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뒤틀린 욕망의 끝 - 연극 '슈미'

글 입력 2021.11.2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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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우월감으로 가득 차 있는 슈미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전임 교수 임용을 앞둔 경만은 신혼여행에서 막 돌아왔다.

 

이들의 친구 애경은 슈미와 경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영국에서 깜짝 귀국한다. 그리고 유완이 영국에서 책을 발표해 큰 인기를 끌었으며, 곧 나올 후속작은 자신이 집필을 도왔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도규는 슈미와 경만을 호시탐탐 자극하며 슈미를 손에 쥐려 하는데...

 

 

슈미는 자신의 안정과 평안, 당장의 감각적 만족만을 위해 살아간다. 자기 자신만이 가장 귀한 존재다. 세상의 모든 것은 그녀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는 쌍방 교류가 아닌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일 뿐. 특히 이러한 점이 두드러졌던 모습이 남편인 경만과의 관계와 애경을 대하는 자세에 있었다.

 

슈미는 한점 부끄럼 없이 말한다. 경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단지 자신을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다루기 쉬운 이를 곁에 두었을 뿐이다. 그리고 경제적 안정을 얻기 위해 이용한다. 경만의 경제적 부담은 아랑곳 않고 고급스러운 집에서 평안을 누리며, 피아니스트를 불러 집에서 연주를 시키려 계획할 정도. 그 과정에서 경만과의 유대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죄책감은 없다. 노예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에게 그저 우아하게 명령한다.

 

한편 애경에게는 유완과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서슴없이 다가간다. 손 닿는 것도 싫을 정도로 애경을 멀리하던 슈미는 자세를 바꾸어 우리가 절친이 아니냐 설파하며 자신이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끌어낸다. 슈미는 자신 외의 모든 것,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 이렇다. 놀라울 정도로 변함 없는 자세다.

 

그래서 슈미의 삶에서 거짓과 진실은 없다. 엄밀히 말하면 전혀 필요치 않다. 모든 것의 기준은 제 욕망을 충족하는 데 있기에 진실과 거짓도, 옳고 그름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타인의 감정과 생각은 자신이 궁금하지 않는 이상 듣고 싶지도, 수용하고 싶지도 않다. 유하게 넘어갈 필요도 없다. 싫어, 혹은 꺼져. 본인이 혐오하고 싫어하는 감정이나 상대방의 관계를 잘라내는 거부의 표현을 칼같이 명확하게 전한다.

 

공감과 배려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도덕적 가치관은 그녀에게 쓰잘데기 없는 허물일 뿐이다. 그녀는 기존의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또 파괴한다. 그녀에게 죽음이란 이 삶에서 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다. 이처럼 작중에서 지켜보게 되는 슈미의 모습은 때때로 기이함을 넘어 불쾌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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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격적 결함을 가진 것처럼 묘사되는 슈미가 관람객에게 최소한의 공감조차 얻기 힘든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불합리한 인간성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물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슈미를 이해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만, 그녀의 과거를 생각하면 자신만의 이상과 가치에 스스로를 속박한 슈미가 파멸에 이르는(그녀의 언어에 의하면 용기와 자유인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일말의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녀의 기질이 형성된 것은 과거, 상상 이상으로 부유하게 살았던 유년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던 가장 자유로운 시절. 그러나 부모의 자살 이후로 상황은 완전히 전복된다. 재산을 노린 친척들에게 시달리면서 화려했던 일상은 하루아침에 꿈처럼 사라졌다. 그녀에게는 저주처럼 남은 총 두 자루 뿐이었다.

 

슈미는 굉장히 불편한 인물이다. 사이코패스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녀의 생각과 행동을 쉬이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2시간 동안 그녀를 지켜보며 문득 느끼는 것은 슈미의 본질과 나의 본질이 얼마나 다르냐는 작은 의문이다. 제 욕구를 채우기 위한 우선순위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우리와 분명 닮은 구석이 있다. 겉으로 나타나는 표정과 행동, 언어는 사회화 과정을 거쳐 연출해낼 수 있으나 우리의 내면은 어떠할지.

 

세 남자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슈미를 욕망하는 모습만 봐도 그렇다. 슈미를 트로피처럼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도규는 소유로, 유완은 이해로, 경만은 헌신으로 그녀를 욕망했다. 대체 슈미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슈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적 요건에서는 분명 자유로울 수 없었으나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파괴적인 당당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도도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이할 정도로 굳건한 자아.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슈미 역시 자신의 욕망을 억압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내면만큼은 오로지 스스로만을 위해 살았다. 자기 자신만으로 살아가는 존재. 인간이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일 때가 있다. 극중 모두가 슈미를 욕망하는 모습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잔인할정도의 이기심을 악으로 여기기보다 은근히 갈망하는 뒤틀린 현대인의 심리를 반영한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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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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