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21 공예트렌드페어, '형형색색' 작품들로 백지를 채우다

글 입력 2021.11.2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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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공예트렌드페어가 코엑스 C홀에서 11월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개최되었다. 올해로 16회를 맞이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공예 박람회인 공예트렌드페어는 공예의 가치를 발견하고 미래지향적 발전을 통해 한국 공예 문화의 대중화, 산업화와 더불어 아시아 공예 문화를 선도한다.

 

300여 개의 참가사와 함께하는 이번 페어는 현대공예 분야와 전승공예 분야를 아우르는 한국 공예를 쇼케이스 형태로 보여주는 주제관 기획전시 ‘형형색색(形形色色)’과 더불어 주요 갤러리가 참여하는 ‘아트&헤리티지관’과 스튜디오, 브랜드, 기업, 공방들이 참여하는 ‘브랜드관’ 및 ‘창작공방관’, 학생들의 창의적인 공예품을 전시하는 ‘대학관’, 공진원의 사업 결과물을 선보이는 ‘KCDF 사업관’ 등 총 6개의 관으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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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필자는 공예라 하면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드는 장면만 떠오를 뿐, 그것에 대해 무지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예가 삶에 이전보다 깊숙이 침투한 것 같다고 자주 느꼈는데 그 이유는 근래 들어 부쩍 함께 유리공예나 도예 등을 체험하기 위해 공방에 가자고 제안하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텅 빈 백지를 다채롭게 채색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번 페어에 방문했다.

 

 

 

보다 뾰족해진 취향, 독립시계



과거에 비해 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발전은 개성을 말살시켰고, 시장에 진열된 상품들로 인해 우리의 취향을 지켜내는 일은 이전보다 어려워졌다. 소셜 미디어 등으로 인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몰개성의 시대, 취향은 이제는 취미처럼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유를 누리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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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훈 스튜디오

 

 

작가 유민훈은 보다 뾰족해진 취향으로 자신만의 시계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독립시계를 제작한다. 금속공예와 디자인을 전공하던 중, 기계 정밀가공에 큰 흥미를 느껴 이와 예술적 표현을 모두 할 수 있는 독립시계 제작 분야를 알게 되어 시작했다고 한다.


벽면에는 여러 장의 도면이 붙어 있었으며 진열된 미세한 크기의 시계 부품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는데, 굉장히 섬세한 작업이며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직접 태엽을 감아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는데 한 시계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노고와 세세한 과정들을 본 뒤여서 그런지 사소한 그 행위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시계는 오랫동안 시간을 표시하는 실용적인 도구였지만, 현대에 와서는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자 예술품에 가깝게 느껴진다. 작가는 시계에 독창적인 표현 방법을 적용하여 시계가 가진 예술적 면모를 보여준다.

 

 

 

추한 공예를 시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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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tesque Craft - 김영광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다소 은빛의 독특한 형태의 작품이 멀리서부터 눈에 띄었다. 가까이에서 본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름다움보다는 낯선 것에 가까웠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떠오르는 고철 덩어리 같은 외형에 사람의 장기를 연상시키는 모형들이 탑재되어 있었다.


작가는 금속공예를 정의하는 ‘장인 정신’, ‘기능성’ 등이 일련의 아름다움으로써 공예를 특별하게 만들지만 그만큼 다양한 시도를 만든 한계성으로 생각하여 이에 반하는 ‘추한’ 공예를 시도했다고 한다. 러프하고 즉흥적인 망치질, 과한 용접의 사용 등이 그 예이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 공예와 예술의 경계를 인체 및 유기체의 분해되고 왜곡된 형상을 통해 질문하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인체의 왜곡된 형상을 드로잉이나 평면 세계에 펼쳐둔 작품을 접한 기억은 있었지만 금속공예를 통해서 이렇게 그로테스크한 형태로 3차원의 세계에 입체적으로 구현해낼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공예의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았던 시간이었다.

 

 

 

흙에 매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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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바닷가의 모래사장에서 모래에 뒤덮인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는 작품을 만났다. 모래는 이리 저리 쓸리거나 움푹 파여 있기도, 온통 일그러져 있기도 하다. 한쪽에는 주먹을 쥐고 깊이 넣었다 뺀 것 같은 모습도 보인다.


작가와 가까운 거리에서 곧바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공예트렌드페어의 장점 중에 하나다. 감사하게도 작품에 대한 설명을 바로 들을 수 있었는데, 세라믹 아티스트인 그는 흙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흙으로 원하는 형태를 마음먹은 대로 구현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예측 불가능함이 삶의 은유처럼 느껴져 매력을 느꼈다고.

 

연속적으로 놓인 같은 크기의 판에 움푹 패어있거나 불쑥 솟은 형태들이 눈에 띄는 이 작품은 그 흙의 특성 자체를 표현한 것이다. 흙에 손을 찍고, 깊이 손을 넣어 보기도 하며 그렇게 감각하는 과정을 통해 흙이 가진 고유의 매력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한다.


다시 본 작품에는 우리 삶의 희노애락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예측 불가능하고 정답조차 없지만 그럼에도 기대해볼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 흙과 생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비슷한 모양새인 듯하다.

 

 

 

버려지는 것에 대한 미적 가치를 재조명하다, ‘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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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희고 검은 도자기의 아랫부분에는 마치 물방울이 맺힌 듯 송글송글 금이 박혀 있다. 이는 조선시대 때 제작된 전통적인 도자기 ‘정호다완’의 죽절 굽 주변에 생기는 유약 말림 현상인 ‘매화피’를 의미한다.

 

매화피는 기존에는 정호다완의 특징적인 부분 중에 하나로 이해되었지만 작가는 매화피를 금빛으로 표현하여 그것이 특징 중 하나로 국한되어지는 것이 아닌, 일부라는 의미에서부터 확장하여 매화피 그 자체로 주목받게 하고자 했다.


이 부분에서도 유추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거나 버려지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 관심을 시작으로 도자 제작과정 중 슬립 캐스팅의 페틀링에 주목했다. 페틀링은 석고 몰드의 분할선에 의해 기물표면에 생긴 틀 자국을 다듬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틀 자국은 여분의 점토가 되어 버려지게 된다.

 

그는 틀 자국이 버려지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벗어나 틀 자국과 함께 번조하는 과정을 통해 슬립 캐스팅(석고로 만든 거푸집에 이장을 부어 넣어서 만드는 도기 제조법)에서 버려졌던 부위들을 영구적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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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함, 김동인

 

 

위의 작업 방식을 이용하여 만든 작품이 이 ‘결함’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부족하거나 완전하지 못하여 흠이 되는 부분을 뜻하는 ‘결함’은 작가의 손에서 맺을 결에 꽃봉오리 함자를 사용한 ‘결함(結䓿)’으로 다시 피어난다.


자원이 순환되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환경오염에 대한 관심도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시대다. 페어를 오기 전부터 리사이클링 혹은 업사이클링 작품들이 많을 것이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버려지는 것들을 재조명하기를 시도하는 작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역시 사람마다 고유의 방식대로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있으며, 그 이야기의 힘은 아주 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나의 시선에서 버려지는 것은 무엇이었나. 저마다의 모습으로 빛을 내는 도자기들을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실용과 조화를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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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그륵 X GREUK

 

 

꽃이 담긴 화병에는 책이 기대어져 있다. 와인병의 서구적 형태를 민화에서 보이는 책가도, 책거리의 구성에 화병으로 삽입한 형태이다. 책가도란 책장과 서책을 중심으로 하여 각종 문방구와 골동품, 기물 등을 그린 민화의 일종이다.

 

책가도의 주체인 책은 사용자의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어 자신만의 취향을 공고히 담아낼 수 있다. 하나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진열하기에도 시각적인 즐거움이 있고 책받침대로 쓰기에도 실용성이 있어서 미적인 요소와 실용적인 쓰임이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라고 느껴졌다.

 

 

 

국악과 공예의 만남, ‘K-마에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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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디자인: 김상윤

협업공예가: 최민정(전통매듭), 차이킴 김영진(한복)

협업국악인: 김수연(판소리), 이태백(고수)


 

이밖에도 국악과 공예의 만남을 보여주는 ‘K-마에스트로’ 관은 페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K-마에스트로 관은 국립국악원이 무형의 예술인 전통음악과 유형의 예술인 공예를 융합한 무대를 선보이는 자리로, ‘화연’이라는 공간에서 판소리와 매듭공예를 접목시켰다.

 

힘껏 만개하였다가 지는 꽃들과 우리의 삶은 닮아있다. 화연에서는 각기 다른 형태로 엮어지고 풀어지는 꽃 매듭으로 우리의 인생살이를 은유하고,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조명의 변화로 희로애락을 표현했다.

 

*

  

페어에서 만난 한 작가님께서 남겨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았다. 순수미술과 디자인, 공예의 차이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곧바로, 그러나 오랜 사유의 흔적이 드러나는 답변을 남겨주셨다.

 

순수미술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이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한다면 디자인은 아무래도 사람들의 선호를 생각하고 자본을 고려할 수밖에 없고, 공예는 무언가 비등하게 느껴지는 가치들 사이에서 자신이 더욱 마음이 가는 것을 택하는 것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마음' 두 글자를 힘주어 말했다.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인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순수미술, 디자인, 공예. 이들은 분명히 구분되는 점이 있으나 이러한 질문과 답이 오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이 셋의 경계는 이전보다 흐릿해지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고 느꼈다.  공예품들은 더 이상 쓰임이 강조되고 편리함에 초점이 맞춰진 도구로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자체로 직관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했고 하나의 아트 오브제로 인식되었다.


펜데믹으로 인해 개인 거주공간에 대한 애정이 급증하면서 미술시장도 함께 확대된 작금의 시대, 공예트렌드페어는 그동안 낯설었던 공예에 대한 벽을 허물어 공예를 우리가 향유할 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덕분에 텅 빈 백지는 금세 형형색색의 다양한 작품들로 채워졌다.

 

공예트렌드페어는 한국 공예문화가 더욱 대중화될 수 있도록 선도하는 것에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공예에 관심을 가지며 남은 여백을 다른 색깔들로 채워 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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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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