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검정치마(Black Skirt) 유니버스 3편 [음악]

[THIRSTY]
글 입력 2021.10.3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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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STY]에 대해 이제 말해야 하는데, 내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쓰기 어려웠다. 나 스스로도 그 앨범을 즐겨 듣지 않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앨범과 관련된 논란거리에 대해 어디서부터 입을 때야 할지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은 [THIRSTY]만 들었다. 검정치마가 이전 앨범을 통해 보여준 태도와 이야기들을 생각해 보면서 말이다.

 

 

 

‘독보적인 감성’이라는 안대


 

검정치마의 음악이 사랑받는 이유는 그의 노래에서 풍기는 감성이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독보적인 감성’, ‘검정치마 만의 감성’.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그의 음악에 어느정도 프레임을 씌우고 있는 것 맞다. 그리고 최근에 발매한 ‘Ling Ling’과 같은 드라마 OST를 들어보면 검정치마 본인도 그런 시선을 일부분 인정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독보적인 감성이란 걸 무엇일까. 조휴일의 독특한 보컬과 감각적인 사운드? 어떤 분들에겐 ‘그것’만으로도 음악을 충분히 즐길 수 있기에 충분한 필요조건이겠지만, 음악에는 ‘가사말’도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검정치마 감성’에는 ‘가사’가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사말에 진심을 담지마, 사람들은 어차피 못 알아들어

 

- 음악하는 여자, 검정치마

 

 

검정치마의 가사는 독보적이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솔직하고, 과격하다. 날카롭고, 날이 가득 선 바늘로 여기저기 쑤셔댄다. 발칙하고, 때로는 끔찍하다. [TEAM BABY]는 비교적 온화하고 아름다운 가사말로 가득하지만, 극단적으로 ‘사랑’에 대해 호소한다는 점에서 극단적이고 날이 서 있다. 그의 나른하고 몽롱한 목소리는 하나의 악기처럼, 곡의 사운드를 이루고 있어 가사를 흘려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의 이전 곡들은 가사를 차치하고 ‘사운드’, 그러니까 ‘감성적’이란 영역 만으로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THIRSTY]는?

 

내 주변에 검정치마를 좋아한다는 분들도 [THIRSTY]를 듣고 꺼림칙하고, 불편해서 한동안 그의 음악을 멀리했다고 고백했다. 논란이 됐던 가삿말 때문이라는 분들도 계셨고, 이전의 음악들이랑 너무 달라서 괴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라는 분들도 있었다. 그럼 나는 왜 [THIRSTY]를 멀리했더라. 너무 반가운 앨범이라 전 곡을 돌렸는데, 첫 트랙부터 미간을 찌푸리게 됐다. 어떤 앨범이건 첫 트랙이 앨범의 분위기를 장식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틀린 질문’은 그렇게 사랑받던 [TEAM BABY]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대 알잖아요 나는 저들과는 달라요. 목이 타서 죽겠지만 물은 안 마셔요. 속에 담아뒀던 좀 더 뜨거운 걸 주세요. 이젠 여기 웃음꽃이 피어날 거예요. 돌을 들고 달려온 저 야만인들 좀 봐요. 송곳니를 뽑아가서 목에 걸 거래요. 내 음악이 비명이 되면 춤을 출 거예요.
 

 

평이하게 진행되는 것 같던 노래는 과격한 가삿말과 함께 찢어지는 사운드로 가득해진다. 끝없는 갈증에 대한 서문이자 지은이인 ‘검정치마’의 여는 글이다. 이 앨범이 가져올 모든 풍파를 예상했다는 듯, 한껏 비꼬고 있다. 고고한 문명인이자 예술인인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은 ‘야만인’이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노래에서 말한 것들은 실현이 됐다. 그의 음악적 사상이 들추어지고, 예술의 경계에 대한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으며 사회적인 논란거리가 됐다.

 

가장 논란이 됐던 건 가사말이었다. 그리고 많은 대중들이 그에게 실망한 지점도 ‘가삿말’일 것이다. 이전에 그가 써왔던 노래들도 재평가됐다. 우스운 건 검정치마 본인도 이런 풍경을 예상하고 트랙들을 짜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음악적으로나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Hollywood’의 거울과도 같은 노래 ‘Bollywood’를 수록했다. ‘틀린 질문’은 ‘난 아니에요’의 연장선에 있다. 가삿말에 진심을 담지 말라고 마, 사람들은 관심이 없어. 라고 말했던 검정치마는 가삿말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나에겐 [THIRSTY]가 이렇게 들렸다. ‘내 가사에 관심도 없고, 겉보기만 좋아하면서.’

 

 

 

뻔뻔하고 그로테스크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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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치마 3집 Part2. [THIRSTY]

 

 

[THIRSTY]의 트랙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고 있다. 연인이 있는 남성(화자)는 연인이 아닌 다른 ‘여성’과 단순히 육체적 쾌락을 위해 만난다. ‘광견일기’에 묘사된 내용에 따르면 ‘여성’은 성노동자다. 음지에서 육체적 쾌락만을 추구하던 화자는 처음엔 ‘연인’에게 죄책감을 느끼지만, ‘여성’과의 쾌락에 점점 젖어가면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Lester Burnham, 상수역). 화자도 안다. 자신의 행위가 지탄 받을 일이고, ‘연인’에게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는 것을 (Bollywood). 그리고 남자는 ‘여성’에게도 사랑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빨간 나를). 결국 두 여자 모두 남자에게서 떠난다.

 

그로테스크(grotesque)는 괴기스럽고, 끔찍한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예술미다. 관람자에게 불편한 감정을 주는 것이 목적인 예술 양식이다. 굳이 왜?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만 있는 게 아니니까. 천박하고 더러운 모습을 통해 아름다운 예술이 감추고 있는 세상의 모순을 폭로하는 것이다. 극단적이고, 우리가 쉽사리 접하기 힘든 범주의 것을 접하면 당연히 미간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THIRSTY]를 듣고 불쾌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애초에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진 예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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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뷰티 (1999)

 

 

예술은 아름다워야 한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건 뭘까. 미학적 논쟁이 끼어들 수밖에 없다. 현대에는 상당 부분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가 대중들에게 넘어왔다. ‘그로테스크’가 우리에게 그리 먼 분야도 아니다. ‘기생충’도 그로테스크하지 않은가.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은 또 어떠하고. 홍상수 감독의 작품도 보고 나면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현대 대중들이 향유하는 예술은 ‘판타지’에 가깝다. 아름답고, 황홀한 것. 그러다가도 극단적인 수준의 감정을 내포한 예술을 마주하면 ‘예술’이라고 칭한다. 아이러니하다. 그런 점에서 그로테스크는 ‘리얼리즘’의 다른 말은 아닐까.

 

1편 서문에 ‘음악 얘기로 물꼬를 트는 일’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음악은 누구나 즐기는 예술이니까. 취향이 반영되기 쉽고, 본인의 판타지가 투영되기 쉽다. 그래서 음악은 더욱이 아름다워야 한다. 내가 듣는 음악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의 폭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그 밖의 범주로 튀어나가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THIRSTY]는 아름답지 않고 그로테스크하다. 판타지도 없다. [TEAM BABY]로 울렁이던 감정의 그래프 폭은 크게 급락한다.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음악이다. 낭만적이긴커녕 더럽고 추악한.

 

그렇기에 우린 [THIRSTY]를 다른 시간에서 바라봐야 한다. 기가 막힌 로맨스 영화를 만들고, 후속편이 치정 드라마라니. 당황스러운 마음도 이해가 간다. 그리고 가삿말이 주는 불편함도 공감한다. 그래도 이 앨범을 듣고 싶으시다면, 하나의 문학 작품을 본다는 심정으로, 검정치마라는 작가가 만든 예술품을 감상한다는 마음으로 보는게 옳을 것이다. 추악한 사랑과 사랑에 대한 끝없는 갈증. 마지막 트랙 ‘피와 갈증’의 후반부는 [TEAM BABY]의 ‘나랑 아니면’의 배드엔딩 버전이다. 극단적인 사랑의 호소와 파멸. 양 극단의 감정의 균형을 감당하실 수 있으시다면, 천천히 한 트랙씩 들어보시는 건 어떨지. 세상에는 결코 아름다운 사랑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THIRSTY]는 그런 사랑에 대한 검정치마의 대답이다.

 

 

 

구원의 대답은 그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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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teenage frankenstein (1957)

 

 

앨범 커버 속 여인을 안고 절규하는 남성의 모습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오마주 했다. 남성의 해괴망즉한 얼굴은 쾌락에 절어 괴물 그 자체가 되어버린 화자를 의미하는 듯하다. 사랑에 대한 갈망, 불륜으로 망가진 사랑에 대한 후회 속에서도 그는 구원을 바라고 있다. 망가진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연인에게 뒤늦은 용서를 구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럼에도 구원의 대답은 사랑이다. [TEAM BABY]가 외친 죽일 수도, 죽을 수도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

 

[TEAM BABY]와 [THIRSTY]는 연작이다. 서로의 존재로 인해 각 앨범의 주제가 더욱 부각된다. 두 앨범 모두 검정치마의 의도하에 치밀하게 배열된 작품인 셈이다. 아름다운 사랑과 추악한 사랑의 말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맞닿아 있다. 발매될 PART 3는 어떤 유형의 사랑일지. 양 극단을 달리는 사랑 사이에서 검정치마는 어떤 음악을 보이게 될까.

 

 

 

절박한 예술가가 아니에요.



[THIRSTY]는 2020년 최우수 모던록 음반에 수상됐다. 나도 본 글을 쓰면서 자료조사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다. 상이랑 유난히 연이 없던 아티스트였는데, 가장 논란이 된 앨범으로 상을 받았다. [THIRSTY]에 쏟아진 관심과 비난들은 어느 정도 합당하다. 다만 예술가 ‘검정치마’와 ‘조휴일’은 분리해서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게 내 의견이다. 앨범 내에서 쓰인 표현은 맥락 아래에서 해석되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본 앨범에 대해 충분히 논하려면 예습이 필요하다. 샘 멘데스 감독의 <아메리칸 뷰티>, ‘그로테스크’하다는 것, [TEAM BABY]와의 유사성, 앨범 커버가 오마주한 두 작품 등등.

 

검정치마 본인이 말했다. ‘절박한 예술가가 아니다’라고. 자신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것이고, 내 음악을 이해 못 한다면, 당신들은 야만인이라고. 조금은 과한 발언이지 않나 싶지만, 통쾌하기도 하다. 자의식 과잉인 예술가의 오만이라고 비판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런데 검정치마는 늘 그렇게 음악을 해오던 사람이다. 조휴일 본인도 [THIRSTY]는 대중적인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란 걸 알지 않았을까. ‘아름다운 노래가 아니라서 유감이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노래를 만들 겁니다.’

 

 

 

지정현.jpg

 

 

[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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