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격주의 문학 이야기 - 이구아나와 나 [도서/문학]

글 입력 2021.11.15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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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격주로 오피니언을 기고했었고, 그중 대부분은 오늘날의 한국소설에 관한 것들이었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최근에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많지만, 현재 문단에서 발표되고 있는 단편소설들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문단 문학’이라는 시스템 하에서 가장 최근의 작품들은 주요 문예지를 비롯한 특정 매체를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문단에서의 인지도가 확보된 작가들만 소설집을 간행하여 서점으로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전위적이고 독특한 수많은 작품들은 서점을 방문하는 일반적인 대중에게 선보여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오피니언을 쓰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작품들을 위주로 많이 다루어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앞으로도 그러한 목적의식을 담아서 글을 이어나가려고 한다. ‘격주의 문학 이야기’라는 연재의 형식을 통해서 규칙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작품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내용은 기존에 해오던 작업과 큰 차이는 없다. 다만 같은 제목을 붙이며 통일된 형식 속에서 이야기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글을 쓰는 나에게 있어서, 그리고 독자들에게 있어서도 이와 같은 새로운 형식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오늘 소개할 소설은 이유리의 「이구아나와 나」이고, 그 전에 밝힐 것이 있다. 이번에 이유리 작가의 첫 소설집이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이유리 작가는 작년에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굉장히 매력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현실세계에 환상적인 요소를 집어넣고 동 화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서사를 즐겨 쓰는데, 이 과정에서 위트 있으면서도 과장되지 않은 태도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환상적인데 과장이 없다는 건 아무래도 모순적인 말이긴 하지만, 소설을 접하는 순간 그 말에 곧장 동의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등단작부터 시작해서 매체에 발표되는 그녀의 단편소설 하나하나를 눈여겨보았던 독자로서 이번 소설집 발간이 반갑게 느껴진다. 평소에 문예지를 읽지 않는 독자들도 쉽게 서점에서 이유리 작가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그녀의 소설을 통해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으로 진입하길 바란다. 그곳에 기쁨과 위로와 감동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전에 이유리 작가의 「빨간 열매」, 「둥둥」, 「브로콜리 펀치」에 대해 오피니언을 작성한 적이 있으니, 책을 구매하기 전에 정보를 얻고 싶은 독자들은 해당 오피니언들을 읽어보아도 좋다. 오피니언에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나중에 직접 소설을 읽을 때는 크게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단순한 줄거리 설명만으로는 훼손할 수 없는 가치를 이유리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재치 있는 문장들이 품고 있다.


「이구아나와 나」 역시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이다. 문예지 《문학동네》 2021년 가을호를 통해 발표된 작품으로, 9월에 발표된 이후에 바로 지난달 간행된 소설집에 수록되었다. 「이구아나와 나」에서도 기존의 이유리 작품들과 비슷한 색채를 엿볼 수가 있다. 이구아나와 함께 생활을 시작하고, 또 이구아나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한 주인공의 모습.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더욱 깊이 알게 되지만, 곧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 상황. 이러한 모티프들은 일견 유치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서사를 차근차근 따라가 보면 마냥 가볍게만 생각할 수 없는 개개인의 내면과 상처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유리적 상상력을 통해 인간의 (그리고 인간이 아닌 존재의) 내밀한 이야기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브로콜리펀치.jpg

 


함께 동거하던 남자친구 재호는 이별을 맞이하며 자신의 모든 짐을 들고 나간다. 이때 두고 나간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키우던 이구아나. 재호가 떠난 자리에는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수조만이 남겨지고 그렇게 ‘나’는 좁은 원룸에서 이구아나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채 귀가해 들어와 이구아나에게 말을 걸자 이구아나가 대답했다. 이 이구아나는 사람 말을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소원, 이구아나의 천국인 멕시코에 가는 소원을 ‘나’에게 털어놓는다. 그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나’는 이구아나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기 시작한다.


수영 훈련을 하면서 ‘나’와 이구아나는 점점 가까워진다. 집에 들어와서는 서로의 이야기도 공유하고 서로를 위로해주기도 한다. 함께 침대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기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이구아나와 헤어지게 될 날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직감하지만, 이구아나는 자신의 꿈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이구아나를 도와주고 또 그의 꿈을 응원하면서도 ‘나’의 마음은 점점 복잡해져만 가는데...


*


「이구아나와 나」에 있어서는 ‘말하는 이구아나’라는 특징적인 존재를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즐겁고 감동적인 기분에 사로잡혀 문장을 술술 읽어 내려갔는데, 다 읽고서 생각해보니 이러한 문학적 효과는 이구아나라는 존재의 이질감 덕분에 더욱 크게 드러날 수 있는 것 같았다. 이유리는 자신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질적이고 환상적인 존재에게 목소리를 부여해 왔다. 아버지의 영혼이 깃든 식물(「빨간 열매」), 혹은 말하는 돌(「치즈 달과 비스코티」)의 모습들을 그녀는 그려 왔다. 아마 이번 작품에서의 이구아나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구아나와 나」에서 ‘이구아나’와 ‘나’가 맺는 관계는 굉장히 이색적인 배경, 독특한 동질성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아래의 부분에서 그 부분이 잘 드러난다.


 

그러다 집에 돌아온 참이었다. 보는 사람도 없겠다, 옷을 벗어던지고 팬티 바람이 되어 차가운 방바닥에 사지를 뻗고 누웠는데 그제야 목 아래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왔다. 서러움도 아니고 화도 아니고 이 기분은 대체 뭐지. 천장을 바라보며 곰곰 곱씹어보니 아무래도 이건, 그래, 비참함이었다. (중략)


뭘 잘났다고 보냐. 너나 나나 버림받은 건 마찬가지야.

야 우린 버림받았다 그 쓰레기한테.

내가 술 먹어서 하는 말이 아니고, 진짜로 우린 그 쓰레기한테 버려진 거야.


- 《문학동네》 2021 가을호, 284쪽

 


우습게도 둘 모두 버림받고 남겨진 존재이다. 둘의 관계는 남겨진 잉여적 존재의 동질성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재호와의 결별에서 남겨진 것뿐 아니라, 각자의 생활 속에서 그들은 주변인들이 떠나고 남겨지는 과정을 이미 겪어온 바가 있다. 둘은 너무나도 다른 존재이지만, 이 동질성을 바탕으로 서로가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준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통해 이 이야기를 소설화하려고 했다면, 이와 같은 동질성을 마련하는데 더 많은 설명이 필요했을 것이고, 또 독자로 하여금 불필요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거나 자의적 해석의 여지를 제공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글을 읽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소설의 텍스트를 독자의 머릿속에 재현시키는 일이고, 그 과정에서 독자의 경험이 소설의 이야기에 개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구아나와 대화를 해본 독자는 (아마) 없기 때문에, 독자는 자의적인 해석을 할 수 없고 작가가 구축해놓은 세계를 성실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차원에서 이유리적 환상성의 세계는 독자에게 낯설고 재미있는 생각들을 쉽게 주입할 수 있고, 작가의 상상력과 함께 할 수 있게 해준다.


한편 「이구아나와 나」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면, 두 주인공이 깊은 관계에 돌입하는 최초의 순간이다. ‘나’가 냄새나는 수조속의 “고무 장난감”처럼만 보이던 이구아나와 교감하는 순간을 작가는 섬세하게 그려 놓는다.

 

 

내심 이구아나가 도망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내 손은 이구아나의 미간이라고 해야 할지 이마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양쪽 눈 사이의 판판한 부분에 너무나 쉽게 가닿았다. 이구아나의 피부는 매끈하고 부드러웠다. 울퉁불퉁한 무늬 탓에 거칠고 까끌거릴 거라고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의외의 촉감이었다. 얇고 섬세한 피부 바로 밑으로 단단한 이구아나의 머리뼈가 느껴졌다. 두 손가락을 모아 그 위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후략)


- 《문학동네》 2021 가을호, 285쪽

 


‘나’가 이구아나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여 그와 눈을 마주치며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상황이다. 이 장면은 미처 인용하지 못한 뒷부분까지 굉장히 길게 이어지는데, ‘나’가 그와 눈을 마주하며 그를 쓰다듬을 때 느껴지는 미세한 촉감까지 굉장히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설명이 너무 섬세해서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시각적·촉각적 교감의 순간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길고 친절한 문장들을 통해서 이 세밀한 감각들은 독자의 머릿속에 기나긴 시간동안 재생된다. 이구아나와 관계를 맺는 이 부분에서의 묘한 기분 덕분에 뒤이어 나오는 장난스런 농담들도 크나큰 감동으로 독자에게 전해지는 것 같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감각’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감각의 순간은 어떠한 논리성이나 합리성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각별한 순간이다. 이성이나 지성이 개입하지 않는 감각의 순간에야 말로 세계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사회를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있는 그대로의 감각적 경험을 할 기회는 줄어들고 관념적인 정보들을 마주하는 시간만 늘어난다. 「이구아나와 나」에서 주인공은 체계화된 논리의 세계를 살아가는 중에도, 좁은 원룸에 들어와 이구아나와 대화하고 서로를 만져주는 순간에만큼은 평화로운 기분에 휩싸인다. 수영 연습을 하고 이별의 시간을 준비하면서도 둘의 관계는 점점 깊어진다는 면에서, 독자는 ‘나’가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


이유리 작가의 소설은 주변 누구에게도 망설이지 않고 추천하게 된다. 추천을 받은 사람이 소설을 읽고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크게 되지 않는다. 유치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느새 감동받고 눈물을 글썽일 독자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저항한다고 해도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은 거대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점점 합리적 사고의 감옥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 경향이 있다. 이유리의 소설을 통해서, 유치하고 단순한 공간이 정말 소설의 세계인지, 아니면 반대로 내가 살아가는 현실의 세계인지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확고부동하고 가시적인 현실을 살아가면서 내밀한 감각과 복잡한 관계맺음은 점점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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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작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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