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도 나를 [사람]

자기소개 해볼까요?
글 입력 2021.11.05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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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같이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내게 묻지 마요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그 이유를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나도 나를>

 

 

부끄럽지만 위 글은 필자가 작곡한 노래 가사이다. 그리고 더 부끄럽지만 자기소개를 해볼까 한다. 음악으로 운을 뗐으니 시작은 음악 얘기가 좋을 것 같다. 제 인생 변천사가 그리 굴곡 지지 않은 만큼 음악의 역사에도 지독히 파격적인 부분은 없다는 점을 미리 밝히고 들어간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방황하던 청소년 시절, 한 번쯤은 방을 광광 울리는 헤비메탈이나 <데이비드 보위>, <퀸>, <비틀스>같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밴드 음악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헤비메탈까지는 아니지만 제게도 저의 한때를 장식할 ‘가수’와 ‘음악’이 있었다. 열넷, 처음 음악을 만들었던 중학교 1학년으로 돌아가 보겠다.

 

 

퀸 데이비드 보위 비틀즈.png

 

 

 

<13>



열셋, 손에 꼭 들어오는 작은 MP3 안에는 최신 가요들과 수십 편의 인터넷소설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때만 해도 음악은 유튜브에서 듣는 것보다 매달 최신 음악을 올려주는 사이트에서 듣는 게 당연한 방식이었다. 종종 주말이 되면 이모는 불법 사이트에 들어가 다운로드한 음악을 CD로 구우셨는데, 나는 그 CD를 아빠 차 한편에 잘 모아두고는 했다.


- [제목 없음] 내가 뭐 보냈는지 까먹어서 겹치는 거 많을 수도 있어!

- 꾀꼬리. zip  (1.67GB) 저장


때로는 이렇게 친구가 메일로 보내준 노래들을 MP3에 옮겨 받았다. 메일에 첨부된 노래 중에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가 가장 많았지만, < DJ Okawari >나 <이루마>, <불꽃 심장>, < Robert De Boron > , < Valentin > 등의 피아노 곡도 지분을 꽤 크게 차지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 Rihanna >-Diamonds, < TAW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Ke$ha > 등이 있었는데, 후에 내가 만든 노래들은 거의 이 시절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14>



열넷, < Taylor Swift >와 <버벌진트>가 우리들을 강타했다. '우리들'은 나 그리고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난 수많은 팝스타들의 노래를 들었지만 유독 < Taylor Swift >만의 Country Song에 매력을 느꼈고, 수많은 힙합 노래가 싸이월드를 장악했지만 <버벌진트>의 감성과 실력에 비빌 자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만든 또 한 명의 인물은 바로 <아이유>다. 그녀가 TV에 나와 ‘BOO’를 외칠 때부터 함께라 믿었던 운명의 끈은 <하루 끝>과 <복숭아>를 기점으로 더 단단히 얽히게 된다.

 

 

버벌진트.png

 

 

내 첫 자작곡은 잔잔함으로 무장한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었지만 세 가수의 노래를 짬뽕한 듯한 느낌을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었고, 결국 다른 이들에게 공개되지는 못한 채 비밀 일기장 속에서 서서히 잊혀 갔다. 나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이 노래를 아는 이가 있다면 그때 가장 친했던 친구인데, 그녀가 기억할 리 만무하니 당당히 이 자리에서 공개해 보도록 하겠다.

 

아니. 못하겠다. 진정 창피해서 밝힐 수가 없다. 다음 기회에 공개해 보도록 하자. 구구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여러분의 첫 짝사랑 스토리를 떠올려 보시길. 내 가사도 바로 그런 경험에서 우러나왔으니 말이다. 참고로 노래 제목은 <미치도록>이었다.

 

 

 

<15>


 

첫사랑이자 짝사랑이었던 사랑이 끝나고 나의 음악세계는 새로운 노선을 타기 시작한다. 여전히 내 음악의 어머니는 테일러, 아버지는 버벌진트, 언니는 아이유였지만 여기에 새 친구들인 ‘인디 가수’들이 합류하게 된다. <옥상달빛>, <제이레빗>, <팻두>, <스탠딩 에그>과 같은 국내 인디밴드에 < The Band Perry >, < Birdy >, < Norah Jones >, < Carpenters >, < Corinne Bailey Rae > 등 외국 가수들이 더해지면서 음악 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당시 음악은 내가 사춘기 시절에 겪었던 깊은 우울과 외로움을 토로하기 가장 좋은 공간이기도 했다. 부모님이 맞벌이 시다 보니 오래전부터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는데, 유독 겁이 많았던 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온 집안에 울려 퍼질 정도로 음악 볼륨을 크게 키워 놓곤 했다. 주로 < Birdy >나 < Kelly Clarkson >의 곡들이었다. 이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면, 감정의 깊은 골짜기에 스스로 발을 담그고 빠져버리면 홀로 벗어 나오기 매우 힘이 드니 절대 코 꿰이듯 슬픈 감정에 넘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결론적으로 그 당시 난 깊은 구렁텅이에 발을 들였고 꽤 오랫동안 지치지 않는 무한의 우울 속을 헤엄쳐 다녔다.

 

그렇다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두운 노래들은 사람들의 감수성을 증진시키는 이상한 힘을 갖고 있다. 그 감수성이라는 게 내 육체와 정신을 뜯어먹고 산다는 것만 아니었다면 내 평생을 끌어안고 옥이야 금이야 하며 살았을 것이다.

 

우울감은 속에서 곪아갔지만 밖으로 내비치는 성향은 보통의 아이들처럼 활달하고 천진난만했으니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가끔 극도로 과열된 분노가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기도 했으나 분출이 끝나고 나면 다시금 덮어둘 뿐, 활발히 활동하는 그 내부를 들여다본 이는 없었다. 이럴 때 친구라는 게 참 중요하다.

 

 

 

<16>


 

지금은 멀어져 연이 닿지 않게 되었지만, 그때는 내 목숨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 아끼던 친구가 있었다. 열여섯, 한창 성에 눈 뜰 나이. 그리고 곧 다가올 이별은 생각도 못 한 채 멍청히 즐기기만 했던 나이. 친구들은 스스로 개성을 찾아갔고 사랑에 아파했으며, 본인의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내리기도 했다. 그 속에서 난 개성도 사랑도 우정도 행복도 정체성도, 그 무엇도 찾지 못한 채 그들보다 한 발짝 뒤에 서서 앞서 걸어가는 그들을 바라봤다.

  

중학교 3학년, 1년 내내 담당했던 청소구역이 있었다. 아무도 찾지 않고 쓰지 않는 복도 제일 끝에 딸린 오래된 시청각실을 나를 포함해 제일 아끼던 친구들 4명과 매일 쓸고 닦았다. 꽤 오래 걸리던 청소는 다른 학생들이 모두 하교하고 나서야 끝나곤 했다. 바닥을 다 쓸고 난 후, 대걸레질하는 친구 둘을 기다리는 동안 다른 친구와 함께 창문 난간에 걸터앉아 텅 빈 학교를 내려다보며 수다를 떨고 노래를 불렀다.

 

종종 핸드폰을 마이크에 연결해 노래를 틀어 놓기도 했는데, 시청각실 마이크를 통해 복도까지 울려 퍼지던 그 노래가 어떤 노래였는지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하늘을 스쳐 지나가던 구름모양과 노을의 빛깔, 대걸레 세제 냄새와 메아리처럼 울리던 그들의 웃음소리, 낡은 베이지 가죽 소파와 그 앞에 놓인 낮은 테이블, 천장에 빼곡하던 갈매기 무늬 같은 것들이 아주 또렷이 남아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어느새 노을이 내려앉아 있었다. 산 능선을 타고 보이는 하늘은 밑에서부터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의 색을 띠었다. 우리는 그 하늘을 ‘무지개’라고 불렀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친구들과 서서히 멀어졌고 다시는 함께 무지갯빛 하늘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여기, 중학교 3학년 국어 선생님이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있다.

 

- 고등학교 1학년 때 좋아하던 오빠와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나란히 이어폰을 나눠 끼고 노래를 들었어. 그날 비가 왔었는데, 아직도 비가 오는 날이면 그때 들었던 노래가 떠올라. 벌써 몇 십 년 전인데도 그 노래만큼은 선명해. 신기하지? 너희도 그런 거 하나쯤 만들어 놔.

 

제일 아끼던 친구와 멀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들었던 노래, 태연의 쌍둥이자리는 여전히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일종의 테마송이다. 뭣도 없는 내 노래를 들어주고 따라 불러주던 그녀의 상냥함을 기억하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이렇게나마 전하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한 곡의 테마송으로 남기를 소망한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주제도 없고 일관성도 없는 글을 읽어 주심에 감사드리며, 지금의 여러분을 있게 한 테마송은 무엇인가요?


 

[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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