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길의 도화선이 된 건 다름 아닌 사자의 꼬리 [영화]

<레 미제라블>, 현대판 장발장
글 입력 2021.11.2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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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가장 큰 특성이자 목적이라고 한다면, 필자는 늘 서사(narrative)를 먼저 꼽는다. 이야기는 곧 인간의 본능이라고들 한다. 우린 도무지 말을 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다. 그 본능을 철저히 따르기 때문인 건지, 혹은 영화 지식이 썩 깊진 않기 때문인지, 연출, 미장센, 카메라 등 영화를 구성하는 갖가지 것 중 유독 서사가 먼저 와닿았다. 얄팍하고 빈약한 서사의 영화는 그 안의 화면구성이 얼마나 화려하고 우수하든 간에 큰 감흥을 주진 않았다.

 

가뜩이나 수많은 이야기가 세상에 나온 지금 이 시점에선 더더욱 어떻게 이야기를 변주하고 주제를 통할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다. 그중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쌓이다 어느 순간 합치되어 펑 터지듯 폭발적인 순간을 가진 영화들이 있다. 병치된 이야기들이 긴밀성을 갖고 유기적으로 연결되기란 어려운 일이 분명하다. 이야기마다 존재하는 감정선과 몰입도는 유지되면서도 자연스럽게 맞물려 들어야 한다.

 

영화 <덩케르크>가 그랬다. 하늘, 바다, 육지 그리고 한 시간, 하루, 일주일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 속의 각 인물은 각자의 세계에 있다. 처음엔 종잡을 수 없다가도 종종 인물의 시공간이 맞닿을 때면 전율을 느꼈다. 분산되어 있던 인간과 삶이 퍼즐처럼 한 화면에서 공명하고 그로부터 우리에 전해지는 울림은 ‘영화’란 매체만이 줄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

본 글은 <레 미제라블>의 주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레 미제라블>,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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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4개의 인간군상이 병치된 영화가 있다. 2019년 래지 리 감독의 <레 미제라블>이다.

 

‘Do You Hear the People Sing’으로 유명한 2012년의 <레미제라블>과는 다른 작품이다. 프랑스 몽페르메유에서, 포식자처럼 자리잡고 있는 경찰 강력반 셋,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이민자 아이들, 이슬람 어른들, 집시들. 이야기의 주 흐름은 강력반 셋을 따르지만, 동시다발적으로 교차되는 4개의 서사는 4개의 끈에서 시작해서 점점 하나의 끈으로 엮여간다. 이야기의 끝에서야 우리는 그 끈의 끝에 붙어버린 불을, 그 불이 우리를 집어삼키러 화르륵 번져가는 광경을 목도한다.

 

주요 4개의 서사 모두가 촘촘하기에 아쉽게도 모두 살펴보기엔 벅찰 듯싶다. 단순히 줄거리 나열을 하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을 만큼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영화지만, 그 줄거리는 영화를 직접 봄으로써 경험하시길 권하고 싶다. 이번 글에선 각 서사를 소개하기보단, 각 집단의 흥미로운 요소만 집어내서 대화를 이끌어가 보려 한다. 감히 영화를 본 사람에겐 또 다른 시사점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겐 보고 싶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 경찰, 그 속의 그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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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페르메유의 경찰들은 조직폭력배라도 되는 것처럼 그 지역을 주름잡고 있다. 곳곳에 부려먹을 이들이 존재하고, 지나가다 여학생에 대뜸 불시검문을 요구하거나, 영장 없이 이민자들의 집을 수색하려고도 든다. 특히 팀장인 크리스가 그렇다. 이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폭력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그의 말은 이성적으로 납득하긴 어렵지만, 사건과 폭력이 난무하는 곳에서 어쩌면 합리적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안겨준다. 그러나 여전히 ‘백인’이라는 인종적 특성이 오히려 이주민으로 가득한 몽페르메유에서 이방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여러 일을 겪으면서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드는 스테판도 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조용히 잘 해결해보려는 그의 외침은 먹히지 않고 현실을 해결할 순 없는, 뜬구름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와다가 있다. 대체로 강력반의 대장 행세를 하는 크리스, 혹은 영화에서 심리적 갈등과 외적 갈등의 해결자로 존재하는 스테판에 집중하게 된다. 그와다는 크게 튀진 않는 존재다. 물론 이사를 고무탄으로 쏴버려 마지막 비극을 자초한 게 그와다기도 하다. 그의 큰 특징은 ‘이민자’라는 점이다. 이민자들은 크리스에게 열어주지 않던 문을 그와다에겐 열어준다. 동료들에게 아프리카 이주민들의 특성을 얘기하기도 한다. 어머니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이민 2세대에 속하는 듯하다. 그들의 문화를 잊지 않고 있으며 충분히 이민자들 사이에서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여지가 보인다.

 

그러나, 그와다는 이민자를 통제하고 제어하는 ‘경찰’이다. 특히 영화에서 경찰은 이주 집단에 녹아들 수 없는 존재로 묘사된다. 경찰 표지를 하지 않아도 모두 알아보고, 아이들은 그들을 보면 도망가거나 테러를 가한다. 절대 녹아들 수 없는 존재다. 즉, 그와다는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덜어냄으로써 오히려 자신이 속했던 집단과 괴리된, 경찰이라는 새 정체성을 띤다. 수많은 이민 2-3세대 아이들은 사회와 유리된, 민족과 결합된 정체성을 유지할지, 혹은 그 정체성을 덜어내고 프랑스 주류에 녹아들지를 택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와다는 후자의 미래다.

 

 

 

# 아이들, 그 속의 뷔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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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에서 카메라가 멀어질수록 관객은 관찰자로 변모한다. <레 미제라블>은 초반부부터 종종 하늘에서 광경을 비춘다. 그 장면들은 사건이 촉발되었거나 촉발되기 일보직전의 긴장감 있는 상황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느낌을 준다. 그러다 조종하는 주체인 뷔즈가 등장한 순간 그 관조는 목격으로 전환된다. 자신의 바운더리 밖을 경치보듯 감상하는 게 아니라, 당장 곁에 있는 누군가에 가해지는 위해와 사건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뷔즈는 행동하는 아이들 집단에 속해있지 않다. 그런데도 극에서 일어난 파국의 핵심에 있다. 경찰은 뷔즈를 찾으려 혈안난다. 목격은 보는 것 넘어서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드론으론 아이들에 가해진 증오와 폭력을 포착했다면, 현관문의 작은 구멍으론 경찰들에 가해지는 증오가 불러온 증오와 분노를 목격한다. 소년이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않는 유일한 객관자다. 양쪽의 혐오로 얼룩진 다툼을 한 발짝 물러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 사자의 꼬리에 불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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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집단이 엮여들기 시작한 건 다름아닌 집시의 '새끼 사자 분실 사건' 때문이었다. 집시와 이민자 집단이 부딪히려 들고, 경찰은 중재자를 자처한다. 사자는 이미 도둑질로 경찰서에 갔었던 이사의 품에 있었다. 빵을 훔친 장발장처럼 이사는 사자를 훔쳤다. 하지만 이번엔 그 죄를 사해줄 이가 없었다.

 

이사의 도둑질 자체에는 도덕적 문제가 존재하지만, 우리는 이사가 받은 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총구가 겨눠진다. 사자를 찾아달라는 부탁에 이슬람 집단의 대장 격인 살라는 사자는 우리에 갇혀 있을 동물이 아니라 말한다. 이사도 그렇다. 아이가 마주해야 했던 것이 무자비한 폭력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자를 훔친 이사는 또다른 사자였다. 증오 혹은 증오에 무뎌진 사람들의 폭력은 사자의 꼬리에 불을 붙였다. 마지막, 화염병을 들고 있는 이사의 모습은 불길의 아지랑이와 겹쳐 보인다.

 

초반부에 이사의 의미심장한 대사가 하나 있다. 아프리카에 살 때엔, 도둑을 불로 태워버렸다는 얘기였다. 어찌됐든 도둑 이사는 불길에 휩싸였다. 손에 쥔 불을 어디로 번지게 할 지, 어디까지 번지게 할지는 영화가 끝나고서도 알 수 없다.

 

 

 

#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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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절대악을 꼽자고 하면, 누굴 뽑아야 할까. 모든 인물에 위해를 가하는 크리스? 분명 과한 폭력을 행사했고 권력 남용이 합리화되어선 안되지만, 한바탕 벌어진 소동극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간 그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이사의 꼬리에 불을 붙인 셈인 그와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의 어깨에 잠시 고개를 묻는다. 이민자와 경찰의 정체성, 그리고 자신의 죄. 모든 것을 돌아보는 듯하다. 경찰과 이민자 그리고 집시, 심지어는 아이들까지도 포함해 네 집단 새 긴장감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앞으로도 없어지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절대선은 누구인가. 매사에 평화적으로 해결해보려는 스테판? 하지만 결국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의 외침은 먹혀들지 않았다. 아이들? 환경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도둑질한 이사, 경찰에 잡동사니를 던져대거나 이후 소동극의 주범이 되는 아이들을 보았을 때 절대선이라곤 할 수 없다.

 

“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소. 다만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 -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우리 사회가 그렇다.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다. 그리고 더더욱 분간하기 어렵다. 무자비한 공권력은 어쩌다가, 경찰과 이민자의 대립은 어디서부터, 아이들의 증오심은 언제 그렇게, ... 무엇 하나 기원을 알아낼 수 없다. 나쁜 농부를 알아야 하는데 나쁜 농부가 누군지 도저히 모르겠다.

 

첫 장면에서 모두 프랑스 국기를 두른 채 축구 경기를 보며 응원한다. 같은 프랑스 아래 같은 인간같다. 그러나 경기 휘슬이 불리면 와해된다. 집단이 되지 못한 그저 군중일 뿐이다. 모두가 나쁜 농부 아래서 나쁜 풀과 나쁜 사람이 되어간다. 악의 굴레에서 우린 쉬이 누구 하날 지목해 탓하지 못한다.

 

다만 빵을 훔친 장발장을 용서해줄 누군가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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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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