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예술가인가? [문화 전반]

적당한 재능으로 미련을 놓지 못하는 아마추어의 이야기
글 입력 2021.11.09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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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레슨을 시작하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혼자 만들어본 노래를 꼽아보니 열 개 남짓이 된다. 그래서 난 뮤지션인가? '당연히' 아니다. 그럼 나는 뮤지션이 아닌가? 어째서 그럴까. 나도 음악하는 사람이고 싶은 적이 있었다. 어쩌면 당연히도. 하지만 내가 뮤지션일 수 없는 이유를 대라면 한 가지로도 충분할듯싶다. 나는 재능이 없으니까.

 

어른들이 잠들고 나서도 방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어린 시절 밤을 새우는 방식이었다. 무언가를 지어보고 다듬는 것은 그때부터 내가 골몰하는 일이 되었다. 중학생 때 시를 읽기 시작하면서는 문장을 두고 깨작거리게 되었고 기타를 배우면서 몰두할 거리가 하나 더 붙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적당한 재능에 만족하기로 했다. 등단을 바라지 않게 되자 오히려 '글 쓰는 것이 작은 재주'라는 말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고 가끔 마음이 내키면 시, 같은 것을 쓰기도 한다.

 

몇 번이고 행갈이를 고치거나 배열을 바꾸는, 해진 옷 깁는 식의 미련함은 갖지 않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에 한번 올리면 그대로 잊어버린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내 연주나 노래를 녹음해서 들으면 절로 '현타'가 오지만 취미 음악, 취미 작곡이란 말을 붙이니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잘 듣는 것도 재능"이라며 스스로를 리스너로 설정하니 오히려 음악이 더 잘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사회인들도 악기 하나씩은 배우고 드로잉 카페가 부쩍 눈에 띄는 요즘이 아닌가. '문화센터 예술가'라는 말이 전에는 반쯤 조소가 섞인 듯한 표현이었지만 이제는 '생활예술'이란 개념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그만큼 예술 감상을 넘어서 창작에까지 진입장벽이 낮아져 가는 추세이지 싶다.

 

하지만 그 틈을 따라가기에 나는 진지하다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이건 허영심일까. 아직도 막연한 틀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걸까. 무엇이 프로이고 아마추어일까 하는 물음으로 생각이 가지를 뻗는다. 유의미한 기준이 있다면 예술을 업으로 경제 생활을 하느냐가 아닐까. '예술인활동증명'의 경우 "직업활동의 일환으로 공개발표된" 작품을 창작하거나 기획 혹은 스태프로서 참여하는 것을 예술 활동으로 인정하고 있다. 길거리 버스킹이나 직장인 밴드는 이 기준에 들지 않는다.

 

수익 활동으로 직업으로서의 예술인을 판별하는 것이 그저 상업성에 순응하라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기타 레슨을 받았을 때 '팔릴 만한 연주인지 스스로 체크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호응할 수 있는 연주인지, 계속 귀 기울여 듣고 싶을 연주인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지 싶다. 작품의 완성은 작업에서 손을 떼는 순간이 아니라 작품과 감상자의 대화가 이루어질 때 마침표를 맺게 되는 게 아닐까.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도 결국 다른 방식의 소통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러니 돈을 내든 시간을 내든 찾아오는 발길이 있어야 한다.

 

한편 이 관점은 '작가의식'의 무게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 일관된 작가의식은 이해를 받기에 앞서 세상에 '내 목소리'를 내놓게 할 동력이지 않을까. 아마 다음의 네 가지 경우가 있지 싶다. 뚜렷한 의식이나 완성도 있는 창작에는 채 미치지 않은 유희 단계의 경우. 의식은 승한데 작품으로 구현되지 않은 경우. 작품의 완성도는 높은데 작가의식은 부재한 경우. 일정 수준의 완성도와 일관된 의식을 갖추고 지속해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 흔히 '프로'라고 불리는 이들은 작품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며 때로는 긴장된 대화를 낳기도 할 것이다.

 

소설 '토니오 크뢰거'에는 파티에서 자신의 시를 낭송하는 이가 짧게 등장한다. 사람들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분위기가 썰렁해지는데 낯설지가 않다. 아닌 줄 알면서도 적당한 재능과 미련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때로 내가 아무렇게 쌓은 블록 조각을 들이밀며 이것 좀 보라고 보채는 꼬맹이 같지만 그래도 몰두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김경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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