 추앙받는 이 모든 일련의 사건과 교차하는 인물 간의 진술을 통해 관객 역시 저울대에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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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데타는 분명 수많은 소수자성을 지닌 인물이다. 여성으로서, 수녀로서, 또 퀴어로서도. 당시 시대상에서는 마녀로 몰려 마땅한 여성이 오히려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태도로 스스로의 입지를 다져나가는 모습은 가히 주목할만 하다. 게다가 이는 그저 시도로만 그치지 않는다. 베네데타는 실제로 원장 수녀 자리를 꿰차 사회적 지위를 얻었고, 페샤의 시민들에게 성녀로서 단단한 기반을 얻었으며 바르톨로메아와의 애정 관계에서도 갑의 위치를 점령한다. 권력, 지위, 사랑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는 적극적인 여성인 것이다. 그 특유의 정치력으로 다른 인물들을 천천히 포섭해나가는 베네데타는 비록 절대 선이라고 여길 수는 없지만 매력적인 인물임은 확실하다.

 

앞서 언급했듯 가부장적인 봉건성 하에 권력 기반을 유지해갔던 당시 교회 세력이었다. 베네데타는 수많은 소수자성을 안고도 이 종교라는 신성한 기반과 남성 권력 위주의 제도에 맞서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또 한번 독특한 여성상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기이한 톤 앤 매너를 완성하는 요인에는 베네데타가 주의 신부를 넘어 신 그 자체로서의 신성성을 얻는 과정과 레즈비언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고 수용하는 과정이 겹치기 때문이다. 낮에는 수녀원이라는 경건하고 절제된 공간에서 봉건적인 가치를 신봉하면서도, 밤에는 현대의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는 방식으로 성교를 이어가는 베네데타의 모습을 통해 감독이 원작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바르톨로메아와 베네데타가 이룬 연인 관계는 오히려 현대적인 면모를 띄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사랑은 어제 내일 할 것 없이 똑같이 위태롭고 치기 어리다는 해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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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모두 관람한 후에 다른 관람객들의 후기를 찾아보았는데, 감독이 여성의 나체에 지나치게 집착했다는 한계를 지적한 경우가 상당했다. 남성 감독이 여성들 간의 섬세한 애정 관계를 완벽히 구현하지 못했음이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는 서로의 벗은 몸을 봐서도 안 되는 엄격한 수녀원 공간 위에 여성의 나체 이미지가 무분별하게 겹치며, 오히려 여성 신체에 입혀진 신성함과 순결성의 이미지를 흐렸다고 느낀다. 다시 말해 여성의 신체가 착취적으로 쓰였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착취 대상이 되는 이유들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실현되었다고 느낀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의견은 다채로울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영화 <베네데타>를 꼭 한 번 관람하기를 권하는 바이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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