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글을 쓰는 마음 - 선인장 끌어안기

글 입력 2021.11.2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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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은 보통 하나의 문장에서부터 시작한다. 문득 떠오른 문장 하나가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고, 혹여라도 잊을까 오래오래 그 문장을 곱씹다 메모장에 옮겨 적는다. 그래서인지 글을 쓸 일이 생기면 메모장부터 뒤적이는 습관이 있다. 이제는 그리 많은 문장이 남아있지 않지만 혹시 몰라 구석까지 스크롤을 내려보곤 한다.


하얗게 빈 화면 위로 반짝반짝 점멸하는 커서를 보고 있으면 언제나 막막하다. 나름 적지 않은 분량의 화면을 채우며 시간을 보내온 것 같은데, 여전히 어렵다. 쉽게 쓰여지는 글은 없다. 생각하는대로 글이 써지던 날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왠지 먼 이야기 같다. 그 시절 나는 종종 손글씨를 답답해했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의 속도를 손이 따라가지 못해서 휘발되는 문장들을 아쉬워했다. 요즘은 가끔, 자꾸만 멈추는 사유의 공백을 가리기 위해 종이에 글씨를 꾹꾹 눌러 써 보기도 한다.


글은 쓸수록 어려운 것 같다. 게다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 글을 쓰기 쉽지 않은 환경에 놓여있다. 물론 나보다 더 열약한 상황에서 훌륭한 글을 써내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가진 그릇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왜 이렇게까지 이 일을 계속 하려고 하는지 누군가 물어보면, ‘그러게요’하고 대답하고 싶은 심정일 때도 있다. 하지만 왠지 이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최근에 취향에 관한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그 글을 쓰기 위해 조용한 저녁 책상 앞에 앉아 한창을 몰입하다보니 그리운 감각이 느껴졌다. 한창 글을 쓰던 때의 나. 수십번을 반복해서 읽고 한 문장씩 고쳐쓰던 열정과 글을 마무리하고 나서 오늘은 ‘하고싶은 말을 했다는 기분’을 느끼며 침대에 드러눕던 순간의 감각 같은 것들. 삶 한켠에 언제나 글쓰기가 있었던 시간을 떠올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래서 글쓰기를 사랑했었지.”


글쓰기와는 언제나 애증의 관계이다. 소중하고, 사랑해마지않는 일이지만 그만큼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일. 최근 읽었던 책의 첫 페이지에 있었던 문장이 떠오른다.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분명한 것은 고통 너머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김초엽 작가의 짧은 소설집 <행성어 서점>에 수록된 글 중 ‘선인장 끌어안기’라는 이야기가 있다. 몸에 닿는 모든 것에(입고 있는 옷에조차) 극심한 고통 느끼는 ‘접촉 증후군’이라는 병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그래도 그 사랑을 감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지”하고 회고하는 주인공이 끔찍한 고통을 참아가며 누군가를 끌어안았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 끔찍한 고통 너머에서만 발견되고 증명되는 어떤 것. 선인장 끌어안기.


 

죽음을 앞두고 그 애는 말했어. '파히라, 내가 당신을 한 번만 안아봐도 될까요? 딱 한 번만요.' 나는 팔을 벌려 그 애를 안았어. 끝까지 안고 있었지. 비명을 참고 눈물을 참으며, 피부 표면을 칼로 베어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생각하면서.


(김초엽 작가 짧은 소설집 <행성어 서점>, 소설 선인장 끌어안기 중에서)

 


소설을 읽으며 내가 글을 쓰는 일이 꼭 선인장을 끌어안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플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끌어안는 일. 좋아하지만 고통스럽고, 그만큼 즐겁고 소중한 일. 그렇게 모순된 마음을 가지고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마음일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공개된 공간에 글을 써서 올린다는 것은 결국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해서이지만, 글을 쓰는 일의 의미는 단지 그것으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처음 글을 드러내면서부터는 사람들의 반응에 많은 관심이 갔다. 내 일기장에만 담긴 글을 누군가 읽는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여러 가지 형태로 돌아오는 작은 반응들이 재미있었다. 부끄럽지만 그런 것들에 일희일비하던 때가 많았다. 지금도 그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글쓰기의 다른 가치들에도 더 많이 귀를 기울이게 됐다.


조용한 방에 앉아 나와 내 글에만 집중하며 보내던 시간을 떠올리면 글은 나를 위해 쓰는 거라던 말도 이해가 간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스스로와 주변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별 뜻 없이 지나갔던 일상도 의미있는 하나의 장면으로 탈바꿈한다. 글쓰기는 의식적으로 삶애 관심을 갖고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일기나 메모같은 짧은 글이라고 할지라도,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 날의 삶과 그렇지 않은 날의 삶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글을 쓰지 않는 삶이 조금 더 거칠다. 더 쉽게 말하고, 짧은 생각으로 행동하고 만다. 의식적으로 나의 삶을 자각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삶의 차이라고 할까. 글을 좀 쓴다고 해서 당장 많은 것이 변하고 한순간에 후회없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글을 쓰는 삶이 더 많이 후회하고 더 많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시작은 언제나 거기서부터라서, 그 부끄러움과 불편함이 기분 나쁘지 않다.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원하는 뜻이 되도록 단어를 배열하고 문장을 조직하는 일이다. 글은 쓰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라는 신형철 평론가님의 말을 좋아하고 종종 인용한다. 머릿속에 단어를 늘어놓고 고민하다 보면 정말 글을 ‘찾는다’는 생각이 든다. 퍼즐 놀이를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의미없는 단어와 일상의 단면들을 끼워맞추고 기워붙여 마음속에 하고싶었던 이야기를 정확히 표현하는 문장을 꺼내놓으면 꽤 행복하다.


글을 쓰며 내가 마음 속 깊이 하고싶었던(그렇지만 나도 정확히 알 수 없었던) 이야기를 구체화된 언어로 꺼내놓고, 진실한 마음으로 소통의 가능성을 꿈꾼다. 꾸밈없는 글을 쓰고싶다.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어떤 부담감 때문에 적어내린 글들도 있었음을 기억한다. 적어야 하는 것을 적고, 적지 않아야 하는 것들 적지 않을 수 있는 분별력과 용기가 내 글쓰기에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 내가 어떤 글을 써내려갈지,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떤 글이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 기록해갈 내 삶의 흔적들을 여러분이 함께 나눠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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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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