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셔커스>, 샌디 탄 감독, 2018년 작
글 입력 2021.12.07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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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괴담이 되어버린 <셔커스>


 

'우리는 세상 한가운데의 작은 섬에서 우리의 운명을 기록했다. 그때가 1989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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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의 샌디 탄은 친구 소피와 재스민, 그리고 교사 조지 카도나와 함께 영화 <셔커스>를 만든다. "세상에는 행동하는 자, 흔드는 자, 그리고 도망자인 셔커스가 있다"라는 샌디의 상상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는 싱가포르 거리를 횡단하는 킬러 S의 여정을 통해 고유의 세계를 확장해 나간다.

  

16살의 킬러 S, TV를 사랑하는 엄마와 같이 사는 TB, 말썽거리를 찾아 동네를 돌아다니는 TJ, 뇌전증을 앓고 있지만 춤을 좋아하는 몬스터, 경험 없는 쾌락주의자 로버트,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개인 메가, 시력 검사관과 그의 아들 하리오까지... 시종일관 독특한 인물들이 S의 모험에 등장하며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셔커스>는 기발한 발상과 전에 없던 시도로 싱가포르 독립영화계의 기대주가 된다. 현장의 주축이었던 세 친구 샌디와 소피, 재스민은 힘들었던 제작 과정으로 완전히 탈진해버리지만, 불가능해 보였던 영화 만들기를 해낸 것에 조금의 위안과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그들을 유일하게 지탱해주었던 성취감마저 없어져 버리는 사건이 생긴다. 교사이자 <셔커스>의 감독이었던 조지가 필름 70통을 들고 행적을 감춘 것이다. 분노를 쏟아부을 곳도 없었던 그들은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셔커스>를 없던 일인 것처럼 취급하며 잊으려 애쓴다.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셔커스>에 관한 이야기는 그들을 매번 같은 지옥으로 몰아넣는다. 재스민은 "10t 트럭에 치인 것 같았어. 순식간에 내 모든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거 같았어."라며 당시를 회상한다. 1992년의 여름을 떠올리던 세 친구는 삶의 거대한 부분을 영원히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아프게 받아들인다. 희미한 기억으로만 존재하던 그 시간은 영혼의 일부를 죽이는 생생한 고통이 되어 그들 앞에 돌아온다.

 

조지는 모든 걸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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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뒤로 가야 했다


 

샌디는 과거 조지와 함께했던 미국 장거리 여행을 다시 떠난다. 자신을 따라 쫓아오라고 말하는 듯한 조지의 그림자를 의식하며 샌디는 이십여 년간의 저주를 풀기 위한 여행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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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커스>의 필름 70통은 조지의 죽음과 함께 발견되었다. 깔끔하게 보존된 상태였다. 아이들의 시간과 열망이 새겨진 필름을 독차지한 조지의 저의는 무엇이었을까. 조지의 비뚤어진 욕심은 여러 사람의 꿈과 에너지를 앗아갔다. 샌디는 <셔커스>가 사라짐과 동시에 실험하고 표현하려는 욕구 자체를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조지의 또 다른 제자였던 스티브는 조지에 대해 "상대에게 정말 묘한 방법으로 꿈꾸던 일을 이룰 수 있다고 느끼게 한 다음, 성취가 눈앞에 다가오면 방해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라 묘사한다.

 

조지는 자기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제자들을 질투했으며 그들이 성공에 가까워질수록 위협을 느꼈다. 조지는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리적이고 결정적인 무언가를 빼앗아 종적을 감추는 방식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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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조지는 실제로는 장면을 찍고 있지 않으면서 촬영하고 있는 듯이 연기하는 기괴한 행동을 즐겼다. 조지의 요구로 어린아이가 하늘을 나는 추가 씬을 찍던 날, 샌디는 카메라 안에 필름이 없었다는 걸 알아챘다.

 

이를 통해 조지가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학적이고 아주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조지는 아이들의 일부를 파괴하고 몰살시켰다.

 

 

 

재창조된 유령의 시간


 

"수년간 난, 있지도 않은 영화에 대해 말하는 미친 사람 같았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서만 근사한 줄 알았던 이들 모두가 정말로 근사하게 거기 있었다." 샌디는 소리 없이 영상만 덩그러니 남은 <셔커스>의 필름들을 재창조하며, 없던 것으로 치부하던 과거를 복원해낸다.

 

<셔커스>를 들춰낼수록, 조지 카도나를 한 겹씩 벗겨낼수록 그 혼령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우울한 예감이 그녀를 맴돌지만, 오직 영화에 대한 믿음으로 가혹한 여름을 함께했던 얼굴들을 통해 존재의 명백함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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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여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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