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술관에 걸린 텅빈 액자, 작품명은 '돈을 갖고 튀어라' [미술]

옌스 호닝의 작품에 대한 갑론을박
글 입력 2021.10.2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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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옌스 호닝의 '돈을 갖고 튀어라'

 

 

지난달 29일 덴마크에서 이슈가 되는 한 사건이 발생했다. 덴마크 쿤스텐 올보르 현대미술관에 걸린 ‘하얀 캔버스 2점’ 때문이다. 미술관에 하얀 캔버스라니, 그리고 그 캔버스 위에 무언가 뜯어낸 듯한 자국이 있다니, 이는 모두를 혼란에 빠트렸다. 작가의 실수 혹은 미술관 관계자의 실수일까? 아니면 진짜 예술 작품일까? 과연 이 이슈에는 어떤 사정이 있을까.


답을 먼저 말하자면, 이 하얀 캔버스는 작품이 맞다. 하얀 캔버스가 미술관에 걸리게 된 사정은 이렇다. 올보르 현대미술관은 Work It Out을 주제로 예술과 노동의 관계를 탐색하는 전시회를 열기 위해 작가를 찾던 중, 덴마크 예술가 옌스 호닝(Jens Hanning)에게 연락을 취했다. 평소 옌스 호닝은 노동, 권력, 불평등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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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 측에서 요청한 옌스 호닝의 작품

 

 

미술관 측은 그의 이전 작품 중, 과거 오스트리아와 덴마크 노동자의 평균 임금을 액자에 넣어 만든 작품을 재현해 주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작품에 쓰이게 될 현금을 호닝에게 빌려주고, 2022년 1월에 그 금액을 다시 돌려받는다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작품 제작과 전시에 대한 대가는 따로 3,900달러를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전시 개막을 앞두고 도착한 호닝의 작품은 앞서 언급했듯 텅 빈 하얀 액자였다. 그리고 이 작품엔 ‘돈을 갖고 튀어라(Take the money and run)’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이 이슈에 옌스 호닝은 “나는 돈을 훔치지 않았고, 예술적으로 훨씬 우수한 작품을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술가의 낮은 처우를 고발하기 위해 처음부터 이 같은 구상을 했었다.”고 말하며 “이번 일은 절도가 아니라 계약 위반이고, 계약 위반은 이 작품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한편 미술관 측은 “호닝이 가져간 돈은 공금이다. 계약서에 따라 돈을 돌려주어야 한다. 소송을 통해서라도 이를 받아낼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작품에 관해서는 “고민 끝에 작품이 전시의 방향과 부합한다며 전시에 걸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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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옌스 호닝의 '돈을 갖고 튀어라'

 

 

이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크게 갈린다. 먼저, 옌스 호닝의 작품은 예술이 아니며 그저 사기 행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옌스 호닝은 의뢰받은 금액에 따른 노력과 결과물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창작이라기보다 그저 적당해 보이는 의미를 부여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예술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고 예술가의 가치와 존재 이유를 희미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가 계약 위반 행위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버린 것은 무책임한 것이라 말한다. 그의 행위는 예술계 윤리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일이며,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떨어트리는 행위다. 이는 얼마든지 추후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되어 악용될 가능성이 높으며 단순 이슈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독 예술계에만 너그러운 잣대가 허용되는 현상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되며 ‘예술’이 도피처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에 상반되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옌스 호닝의 작품에 긍정한다. 옌스 호닝은 예술과 노동이라는 전시 의도에 맞는 창작물을 가져왔다. 오히려 캔버스에 표현하는 2차원적 작품 그 이상의 가치를 선보였다고 말한다. 이 이슈야 말로 현대 미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대중에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나누지 않고, 예술의 무한함과 잠재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새로운 감상 지표를 보여주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문제가 되고 있는 윤리적 문제 또한 작품의 의도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동안 수많은 예술인들이 겪어온 비합리적인 계약, 임금, 노동력 등을 재현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예술인이 당사자였을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상황이 뒤바뀌자 문제가 되는 이 역설적인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옌스 호닝의 작품이 모두가 예술인의 권리에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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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옌스 호닝의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

 

 

이 이슈와 관련된 상반되는 입장을 살펴보니 충분히 두 입장 모두가 이해가 간다. 각자 충분한 논리가 뒷받침되기에, 옌스 호닝의 작품을 과연 작품으로 봐야 할지에 대한 논쟁은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작품의 제목처럼 ‘돈을 갖고 튄 행위’를 작품으로 인정해야 하는가? 아무 흔적도 없는 하얀 캔버스를 작품으로 여겨 감상해야 하는가? 나 역시 두 입장 사이를 왔다 갔다 거리며 혼란함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 혼란스러움과 갑론을박의 논쟁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나는 옌스 호닝이 우리에게 예술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할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개개인마다 예술이라고 여기는 범위는 다 다르다. 누군가는 작품 외적인 요소에 초점을 둘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작품 내적인 요소에 초점을 둘 수도 있다. 그래서 작품의 색, 선, 재료 등에 집중을 하는 감상자가 있는 반면 작가의 가치관과 전반적인 화풍, 일시적인 감각과 느낌에 포인트를 두는 감상자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예술에 대한 이론과 논리는 다양하다. 예술은 ‘a는 b다’와 같은 수식으로 정의할 수 없기에 그 범위와 경계는 무궁무진하다. 이 범위와 경계는 오로지 개인에 의해 정해질 뿐이다. 내가 어떤 예술적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도 뒤샹의 <샘>이 예술 유무의 논쟁에 휩싸인 것과 같다고 본다.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지에 따라 예술작품으로 보이기도 그저 덩그러니 놓인 변기가 되기도 한다. 옌스 호닝은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옌스 호닝은 대중이 예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아이러니하다고 여겨지는 이 이슈는 온오프라인 상에서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고,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평소 예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예술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하나의 해프닝으로 무겁지 않게 여겨져 애호가가 아닌 이들과도 자유롭게 예술에 대한 대화를 나눌 기회를 마련했다.


*


이렇게 쓰다 보니, 나의 입장은 옌스 호닝의 작품을 긍정하는 쪽에 가까운 듯하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느낌표(!) 혹은 물음표(?)를 떠올리게 하는 것인데, 그의 작품은 나의 이러한 예술적 가치관에 부합했다. 고요하고 잠잠했던 나의 머릿속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으로부터 나는 깨닫고 묻고를 반복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 즐거움을 느꼈다.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예술이다, 아니다 혹은 더 다양한 폭넓은 의견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복합적인 이야기들은 옌스 호닝의 작품에 붙어 그 의미를 확장해갈 것이다. 자유롭게 생각해보자.옌스 호닝의 작품에 대해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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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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