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재즈와 카르페 디엠 [음악]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
글 입력 2021.11.0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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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처음으로 재즈바에 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재즈의 j도 몰랐던 나였는데. 음악에 조예가 깊던 한 친구와 만난 후부터 재즈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오래 쳤던 친구는 음악을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클래식이나 재즈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었다. 향에 민감한 나와 달리 음악에 예민한 친구 덕분에, 가게의 음악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다시금 알게 되었고 말이다.


처음 재즈곡을 음악 플레이리스트에 넣은 날도 같이 음식점에 갔던 날이었다. 한창 분주한 저녁 시간에 들어간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손님의 단란한 대화, 바쁘게 움직이는 종업원의 인사, 달그락거리는 주방 등 온갖 소리로 가득한 식당에서 갑자기 친구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이유를 물으니 지금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 나오고 있단다. 시끄러운 가게에서도 바로 알아들을 정도로 좋아하는 노래라고 하니 궁금증이 일었다. 대체 어떤 노래이길래 저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는 걸까. 잊지 않도록 바로 플레이리스트에 곡을 넣어두었다. Eddie Higgins의 Autumn Leave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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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집에 돌아와 노래를 틀었다.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노래는 오랜만이었다. 유려하게 흐르는 피아노 선율과 경쾌한 드럼, 가볍게 파고드는 베이스의 묵직한 소리가 합쳐져 정말 가을바람에 낙엽이 흩날리는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이후에도 애니메이션 <언덕길의 아폴론>을 통해 알게 된 Art Blakey & The Jazz Messengers의 Moanin’과 사운드 오브 뮤직의 삽입곡 The Favorite Things. 그리고 영화 <소울>로 이어진 감상의 나날들은 재즈에 대한 흥미를 키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관심을 가득 채우고도 넘쳤다.


직접 재즈곡을 찾아서 듣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친구의 추천곡이나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에는 이미 무드에 맞는 곡들을 모아놓은 훌륭한 영상들이 많았다. 그렇게 음악을 찾아서 듣다 보니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같은 연주자, 같은 곡이라도 연주는 매번 달라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다른 음악 장르도 리메이크 혹은 번안을 거치며 조금씩 달라지만, 재즈의 변화만큼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이렇게 즉흥성이 강한 장르의 공연은 얼마나 특별할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직접 공연에 가고 싶어졌다. 현장의 분위기와 관객들의 호응, 연주자의 에너지를 몸소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한 지 몇 달이 되던 지난주 주말, 드디어 재즈바에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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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바에 들어가 보니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예약 정보를 확인하고 안내해준 자리에 앉았다. 공연이 목적인 장소인 만큼 테이블의 의자는 모두 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료와 안주를 주문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연 장소로 보이는 가게의 한쪽 면에는 각종 음향 장비와 악기가 가지런히 세팅되어 있었다. 연주자들은 짧은 시간동안 음향을 체크했는데 그 찰나에서 전문성이 느껴졌다. 사장님은 연주자의 요청을 받아 장비를 조절하며 손님들의 주문을 받았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점점 가게 안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분주한 듯 차분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20분 정도가 흘러 시작 시간이 가까워졌다. 연주자들은 한 손에 와인잔, 한 손에 악보를 들고 각자의 자리로 향했다. 가게의 조명이 모두 연주자들을 비춘 순간, 가게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은은한 대화가 흐르던 빈자리는 공연에 대한 기대감과 숨소리로 가득 찼다. 이윽고 연주자가 입을 뗐다. 본인들의 소개로 시작된 인사는 본 공연의 콘셉트, 다음 곡에 대한 소개로 매끄럽게 이어졌다.


이윽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시시각각 소리를 바꾸는 키보드, 언제나 묵직하게 무게를 잡아주는 콘트라베이스와 기교 가득한 드럼, 건반 위를 질주하는 피아노 연주자의 손에 이끌려 나는 어느새 재즈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다 같이 연주할 때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채우면서도 솔로 파트가 오면 화려하게 자신의 소리를 뽐내는 모습에서는 대학 동아리에서 했던 밴드부의 공연이 떠올라 괜히 그리운 기분에 심취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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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의 가장 좋았던 점은 연주자들의 표정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연주에 심취해 잔뜩 풀어진 미소가 참 아름다웠다. 음악에 대한 애정이 한껏 담긴 표정이었다. 관객들의 반응이 좋아질수록 연주는 더욱 고조되었다. 북이 찢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커지는 드럼 소리에 맞춰 내 심장 소리도 같이 빨라지는 것 같았다. 콘트라베이스의 줄은 끊어질 듯 위태로워 보이고 건반 위의 손가락은 끝과 끝을 오갔다. 그리고 보컬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가게 안을 가득 울린 순간. 절정을 향해 달려갔던 곡이 마무리되자 잠시 정적이 일었다.


이윽고 숨죽이고 있던 관객들 사이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연주자들은 각자 손을 풀며 관객들을 둘러보았다. 뿌듯한 표정으로 서로 눈을 맞추는 연주자들이 보였다. 얼마나 집중했는지 한껏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라이브였기에 알 수 있던 생생한 현장감이었다.


한껏 몰입했던 공연이 끝났다. 집에 돌아가면서 마지막 곡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잠시 공연에 심취해 있어 곡명을 기록하지 않았던 게 마음에 걸렸다. 그렇지만 곧 단념했다. 이미 한 번뿐인 연주였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연주자의 공연에 한 번 더 가게 되더라도 오늘과 같은 연주는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곧 아쉬움은 사라지고 공연의 여운에 심취한 채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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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나온 라틴어 ‘카르페 디엠’이 떠올랐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관객과 연주자의 에너지가 합쳐져 나온 지금의 연주는 오직 한 번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과 품을 들여 라이브 공연에 찾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카르페 디엠과 재즈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새로운 기대를 안고 또 다른 재즈바에 찾아갈 것이다.

 

 

[최예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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