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돌파하는 힘을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글 입력 2021.11.0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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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읽을 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부친께서 책방을 하신 덕분에 초등학교 고학년까지는 그림책을 볼 수 있었다. 어린이 대상의 전래동화 전집이라던가 이솝우화 전집 등, 내가 자란 유년 시절에는 양육이나 교육에 대해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없어 그림책이란 게 있어도 필요하다고 여기진 않았던 것 같아 다양하게 읽지는 못했다. 부친께서 다른 사업을 시작하시고 책방을 정리하면서 집에 많은 책이 쌓였다. 책을 읽다가 지루해질 때면 가끔 그림책을 펼쳤다. 나이 차가 있는 동생이 있어서 그림책을 팔지 않고 가져오셨던 거로 기억한다. 그 뒤로는 기억나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 읽은 그림책은 <도망가자, Run with me, 그림 곽수진>가 유일하다. 요즘 들어 성인들의 그림책 소비량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실제 시장 자체가 작고 그림책은 어린이 대상이기 때문에 성인이 굳이 직접 찾지 않는 이상 접하기 어려운 것 같다. 생각해보면 어린이를 위해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은 나와 같은 성인들일 텐데, 그들은 그림책에 어떤 신념과 믿음을 가지고 직업적 의식을 담았는지 궁금해졌다.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는 열 명의 그림책 작가와 인터뷰어 최혜진의 글과 해란 작가의 사진으로 이뤄졌다. 내가 그림책 작가들에게 들었던 궁금증처럼 책은 열 명의 작가가 풀어내는 '돌파하는 힘'에 집중했고, 그들이 생각하는 그림책에 대한 정의와 그림책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환경,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풍토를 이야기한다. 그림책은 어린이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질문을 던지게 한다면, 성인에게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가졌다고 한다.

 

목차만 보아도 그렇다. 권윤덕: 과정으로 존재하기, 소윤경: 의문문의 쓸모, 이수지: 놀이가 태도가 될 때, 유설화: 인정욕구에게 질문하기, 고정순: 바닥에서 선택한 웃음, 이지은: 자립을 위한 흔들림, 유준재: 기다림이라는 의지, 노인경: 작고 사소한 기쁨의 목록, 권정민: 자리바꿈의 이유, 박연철: 주변부에서 꾸는 꿈으로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작가 최혜진은 그들에게 꿈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 자신을 가로막았던 장애물을 어떻게 돌파하였는지 집중해 그들의 삶과 그리고 밀접하게 연결된 그림에 대하여 풀어내 인터뷰의 마무리를 짓는다. 인터뷰어의 질문도 좋고 그를 답변하는 작가의 대답도 좋다. '돌파하는 힘'이 필요한 사람에게 용기를 심어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인정욕구에게 질문하고 바닥에서 선택한 웃음

<슈퍼토끼>, <슈퍼거북>의 유설화, <가드를 올리고>, <철사 코끼리>의 고정순과 인터뷰 중


 

어릴 적 보았던 그림책은 순전히 '그림'에 의해 끌렸다. 그림에 호기심이 많았으니 책을 보다 직접 동화책을 그리겠다고 이면지를 붙여 만든 기억도 난다. 아주 오래전 기억이라 무슨 그림이고 내용이었는지 상상도 안 되지만, 이것도 동생이 책을 만들어 자신에게 읽어줬다는 얘기를 듣고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때의 창의력과 열정은 지금 내게 없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여러 글쓰기에 익숙해지기 위해 퇴근 후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무던히 근성으로 버티는 이 시간은 가끔 불안하기도 하다. 이 끝에 결과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쉽게 조급하게 만들고, '두려움'이란 감정은 나의 성장을 저지하는 감정의 종류기도 하다.

 

내면에 말하고 싶은 내용은 많으나 달리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않고 묵히기만 한 터라, 쌓이는 것도 많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편이니, 완벽주의에 빠진 게으름쟁이가 될 때도 있고, 인간관계에서 빠져나와 살 때도 있다. 두려움으로 인해 불건강해진 정신이 노력을 해이하게 만드는 편인데, 열 명의 작가의 모든 인터뷰는 나의 내면이 단단해지도록 불안정한 심리를 가다듬게 해주었다. 특히 <슈퍼토끼>와 <슈퍼거북>의 작가 유설화의 이야기는 나의 성장 과정과 비슷하여 더 눈길이 갔고, <가드를 올리고>, <철사 코끼리>의 고정순 작가의 관점은 작가로서 더 나아가 인생을 버티는 사람으로서 나의 판단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해줬다.

 

 

인정 욕구 때문에 괴로웠던 시간이 길었어요. 그때마다 이렇게 생각해요. 언제나 주목받을 수는 없어. 무대 위에 설 때도 있고, 응원석에서 박수를 보낼 때도 있는 법이야. 결점 많고 답답해도 이게 나야. 현실을 직시하고 여기에서부터 해보자.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중 유설화, 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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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그녀는 화목하지 않은 가정과 좋지 않은 형편 때문에 급우와 다르게 조금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누가 힘들고 더 나은지 내가 판단할 것은 아니지만, 작가는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다움'이 지닌 선택보다 단순히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남을 위한 선택을 했다. 아마 그 선택도 당시에 나쁘지 않아, 하면 될 거라는 생각으로 했을 거로 추측해본다. 나도 나에게 남은 선택 중에서 이게 그나마 할만하겠다 싶어 선택한 경우가 많고, 이것이 나의 한계와 부모님의 기대와 타협점이라 생각하며 내가 하고 싶은 '척'을 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인 <슈퍼토끼>와 <슈퍼거북>이 실린 간략한 인터뷰를 읽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솝우화 중 '토끼와 거북이'를 이렇게 새롭게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어릴 적에 수없이 일고 말았던 이야긴데, 나는 그저 지나간 우화에 작가는 궁금증을 품었고 이를 달리기 경주 이후 뒷이야기를 붙여 참신하게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토끼와 경주에 이겨 '빠른' 거북이란 타이틀을 지니게 된 거북이는 주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본인의 고유성과 다르게 누구보다 빨리 달리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거북이인 거북이는 번아웃이 올 때까지 밀어붙였고, 이와 달리 토끼는 경주 이후 달리기를 멈추고, 배나 나올 정도로 달리기 법을 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원치 않게 달리기 대회에 휩쓸렸고 달리는 순간, 본인은 달려야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거북이와 토끼의 뒷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생각해볼 지점이 생긴다. 경주의 승패가 이들에게 미친 영향은 과연 긍정적인지 혹은 부정적인 영향인지 고민하게 된다. 거북이는 과연 행복할까? 언젠간 다음 경주가 돌아올 것이고 거북이는 또다시 누군가와 경기를 벌이게 될 것이며, 기대에 만족하기 위해 세상에서 누구보다 느린 걸음으로 빨리 뛰기 위해 자신을 갈아 넣을 것이다. 토끼는 정체성을 잃고 보낸 시간을 낭비했다고 자책하거나 예전 달리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또 다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더는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원하는 만큼 달리는 것을 깨닫는다. 본래 우화와 다르게 뒷이야기는 달리 풀어진다.


 

이런 저의 눈에 반짝이는 작가들이 보여요. 배가 아프죠. 샘도 나요. 그런데 그게 전부예요. 며칠 질투하다 제자리로 돌아와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도 있어. 저것은 내 것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면서요. 만약 '이것만큼은 내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가지지 않았다면 저도 흔들렸을 거예요.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중 유설화, 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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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메꿀 수 없는 격차가 벌어진 현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 생각해볼 주제다. 남을 쫓아가기보단 나를 위해 길을 찾아가는 법을 되새기게 한다. 아마 이 과정은 힘들고 견디기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나보다 앞서가는 잘난 사람을 질투하느라 감정 소모하거나 뒤꽁무니를 쫓아가느라 분주할지도 모른다. 이미 증명된 길이 아니라,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샛길을 파고 들어가는 셈이나 다름없으니 무엇을 해야 옳은 것인지, 나에게 맞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길을 찾아가기란 숭고한 길을 걷기 위해 떠나는 여정과도 같다.


 

부정적 사건이 벌어지면 생각해요. '아, 삶의 우선순위를 고민하라는 뜻이구나.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고 싶은 게 뭐지? 라고요.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중 고정순, 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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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홀로 가는 여정에는 많은 장애물이 발생할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발생한 감정 문제나 아님 외부적인 압박과 환경의 변화로 길이 더 좁아지고 어느새 보면, 외줄 타기처럼 한걸음 옮기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최악이라면 움직이지도 못한 채 균형을 잡느라 시간을 보내고, 외줄 타기의 끝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살아가며 마주하는 이런 위기는 여러 번 찾아온다. 이번이 끝이겠지 싶으면 어느 날 다시 또 찾아온다. 계속 반복하는 위기와 극복이 유독 잦은 경우도 있고 남들과 다르게 더 큰 불행을 자꾸만 마주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팔자가 드세다며 말하는 경우인데 맞는 말인 것 같다. 누구는 자꾸만 앞으로 나아가게 길이 트여있는데, 누구는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자주 생겨 항상 길이 가로막힌다. 해결하느라 보낸 시간 동안 그 누구는 더 쫓아갈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해있다.

 

작가 고정순은 작품을 설명할 때, 인생을 떼어낼 수 없다. 자기 연민적으로 느껴질 수 있고, 흔히 가난 포르노라며 이런 주제를 피하는 경우도 다수 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런 과정 없이는 작품의 결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아마도 그녀의 모든 작품엔 작가 고정순이 세상을 견디고 그림책 작가로서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버틴 각고의 인내가 녹아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작품이란 작가가 산고의 고통을 이기고 출산하는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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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좋아하는 서점, 지역 도서관에서 성인 독자와 글공부를 하는데요, 열에 아홉은 적절한 자기표현 방법을 깨우치지 못한 상태예요. 나아가 자기를 속이는 사람도 있어요. '나는 날 잘 알고, 나는 행복하다'는 확신에 찬 분들이지요. 그분들 글은 전형적이에요. '오후 햇살이 따뜻하고, 배우자와 아이는 사랑스럽다'고 말하지만, 진짜 감정은 느껴지지 않아요, 글공부를 계속하며 껍질이 벗겨지고 참된 자기를 처음으로 마주하면 충격받고 막 울기도 하지요. 도구는 무엇이어도 좋아요. 대나무숲에서 소리 지르든 일기를 쓰든 글쓰기 수업을 듣든 각자에게 맞는 방식을 찾으면 좋겠어요. 저는 왜 자기표현이 중요한지 이야기할게요. 표현하지 못한 감정 안에 오래 있다 보면 세상 보는 눈이 왜곡되더라구요. 타인의 고통에 무감해지고요. '네가 힘들어서 죽어 나간들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으리'라는 상태가 진짜 아픈 상태예요. 한국 사회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자꾸 떨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내가 막혀있으니까요. 주변과 감응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과 감응해야 해요. 자신의 현재를 이해하고 적절한 언어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해요. 나를 표현하지 못하면 타인과 연대할 수 없고, 연대할 수 없으면 열린 공동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요.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중 고정순, 159쪽

 

 

예를들면 <가드를 올리고> 라는 작품도 그녀의 자기연민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온갖 불행을 견디며 이제야 하고 싶은 일을 찾았던 작가는 27세에 다발성 통증 증후군이 발병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절망에 빠졌다고 한다.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또 이런 시련이 온다고?'라는 황망함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가드를 올리고>의 시작점이 됐다. 작품은 오로지 빨간 주먹과 검은 주먹의 권투 장면만이 나오고 쉼 없이 오가는 펀치 속에서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고통임에도 불구하고 쓰러지지 않고 꿋꿋하게 일어선다. 빨간 주먹은 바로 우리들로 검은 주먹이란 현실이 주는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냉혹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가드를 올리는 작품이다.

 

유설화 작가 뒤에 이어 바로 나오는 챕터로 고정순 작가의 인터뷰가 있는데,정말 적절한 순서라 생각된다. 나다운 길을 찾기 위해 고민을 하고 본인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을 택하기로 했으니 이제 그 길을 견디기 위해 희망과 웃어넘길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을 글로 담담히 알려준다. 사실 글로만 작가의 고통을 전달받았지, 실제 우리 기억으로 상상하자면 그 근처도 가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찢어질 것 같던 가난과 어린 시절 겪은 난독증과 그 시절 학습능력이 발달하지 않은 아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주는 낙인 효과, 그리고 꿈을 찾고 나아가려니 알게 된 다발성 통증 증후군까지, 고작 한 두 줄로 정리된 생애지만 이 몇 줄 안 되는 문장 속에 많은 감정이 녹았을 거로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작가는 정신 승리하는 법을 알려준다고 말한다. 그녀는 투병을 견디며 자신을 응원해주는 룸메이트이자 소울 메이트 격인 김소희 작가와 여러 동료 덕분에 절망적인 기간을 버티고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이 본인 혼자로 이뤄지지 않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이뤄졌다는 것과 그들을 생각하면 이대로 생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도.

 

그녀의 작품은 특징을 가진다. 어떤 고통이 찾아와도 끝에 곁에 남겠다는 의미가 서려 있다. 작가는 이를 내면 깊숙하게 남아있는 소수성의 외로움이라 말한다. 이는 작품에 반영됐다. 작가가 내면에 가진 깊숙한 욕망은 작품의 톤을 결정하며, 작가 고정순은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써 보낸 시간과 자신을 이해받지 못했던 기간 속에서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고자 하는 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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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작가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는 모친에게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과 간다고 표현했다. 무허가 흙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셨다고 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 남는 것은 '웃음'밖에 없다고, 이는 불행한 상황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긍정적인 힘을 심어줬다고 한다. 어렴풋이 알 것 같은 것이, 나 또한 내가 가진 모든 자산 중에서 이해할 수 없고 알면 알수록 숨겨졌던 불행한 사실들을 발견했을 때, 한없이 웃음이 나왔다. 자조적인 웃음일 수도 있으나, 다음 스텝을 위해 잠시 쉬어가는 시점이 될 수도 있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살펴보기 좋더라.

 

이는 작가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꿈은 즐겁게 저물어 가는 것이라 한다. 이는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만들 그림책에서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완벽한 존재는 없어요. 부족한 사람들끼리 서로 기대며 나아가는 거죠. 저는 지금이 화양연화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체력과 일감이 줄어들 테고, 언젠가 낙하하겠죠. 착지의 자세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체조 선수 경기를 보면 착지 점수가 있잖아요. 노년이 되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안착하는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 년에 그림 한 장만 그려도 좋으니 저를 아는 친구들과 꾸벅꾸벅 졸면서 늙어가면 좋겠어요. 즐겁게 저물어가는 것, 그게 제 꿈이에요.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중 고정순, 171쪽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읽고

자신을 먼저 응원하는 시작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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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인터뷰에 답했다. 공통적으로 그림책을 그리기까지 견뎌온 인고의 시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돌파하고 이겨낼 수 있었는지, 흔히 시간이 다 해결해줄 리라보다 더 슬기롭고 자신의 것으로 채우면서 만들어가는 과정을 읽어볼 수 있다. 모든 에피소드가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그중 본인이 가장 빨려 들어가는 인터뷰 하나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다못해 에피소드 중 한 개의 질문이라도 말이다.

 

완벽한 해결책보다는 좁혀진 어두컴컴한 길목을 밝혀주는 작은 횃불 정도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결은 같더라도 가는 길은 모두 제각기 다를 테니 머나먼 목표를 향해 가는 여정 중 중도에 찍혀진 마일스톤을 지표로 한 걸음 더 돌파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위로를 주었는지, 보통 며칠을 고민하며 쓰는 초안을 한 번에 시작부터 결말까지 끝내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는 특히 수치로 증명할 수 없는 길을 걷는 이들에게 더욱더 위로를 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작가 중 특히 성인이 익숙하게 접하지 않는 그림책 작가들의 인터뷰를 출간해준 저자 최혜진과 사진작가 해란에게 이 글로 감사함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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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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