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조선판 스파이 액션, 손탁 빈관 [도서]

글 입력 2021.11.0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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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추석 때 정동에 다녀왔었다.

 

덕수궁이 오랜만에 야간개장을 한다고 해서 가족들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다녀왔다. 밤에 볼 덕수궁을 보기 전에 정동을 먼저 한바퀴 돌았는데 그전엔 못봤던 운교의 흔적에 관한 안내판이 있었다. 덕수궁으로 이어지는 운교를 통해 어떤 사람들이 오갔고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생각해보다 발걸음을 옮겼다.

 

해가 져 어수룩해지고 어둠이 땅에 점점 드리울 때쯤 덕수궁 안으로 들어가자 을사조약을 맺었던 중명전이 보였다. 지금의 일상은 아니지만 과거에 일본의 속국이었던 시절, 절망과 허탈감으로 살았을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하는 마음 절반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즐거운 마음이 절반인 밤이었다.

 

*


“우리에겐 황제 직속 최고의 첩보원이 있었다.”

격동의 근대사가 펼쳐지는 손탁 빈관, 그곳을 무대로 암약하는 제국익문사 비밀요원의 첩보전!


소설 『손탁 빈관』은 고종 황제가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해 일본의 침략상을 알리려고 했던 1907년 대한제국이 배경이다. 작가는 손탁 여사가 운영한 손탁 호텔을 무대로 헤이그 밀사 파견과 제국익문사를 엮어 긴장감이 넘칠 수밖에 없는 그 혼란한 시대를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1907년 대한제국, 한성과 궁궐을 지키는 시위대 병사 한정혁은 훈련 도중 자신들을 노골적으로 비웃는 일본군 장교를 공격했다가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군복을 벗어야 하는 그에게 대대장 박승환 참령이 ‘손탁 빈관에 가서 보이를 하지 않겠냐’는 뜻밖의 제안을 한다.

 

그즈음, 대한제국 비밀 첩보기관인 제국익문사 요원이 경성역에서 암살당하고, 수뇌부는 몰살 당한다. 특급 요원인 갑급 통신원 17호는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내부 배신자를 찾고,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라는 황제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 와중에 손탁 빈관에서 만난 한정혁을 미끼로 삼아 추격해오는 일본 첩보 요원들의 눈을 속이기 시작하는데…….

 

*


손탁호텔은 현재는 정동에 터만 남아있어 사진 자료를 통해 그 모습을 알 수 있다. 건물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손탁 호텔에는 당시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수많은 일본인들과 외국 사절들이 드나들었고 대한제국의 미래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이 오갔을 것이다.

 

그러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소설 '손탁 빈관'은 제국익문사의 비밀기지가 되고 일본인들의 눈에 띄지 않게 헤이그 특사 파견을 돕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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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의 한 장면

 


작가의 상상력을 따라 덕수궁 안쪽의 정동으로 가보면 마치 현재도 남아있는 것만 같은 손탁빈관에서는 격투기 벌어지고 통신원들의 은밀한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있었던 일처럼 느껴지는 생동감 넘치는 사건을 읽으면서 종종 역사적 사실인지 허구인지 헷갈린 적도 여러번이었다. 혼란과 불안정의 시대였던 만큼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사회적 배경이 인물들의 대화와 행동에 더욱 집중하게 하는데, 그런 오랜만의 몰입감이 좋았다.


이미 알고 있던 큰 사건들인 을미사변, 아관파천, 을사조약 체결, 그리고 헤이그 특사 파견 등 굵직한 이야기들을 기둥으로 엮어나간 작품 속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고종 황제와 손탁 여사를 향한 작가의 시선이었다. 고종은 대부분의 시대물에서 무력한 사람으로 다뤄지곤 한다.

 

고종이라는 사람에 대해 진취적이고 희망을 놓지 않았던 인물이라고 묘사한대도 결국 대한제국이 일본의 속국이 되었기에 결과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다. 하지만 끝까지 나라를 포기하지 않았고 일본에 대해 저항하고자 했던 리더임을 좀더 드러냄으로써 연민과 위안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게 되었다. 유약한 리더보다는 그럼에도 그는 최선을 다했다는 편이 더 나으니까.


손탁 여사는 알자스 로렌 지방 출신의 독일인으로 1885년 조선에 왔다. 당시 입국한 러시아 공사의 처형으로 요리를 잘하며 미적 감각이 뛰어났다고 한다. 외교조약을 맺을 일이 많아짐에 따라 러시아 공사의 추천으로 궁내부 소속이 되어 귀빈 접대를 맡기도 했다고. 이후 고종이 하사한 정동의 땅에 호텔을 지어 배일운동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충분히 그랬을 만하다는 가정 하에 이곳을 제국익문사의 아지트로 활용한 점은 작품에 생명력을 더욱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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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의 한 장면

 

  

끊임없이 쫓고 쫓기며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기 위해 신분을 숨기며 활동하는 제국익문사 요원들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망해가는 조선의 저항에 힘을 보탤 것이냐, 승률이 높아보이는 저 일본의 대세에 따를 것이냐를 고민하는 모습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요원이기 전에 가족이 있는 사람이고 더 적은 확률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갔다. 그래서 더욱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희생하는 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음을 새삼 생각해보았다.


웬만한 용기로는 할 수 없는 일에, 그것도 승률이 너무나 적은 싸움에 기꺼이 뛰어들었을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허구이지만, 충분히 있었을 법한 이들의 독립을 위한 분투는 열린 결말로 끝난다. 실제로는 그 싸움에서 우리 힘으로 승리하지 못했지만 작품 속에서는 요원들의 노력이 조금이나마 더 자주적인 결실을 보았기를.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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