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친 나를 힐링할,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서 [영화]

아주심기를 준비하는 우리들, 임순례 - [ 리틀 포레스트 ]
글 입력 2021.11.1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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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부터 목이 칼칼하더라니, 결국 밤에는 열이 오르고 새벽 내내 고생을 했다. 분명 이틀 전 실수로 문을 열고 잠에 든 것이 원인이리라. 본가에서 나와 타지에서  자취를 시작하면서 느낀 것은,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챙겨줄 누군가가 없기에, 아픔에 쓸쓸함과 공허함이 더해진다.

 

부모님이 계시는 집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다 큰 사내 녀석이 무슨 잔병치레냐며 타박하면서도 죽이고 약이고 챙겨주시고, 전기장판을 틀어주시고, 밤에 신음이라도 낼라치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방문을 열고 괜찮냐 물어보실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지금은 혼자이기에 알아서 잘 헤쳐 나가야지. 어언 자취 3년이 지나가는데 아픈 것이 처음도 아니고 나에겐 이럴 때 혼자라는 쓸쓸함을 덜어줄 방법이 있다. 바로 '따뜻한' 영화를 보는 것!

 

여름에 더위를 가시게 하기 위해 간담이 서늘해지는 공포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이치로, 몸과 마음이 아파 추워질 때면 가슴 따뜻한 이야기로 속을 데운다. 누군가가 배신하고, 실은 흑막이 존재하고, 끝없는 복수의 굴레로 이어지는 그런 답답한 이야기 말고, 물 흐르듯 진행되는 진정한 힐링 이야기로 말이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고독한 서울살이에 지친 주인공이 고향으로 내려와 보내는 1년의 시간 동안 일어나는 소소하고 느린, 그런 이야기이다. 바쁘고도 바쁜 생활을 잠시 멈추고, 영화 속 소소하고 느린, 그런 이야기를 같이 바라보자. 그리고 혹여나 나와 같이 마음이 추워졌다면, 따뜻하게 속이 데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해 겨울, 고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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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나의 서울 생활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고, 인스턴트 음식은 나의 허기를 채우기엔 부족했다. 배가 고파 돌아왔다는 나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 영화, 리틀 포레스트 中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혜원은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혜원(김태리)은 잠시 고향으로 도망쳐 내려온다. 너무나 바빠 삼각김밥, 편의점 도시락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설움이 폭발해서인지, 돌아온 고향에선 모든 재료를 손수 준비해서 본격적으로 밥을 해먹는다. 이틀이나 지났을까, 고향 친구들이 혜원이 돌아온 것을 눈치채고 반가운 재회를 한다. 하기야, 사람 없는 집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니 당연히 알 수밖에.

 

혜원의 고향 친구 은숙(진기주)이는 아픈 곳만 콕콕 집어내는 재주가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을 보며 '임용고시 떨어지고 자존심 상해서 돌아온 거지? 그치?'라며 속을 후벼파는 은숙에게 혜원은 말한다.

 

나 배고파서 내려왔어.

진짜 배고파서.

 

우리는 항상 바쁘게 살아간다.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는 것 마냥. 멈추면 안 된다고 협박당하는 것처럼. 시험공부를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 자격증 공부도 해야 한다. 대외 활동을 통한 스펙도 쌓아야 한다. 수상 경력도 빠지면 안 된다. 24시간이 모자란 일상을 보내노라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좀처럼 쉬지 못한다. 쉰다는 것은 뒤처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도 그랬었다. 군 휴학 후 복학한 19년 1학기의 삶이 그러했다. 밤 12시부터 7시까지 PC방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 후, 집으로 가 뜨거운 물로 샤워하며 잠을 쫓았다. 그럼에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수마를 에너지 드링크로 외면하며 9시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갔다. 수업이 끝난 후엔 복습과 개인과제를, 그 후에는 조별 모임을 가진 후 그제서야 몇 시간 눈을 붙였다. 그리고 12시, 다시 출근을 했다.

 

당연히 몸은 망가져갔다. 피부는 뒤집어지고, 눈 밑에는 거무죽죽한 다크서클이 생겼다. 카페인을 과다 복용해서인지 깨 있는 내내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고 매스꺼움이 가시질 않았다.

 

그때쯤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문장의 매끄러움을 위해 쉼표가 필요한 것처럼, 인생에 있어서도 쉼표가 필요하단걸.

 

혜원이 고향으로 떠나온 것도 그러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영화에선  자주 혜원이 요리하는 장면이 길게 표현되는데,  바쁜 일상 속에서 후다닥 먹는 인스턴트식품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여유롭게 만들어 먹는, 그런 쉼표를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왜 삼시 세끼, 어쩌다 사장 등과 같은 예능이 인기를 끄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듬해 봄, 모든 건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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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처음 심는 것 중에 감자가 있다. 아직 춥지만 땅 속 온기는 감자 싹을 품어 밖으로 내보낸다. 싹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그 모든 건, 타이밍이다. 기다린다.

 

- 영화, 리틀 포레스트 中

 

 

며칠 후 서울로 돌아간다고 습관처럼 사람들에게 말하던 혜원은, 어찌 된 영문인지 이듬해 봄까지 고향 집에 남아있다. 본격적으로 농사도 시작한다. 읍내에 나가 밭에 심을 작물들을 구입하고, 틈이 생긴 기와지붕을 보수한다. 모든 것은 빠르지 않게, 천천히 진행된다. 혜원은 여유로우며 자유로운 고향의 분위기에 동화되어간다.

 

이는 혜원이 서울에 돌아가고 싶지 않거나, 돌아가기 무서워한다는 것일까? 전자라면 자신이 가야 할 올바른 길, 그 해답을 아직 찾지 못해서일까? 후자라면, 이 여유로운 생활을 벗어나 다시 치열하고 바쁜 삶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어서일까.

 

나 또한 그렇다. 매 학기 21, 22학점을 수강하면서 바쁜 삶을 보내다가 작년에 처음 15학점을 수강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삶의 질이 달라졌고, 전보다 여유로워졌다. 그래서인지 2학기에도, 현실적으로는 다시 18 내지 21학점을 수강해야 했지만 다시 15학점을 수강하게 되었다. 이 여유로운 삶에서 벗어나기 두려워서.

 

올 한 해 휴학을 했다. 오로지 학점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대학 생활에 회의를 느낌과 동시에, 나의 안에 있던 에너지가 동이 난 듯했기 때문이다. 더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하지 못해서 그걸 알아가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올해가 2달도 안 남은 이 시점에서, 나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아직 제대로 된 해답을 찾지 못한 상태인데, 복학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하는, 그런.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선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명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그 순리, 타이밍처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감자'라면, 나는 지금 싹을 틔우고 있을까, 꽃을 피우고 있을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나를 조망하면, 알 수 있을까.

 

 

 

여름. 떠나온 것이 아닌 돌아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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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인생은 살기 싫다고. 회사 생활이라는 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더라고. 생각할 여유도 없이 왜 사는지도 모르겠고 월급날이나 꾸역꾸역 기다리면서 사는 게 어느 날인가 문득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터질 것 같더라고.

 

그 뒤로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기억나는 건, 내가 여기로 떠나온 것이 아니라 돌아온 것이라고 했다는 것.

 

- 영화, 리틀 포레스트 中

 

 

한 여름밤 친구 재하(류준열)와 다슬기를 잡고 수박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재하가 서울살이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를 듣게 된다. 재하는 서울을 '떠나온'것이 아닌, 고향으로 '돌아온' 것임을 깨닫는다. 혜원은 그런 재하를 보면서 많은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 또한 이곳으로 도망쳐온 것이 아닌 돌아온 것이라는걸. 자신도 이곳의 토양과 공기를 먹고 자란 작물이라는걸.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내심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어 하는 삶보다, 남들이 보기에 '인정할만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지 않았을까. 공모전을 준비했던 것은 내가 그것을 원해서 였을까, 남들이 그것을 '인정하기'때문이었을까. 좋은 회사에 들어가 남부럽지 않은 대우를 받으며,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나의 삶일까.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그것을 원하는지의 문제이다. 그것이 항상 고민이기도 하다. 나는 어떤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휴학을 선택했지만, 아직까지는, 답을 찾지 못했다. 이러한 고민은 뽑아도 뽑아도 다시 자라나는 잡초와도 같은 듯하다.

 

어쩌면 이러한 고민은 평생 동안 안고 가야 할 그런 게 아닐까? 빠르게 답을 딱 찾아서 그 길로 전력질주하는 것이 아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남은 일생을 충만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재하와 혜원은 해답을 찾아서 혹은 찾고자 고향으로 돌아온다. 아무 걱정 없던 해맑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그러나 나에겐 그러한 고향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에는 인천의 할머니 댁에 있었고 어린이집 시절에는 성북구 아파트에,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홍대의 빌라에, 단독주택에, 그리고 다시 성북구의 아파트에. 계속해서 옮겨 다닌 나의 유년 시절로 인해 혜원과 재하처럼 심적으로 의지하기 위해 돌아갈 고향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

 

 

 

가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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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이제 이 대문을 걸어나가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갈 거야. 모든 것은 타이밍이라고 엄마가 계속 말했었지?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아...... 네가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지금 우리 두 사람, 잘 돌아오기 위한 긴 여행의 출발선에 서 있다고 생각하자.

 

이제야 엄마의 편지가 어렴풋이 이해가 갈 것 같다.

 

그동안 엄마에게는 자연과 요리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랑이 그만의 작은 숲이었다.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

 

- 영화, 리틀 포레스트 中

 

 

혜원의 엄마(문소리)는 혜원이 아직 19살일 때 편지 한 장만을 남긴 채 집을 나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엄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던 혜원은 몇 개월간의 고향 생활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힘들 때 돌아올 수 있는 곳. 유년 시절을 보낸 장소가 고향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힘든 삶 속에서 한 줄기 미소를 지을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고향이었다. 다른 말로, 쉬어갈 수 있는 '리틀 포레스트'. 그것은 이미 존재할 수도 앞으로 만들어나갈 수도 있다. 하나가 아니라도 좋다. 혜원 엄마의 리틀 포레스트가  자연과 요리, 그리고 혜원에 대한 사랑이었던 것처럼.

 

혜원은 고향으로 돌아가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며 해답을 찾아가지만, 고향인 미성리가 혜원의 리틀 포레스트인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 혹은 다른 곳에서 혜원 스스로 자신의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자연이든, 친구들이든, 직접 해 먹는 음식이든.

 

조금 전 '나에겐 돌아갈 고향이 없다'라는 말은 취소하도록 하겠다. 이 영화의 메시지를 오해했으니 말이다. 나의 리틀 포레스트는 장소가 아닐 것이다. 사진, 여행, 시집 한 권, 혹은 영화 한 편. 모든 것이 나의 리틀 포레스트가 될 가능성을 지녔다. 삶에 지쳤을 때, 돌아갈 나의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 그것을 찾아나가야겠다.

 

 

 

다시 겨울. 이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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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에 스쳐 지나가는 월급 같은 년. 오래 남을 줄 알았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도망쳐버렸어.

 

도망친 거 아닐걸? 난 왠지 혜원이가 금방 돌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지금 혜원이는 아주심기를 준비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양파는 모종심기에서 시작된다. 가을에 씨를 뿌려두었다가 발로 잘 밟고 건조와 비를 피해 멍석을 열흘 정도 덮어두었다가 싹이 나면 걷는다. 싹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키워서 미리 거름을 준 밭에 옮겨 심는데, 이것이 아주심기다.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하게 심는다는 의미이다.

 

아주심기를 하고 난 다음에 뿌리가 자랄 때까지 보살펴주면 겨울 서릿발에 뿌리가 들떠 말라죽을 일도 없을뿐더러 겨울을 겪어낸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달고, 단단하다.

 

- 영화, 리틀 포레스트 中

 

 

우리는 살면서 계속 '옮겨 심어'진다. 주변 상황은 바뀌기 마련이고, 감정은 매번 요동친다. 혜원 또한 마찬가지이다. 서울로 '아주심기'를 하러 갔지만 실상은 '옮겨 심기'에 불과했다. 또다시 고향으로 옮겨심어진 혜원은 고향에서 사계를 보내며 자신의 아주심기 장소를 정하려 한다. 그것이 곧 해답이기에.

 

앞서 말했듯이 문장에 쉼표가 필요하듯이 인생에도 쉼표가 필요하다. 그러나 쉼표만 있어서는 문장이 망가진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쉬었으면, 다시 나아가야 한다. 그다음 걸음걸이가 또 다른 옮겨 심기인지, 혹은 아주심기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억지로 정할 필요는 없다. 모든 건 타이밍이고, 그것은 순리대로 흐른다.

 

겨울을 겪어낸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달고, 단단하다. 지금 아픈 그대, 몇 배나 달고, 또 단단한 인생이 기다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도 나의 리틀 포레스트를 찾으려 한다. 당신은, 당신의 리틀 포레스트를 찾았는가?

 

아주심기를 준비하는, 나를, 여러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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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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