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더는 참기 힘들 때

글 입력 2021.11.2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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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에게 위로받지만, 한편으로 사람에게 상처받는다. 사회적 동물로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고들 하나 가끔은 나를 둘러싼 사회에서 벗어나서 오롯이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어느 날은 엄마에게 문득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다고 제안했다가 “너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널렸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맞는 말이었다. 제주에 가도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먹고 자야 하는 것은 똑같을 텐데, 나는 그곳에 숨겨둔 보물이라도 있는 것처럼 막연한 환상을 가졌다. 막상 가보면 기대에 미치지 않아 실망할 것이 뻔하면서도.

 

그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더는 참기 힘들었다. 그러나 움직여서 자리를 바꾸는 것은 두려웠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대학을 휴학하니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로 돌아가는 것이 싫었고, 반대로 자퇴하는 것은 두려웠다. 비단 학업 문제뿐만은 아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하냐고 물어본다면, 타인과 몸을 맞대며 살아가는 것에 지쳤다고 대답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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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에는 공황 증상을 겪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몸을 뒤척이다가, 갑자기 숨이 가빠지면서 ‘이곳에서 내가 있다가는 죽겠구나’ 싶어 얼른 방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이럴 때 필요한 호흡법을 미리 익혔던 터라 자신 있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뱉었지만, 증상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옷을 걸치고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 생각 없이 뛰었다. 휴대전화는 일부러 챙기지 않았다. 아침이 되면 전화가 올 것이므로. 한편으로는 나의 힘듦을 알리고 싶은 욕구와 약간의 반항심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마음을 부여잡고 계속 뛰었다. 공원을 지나고 나니 공사장이 보였다. 비가 온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질척거리는 진흙 바닥이 신발 바닥에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어디로 가야 할까, 생각했지만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정말 우스웠다.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갈 수는 없다는 현실에 실소가 나왔다.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웬 미친놈이 오밤중에 웃으면서 뛰어간다며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정확한 진단명이 필요했다. 나는 ‘정말 괜찮아’라고 외치다가도 ‘사실 안 괜찮아’의 상태로 빠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조차도 나를 몰랐다. 바쁘다는 이유로 병원에 가는 것을 망설였던 것이 후회되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핑계일 뿐이었다. 나와 잘 맞는 의사 선생님이 있는 병원을 찾는 것이 힘들었고, 나의 상태를 매주 의무적으로 보고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무엇보다 나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계기가 될 것 같아서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 글로써 나의 상태를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주변 사람들이 나의 상황을 알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내가 쓴 글도 기대한 만큼 유심히 챙겨보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더 초연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내 번민의 흔적을 기록하는 것이 독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힘들다. 이 글이 허공에 떠도는 푸념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그동안 비슷한 글을 자주 써왔던 터라 이러한 글을 내보이는 것은 지양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전하고 싶은 진심이 있어 다시 키보드에 손을 얹는다.

 

내가 전하고 싶은 것은 위로뿐이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위로를 보내고 싶다. 이따금 누구에게나 더는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걸 알고 있다. 주변에 놓인 모든 것이 불쾌하게 느껴지고, 심지어는 내 자아까지 소멸시켜버리고픈 욕구가 들 때 말이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 절실히 필요한 것이 위로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내 글을 읽고 위로를 받은 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나는 그로부터 더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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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나는 나름대로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돈을 벌고 있는데, 손님을 응대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칭찬과 위로에 너무나 인색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에는 유튜브를 통해 나와 비슷한 직종에 근무하는 한국인이 미국에서 브이로그를 찍어 올리는 것을 보았는데, 미국인들은 훨씬 더 풍부한 감정 표현으로 서로에게 격려를 보내더라. 물론 이런 사례를 일반화하여 비교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손님과 직원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브이로그를 보고 나니, 누군가에게 쫓기듯이 가게에 들어왔다 나가는 우리 매장의 손님들이 안쓰러웠다. 그들과 눈도 마주하지 않고 타성에 젖은 상태로 일을 했던 나의 모습 또한 반성했다. 태도의 변화가 나를 바꾼다면, 사소한 배려심이 나의 아픔을 보듬을 수도 있을 거라는 믿음에 손님을 응대할 때 약간의 변화를 주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난 손님에게는 반가움을 표시하고, 헤어지는 손님에게는 오늘도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인사를 보내주었다. 불편한 기색을 표하는 손님에게는 그 감정에 최대한 공감해주었고, 동시에 나의 권리는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는 가게의 매출을 올리거나, 남에게 잘 보이고자 노력한 것이 아니었다. 나를 더 지키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행동이었다.

 

선(善)에서 비롯한 친절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선한 물결을 일으키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그저 나의 존엄성을 지키고 싶을 뿐이었다. 내가 무시당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는 일종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그렇기에 가끔은 이러한 이기심이 불안과 결합하여 주변으로 예민한 감정을 표출하게 했고,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 불편을 끼치거나 상처를 준 적도 있다.

 

때로는 지독한 자아 성찰이 끝없는 자기혐오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불필요한 감정을 덜어내고 자신을 마주한다면, 스스로가 부족한 만큼 넘치는 것 또한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좋은 것을 인정하고, 좋지 않은 것도 인정하자. 참기 힘들 때는 발악하고 소리를 질러도 괜찮다. 주위의 불안이 나를 두드려도 그걸 감내할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자. 이게 나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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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드북>의 “나는 야한 여자”라는 넘버에서는 개인의 존엄이 어떻게 빛을 발하는지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영국 역사에서 가장 보수적이었던 빅토리아 시대에 사랑에 관한 소설을 집필하는 주인공 ‘안나’는, 자신을 야한 여자라고 부르는 이들을 향해 기꺼이 야한 여자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그녀는 ‘조롱을 끌어안고, 비난에 입을 맞추며’ 현실의 고난을 시원하게 받아들인다. 자신을 슬프게 하는 모든 것들과 밤새도록 사랑을 나누겠다고 외친다. 슬픔과 사랑을 나눈다니, 너무나도 멋진 태도 아닌가. 뮤지컬을 보러 갔을 때 이 장면에서만큼은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공허한 거리를 달렸던 그 날 밤, 나 또한 나를 슬프게 하는 모든 것들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건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나의 과거를 바라보고, 현재를 인정하며 미래가 있음을 약속하는 순간이었다.

   

언젠가 나에게 ‘더욱 단단해져’라는 격려를 보냈던 지인이 생각난다. ‘단단해져라’. 오랫동안 귓가에 맴도는 말이었다. 이 단단함은 마음의 밀도를 뜻하는 것이리라. 마음의 밀도가 높은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온전히 치유할 수는 없어도 기다려줄 수는 있다. 조롱과 비난으로 자신을 낮추기보다, 격려와 위로를 보낼 줄 아는 사람이다. 이렇듯 마음의 밀도가 높은 사람과는 함께 있는 순간이 행복하다. 그런 사람이 좋다. 나도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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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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