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식이장애, 내 안의 괴물 [사람]

뻔한 말이지만, 그만 아름다워도 돼
글 입력 2021.11.0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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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이장애, 그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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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마름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렇다. '몸매는 그 사람의 생활 습관을 반영한다'는 말이 굳어지면서 타인의 시선에 내 몸을 맞춰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외모지상주의가 극에 달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괴물이 찾아온다.


'식이장애',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먹토, 변비약 과다복용, 씹뱉 등등 정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살에 집착하고 있다면 당장 내려놓아야 한다. 이것은 나를 따라 고통받았던 내 친구들에게 전달하는 미안함이기도 하다.

 

 

 

멈출 수 없는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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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달 만에 20kg 가량을 감량한 적이 있다.

 

그때를 생각해보자면, 일주일에 복숭아 하나를 세 조각으로 나누어 먹었다. 밥은 밖에서 가끔 사람들을 만날 때 어쩔 수 없이 숟가락을 들면서도 거의 입에 대지 않았으며 하루에 두시간씩 운동을 했다. 한 마디로 쌩으로 굶은 것이다.


몸에 힘이 없어서 운동하는 시간 아니면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생리는 끊겼고 다른 요인이 겹쳐서인지는 몰라도 하혈을 자주 했다. 면역력이 약해져 온갖 자잘한 질병에도 잘 걸렸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다 보니 이제 배고픔이라는 감정을 즐기게 되었다. 내가 1주일만 굶으면 2~3kg가 빠져있는 것을 보면서 그만둘 수가 없었다.

 

 

 

시작된 식이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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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추석 때 나를 보고 경악을 하시는 어른들을 뒤로하고 저울 세 개를 꺼내놓고 나란히 몸무게를 쟀던 모습이다. 억지로라도 음식을 먹이려는 엄마를 피해서 줄넘기를 들고 미친 듯이 뛰었다. 혹시 방금 조금 떼어먹은 전이 살로 갈까 봐 동네를 돌았다.


그때의 내 몸무게가 170kg에 47~48kg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볼 때마다 너무 예쁘다고 칭찬했고 친구들도 비법을 물었다. 나는 자랑스럽게 '그냥 밥 안 먹으면 돼'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식이장애가 찾아왔다.


폭식증,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참다가 새벽이 되면 편의점으로 무작정 달려간다. 달달한 과자와 온갖 주전부리들을 사서 집으로 달려가 입에 욱여넣는다. 먹고 있으면서도 배가 고프다. 피자, 치킨, 닭발, 혼자는 먹지도 못할 양인데 한꺼번에 주문한다. 토할 때까지 먹다가 전부 남긴다.


3시간 후, '살로 가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러면 변기를 붙잡고 억지로 배를 때려가며 토를 하거나 변비약 20알을 먹고 물을 세 컵 연거푸 먹는다. 언젠가는 이동 중에 배가 찢어질 듯이 아파서 지하철역에서 한 시간을 울었던 적이 있다.

 

 

 

뻔한 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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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가량을 앓던 식이장애는 간신히 내가 나를 놓아버리고 나서야 멈췄다. 집히는 대로 먹고 살이 찌는 대로 놔두었다. 하루가 지날수록 몸무게는 불어났지만 애써 저울 위에 올라가 보지 않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어렵게 뺐던 20kg보다 더 넘게 쪘다.


그 뒤로 나를 따라 굶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그때 내가 말했던 방법 있잖아, 하지 마. 나 이렇게 됐어' 어떤 약을 먹었는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낱낱이 말해 줬지만 내가 들은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예뻐 보일 수 있다면 괜찮아'


내 친구 중 하나는 결국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다가 응급실에 실려 갔다. 그리고 똑같이 나와 같은 수순을 겪은 뒤에야 함께 후회한다는 말을 했다. 그때 우리는 잃어버린 건강의 10%도 채 찾지 못하고 있다.


태생적으로 마른 체질이 아니었던 나는 보통 체형의 사람들만 봐도 부럽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청바지를 절대 입지 않는 이유도 남들보다 독특한 하체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 다이어트를 결심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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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모두 버려가면서까지 껍데기 하나 얻는 것보다는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하며 행복함을 느끼는 내가 훨씬 나았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다.


분명 아름다움은 우리 모두의 선망 대상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나 자신을 버릴 필요는 없다. 아직도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노력하는 내 주변인들을 볼 때면 그때의 내가 생각나서 눈물이 난다. 그 사람들의 속이 얼마나 곯아 있을지 알기에.


한 번 잃어버린 건강은 어떤 방법으로든 돌아오지 못한다. 식이장애는 생각보다 당신 주변의 많은 것들을 파괴한다. 만약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몰라 헤매고 있다면, 일단 눈을 감고 가장 먹고 싶은 음식 하나를 먹자.


위가 음식을 갑작스러운 영양분에 놀라 울렁거려도, 몸무게가 늘더라도 일단 아무 생각 없이 즐기자. 내가 나를 내려놓고 사랑하는 것이 그 지옥에서의 유일한 탈출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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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향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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