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제철 음식을 잊은 사람들에게 - 오는 날이 장날입니다 [도서]

글 입력 2021.10.2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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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고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오랫동안 같은 분야에 몰두한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저자는 식품 MD로 26년간 근무하였다. 계절마다 다른 음식 재료를 찾아 전국의 시장들을 다녔다고 한다. 자신의 직업에 오랜 기간 몰두해본 사람들에게는 감탄할 만한 이야기가 있다. 음식 재료와 시장의 세계에 대해 저자가 볼 수 있는 이야기는 나와 확연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책 머리에 시장의 이야기를 다뤄야 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내 생각에 확신을 하게 되었다.

 

 

보통 오일장을 소개하는 블로거나 유튜버들은 오일장을 흥미에 초점을 맞춰 소개하기 바쁘다. 족발을 썰고, 어묵을 먹고, 국밥에 소주 한 잔을 마시는 등의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 그들과는 다르게 흥미가 아닌 사람과 음식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사람 냄새, 음식 냄새 가득한 글 말이다.

 

P. 9

 

 

나는 어렸을 때 강원도에 잠깐 살았었는데, 그때의 우리 집은 논밭과 아주 가까웠다. 그래서 작물이 나고 자라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난생처음 풀이름도 익히도 메뚜기도 잡아본 나에게 엄마는 나중에는 나 같은 어린이들이 제철 음식이 뭔지도 모르게 될 거라고 했다. 마트에는 사계절 내내 나와 있는 음식 재료가 거의 비슷하니까 그렇다고 했다.

 

최근에 떠올려보니, 그때 즈음엔 줄줄 외우던 제철 과일 이름 같은 걸 다 잊었다. 어른이 된 나에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인터넷에선 검색하고 돈 주어서 못 구하는 재료가 거의 없으니 말이다. 뭘 먹어야 정말 맛있는지도 모르게, 자극적이고 편리한 음식들에 입이 길들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내가 제철이란 말을 다시 마주친 건 신기하게도 유튜브였다. 봄에는 두릅을 먹고, 겨울엔 굴을 먹으며 계절을 나는 사람을 모니터 너머로 보았다. 나는 굴도 두릅도 좋아하진 않지만, 누군가는 철을 맞아 맛이 꽉 찬 음식을 먹으며 이 계절을 살아간다는 걸 떠올렸다. 내가 신경 쓰지 않는 동안에도 제철의 식재료들이 주는 행복과 에너지는 어디 가지 않았다. 이 책을 제철 음식을 모르는, 제철 음식을 잊은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어서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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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사계절로 나뉘어 있다. 덕분에 차를 타고 전국의 장터를 크게 도는 것 같은 기분을 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시간과 계절 흐름대로 차례차례 시장과 먹거리가 소개된다.

 

시장이 나오고, 그곳에 철마다 중요해지는 먹거리가 소개된다. 오랫동안 식재료에 대해 풍부한 이야기들을 쌓았던 저자의 저력이 나온다. 어느 시장에 무엇이 좋은지, 어느 식당이 어떤 맛이 좋은지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시장을 잘 아는 만큼, 특유의 북적이는 분위기, 툭툭하지만 다정한 분위기가 글에서도 느껴진다. 정신없이 엄마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구경하던 시장 같은 책이다.

 

이 책의 좋은 점은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어느 곳에 어느 시장이 있는지, 어느 동네는 무슨 재료가 유명한지에 대한,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이야기가 많다. 어느 계절의 어디에선 무엇을 꼭 먹고 돌아와야 하는지 같은 싱싱한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다.

 

이름도 어색한 생선과 나물과 요리들도 쏟아진다. 닭갈비 빵, 수제버거 같은 익숙한 음식들도 나란히 펼쳐진다. 저자는 상당히 다양한 범위의 요리와 식재료들을 소개하고 있다. 거기에 요리든 식재료든 좋음을 판별하는 저자의 기준도 엿볼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조금 개인적이다. 음식 재료와 음식이랑 더불어 나는 음식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또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와, 식재료와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도 궁금했다. 음식이 아닌 이야기에도 관심이 있었다. 시장은 이미 조금 낯설고 겁나는 장소이기 때문에, 내가 들어보지 못한 시장의 사람 이야기들이 더 가득하길 욕심냈다. 이 책은 음식과 식재료에 조금 더 본격적인 내용이라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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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글 속에서 느껴지는 음식에 대한 저자의 시선을 읽는 것이다. 재미있었던 몇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딸아이는 해물을 거의 먹지 않는다. 비린내에 예민하다. (중략) 그런 아이와 강릉여행을 위해 고기 메뉴를 찾다가 발견한 식당이 있다. 메뉴로 돼지갈비와 껍데기만 있는 곳이다. 메뉴판이 단순한 식당일수록 내주는 음식에 공력이 가득 차 있을 확률이 높다. (중략) 상추에 고기와 밥을 얹고 먹은 다음 마무리로 막장찌개 한 수저,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면 고기를 추가 주문한다. ‘강릉까지 와서 돼지갈비는 무슨 돼지갈비?’ 하는 사람을 떨구고 가도 될 만큼 맛있다.

 

P. 51

 


맛이라는 건 너무 개인적이고 미묘한 영역. 나는 가리는 음식이 많은 사람으로서 그렇게 이해한다. 책에서 낯선 생선, 나물이 툭툭 등장할 때는 괜히 긴장된다. 그러다가도 느슨하고 너그러운 저자의 태도를 마주치면 마음이 놓인다. 즐기는 건 사적인 영역이다. 우리는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들을 몰래 내려놓고 각자를 위한 맛의 여행을 떠나면 그만이다.

 

 

소고기에 가장 어울리는 소스는 소금이다. 허브나 다른 것도 필요 없다. 마블링이 없이 보여도 충분한 지방을 품고 있는 것이 소고기다. 구운 소고기는 소금에 찍었을 때가 가장 맛있다. 등급이 낮다고 맛까지 낮다 생각하면 안 된다. 지방이 적게 분포했을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등급은 그저 참고일 뿐이다. 맛은 다양하다.

 

P. 101

 


좋은 것과 덜 좋은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따지다 보면 놓치는 것이 잔뜩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관점에서 맛에는 틀린 것도, 나쁜 것도 없는 게 아닐까. 그냥 다양한 맛일 뿐이다. 맛있다고 끄덕였던 것들이 정말 내 마음이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혹여 다른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 동조만 한 것은 아닌지. 내가 좋아하는 맛은 ‘다른’ 맛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시장처럼 넉넉한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깐깐하고 어려운, 편리하지만 밋밋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싱싱하고 정겹고 다채로운 시장 이야기로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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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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