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결국은 항상 모래가 이기니까 – 아웃 오브 이집트 [도서]

"이 책은 사랑했던 장소와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애정 가득한 회고록이자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연대기다." -[워싱턴 타임스]
글 입력 2021.10.23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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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오브 이집트_앞표지.jpg

 

 

이 책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안드레 애치먼의 회고록이다. 이집트에서 보낸 작가의 어릴 적 기억을 세밀하고 재치 넘치는 언어로 묘사하고 있다. 그의 다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이 탄생한 시작점이 바로 이 회고록이라 할 수 있다. 작가 특유의 우아한 언어로 바로 눈앞에서 바라본 듯 선명한 색상을 담은 배경 묘사와 개성 넘치는 다양한 등장인물들, 그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미묘한 감정과 수많은 사건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주인공 소년이 모든 이야기를 모든 이야기를 끌어가지만 [1장 군인, 세일즈맨, 사기꾼, 스파이]에서 허세로 가득 찬 빌리 할아버지, [2장 멤피스거리]에서 성격이 전혀 다른 친할머니 공주와 외할머니 성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후 [3장 100세 파티]에서 [6장 마지막 유월절]까지 바깥일로 바쁜 아버지 앙리와 청각 장애가 있는 어머지 지지, 피아노를 연주하는 플로라 숙모, 오디세우스를 낭송하는 시뇨르 달라바코와 매력적인 가정교사 록사네, 한 가족처럼 지낸 가정부 라티파와 하인 히샴이 주인공 소년의 눈에 비쳐 서술된다.


 

나는 수정처럼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숨결이 섞이지 않은 듯한 공기 냄새가 새롭고 신선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워지기 전의 여름 아침 냄새였다. 눈부신 햇살을 머금은 모래언덕마저도 깨끗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하늘을 쳐다보고 나서 고개를 내려 저 앞의 저택들조차 보이지 않는 두 눈을 주변에 가득한 모래 색깔로 진정시켜야만 했다. 그리고 얼굴만 들면 바다가 있었다.

 

- 『아웃 오브 이집트』 중에서

 

 

1905년 이집트에 첫발을 들인 유대인 청년 아이작을 따라 그의 온 집안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이집트로 이주한다. 이들 가족은 중동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유대인 특유의 기질로 기회를 잡고 대를 이어 풍족한 생활을 영위한다. 이집트에서 나고 자란 소년이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대가족과 함께 알렉산드리아의 아파트와 학교, 바다가 있는 만다라의 별장을 오가며 인종과 언어, 사상과 종교를 넘어선 다양한 경험 속에서 성장하는 이야기로 결국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전 재산을 빼앗기고 이집트를 떠나기까지의 기억을 담고 있다.


 

"결국은 항상 모래가 이긴다고? 지금 장난해요, 빌리?" 플로라는 조롱하듯 말을 던지고 발코니로 나갔다. 그리고 또 담뱃불을 붙였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녀는 역시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는 에스더의 아들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비웃었다.

 

"결국은 항상 모래가 이긴다." 빌리는 놀라울 정도로 힘을 주어 다시 말했다. (중략) 이제 빌리가 늘 하는 그 말이 나올 차례였다. 그 말은 손가락을 푸는 피아니스트나 목을 가다듬는 배우처럼 오랜 기다림 끝에 무대로 나갈 준비를 했다. 자신감으로 반짝이는 눈빛과 아치를 이루는 등,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의 떨림으로 시작하여 점점 높아지다 완벽한 높이에 이르렀다. "우린 전에도 기다린 적이 있고 이번에도 기다릴 거야.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오천 살 먹은 유대인이니까. 그래, 안 그래?"

 

- 『아웃 오브 이집트』 중에서

 

 

사실, 작가의 어떠한 작품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회고록을 읽기란 굉장히 어려웠다. 문체도 배경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작가의 어릴 적 기억을 한 번에 읽어 내려니 머리가 아팠다. 무엇보다 불안한 세계정세에서 유대인의 디아스포라는 책 읽기에 제동을 걸었다.


아직도 완벽히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통해 흩어진 사람들의 공동체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불안정한 시대 속 독일이 이집트까지 쳐들어와 자신들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결국은 항상 모래가 이긴다는 대답에서 어쩌면 그들은 모래와 같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불면 본래 자리에서 날아가 바람이 멈추면 옮겨진 위치로 가서 내려앉는 모래 같았다.


어느 곳으로 가든 정착해 생활하면서 타자로서 집단, 사회, 상류층에 편입되기 위해 여러 일을 하며 결국에는 그 자리에 오르는 모습, 그리고 또다시 몰락해 이동하는 책의 등장인물들과 유사했다. 자연히 잘게 부스러진 모래는 하나의 돌 부스러기지만 흩어져있다. 한 곳에서 나왔지만 바람에 쓸려 여기저기 따로 떨어졌다. 그러나 사방으로 퍼진 모래 알갱이들은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다.


 

"이 책은 사랑했던 장소와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애정 가득한 회고록이자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연대기다." - [워싱턴 타임스]


"이 우아한 회고록은 과거의 향수로 가득 차 있다. 그 시절 모든 냄새와 소리까지도." - [뉴 리퍼블릭] 


"실제로 작가는 이집트에서 추방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기억은 이집트를 떠나지 않았고, 이집트 또한 그를 떠나지 않았다." -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이 책은 과거의 향수와 사랑했던 여름 바닷가, 햇살을 머금은 모래언덕과 오래된 야자수, 북적거리는 도시 그리고 그 시절을 함께 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어린 시절의 애틋한 기억이었다. 그리고 아주 선명하고 생생한 냄새와 촉감의 기억이었으며 숭고한 언어로 묘사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바로 어제의 일을, 아니 몇 시간 전에 겪었던 일을 보는 것만큼이나 자세한 설명에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록 소년은 이집트를 떠났지만 기억은 영원히 그곳에 머물고 있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서로 얽힌 그 시절의 아름답고 애틋한 추억이 그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회고록을 통해 한 사람이 나고 자란, 지금은 사라진 영원하고 무한한 세상이 기억을 통해 재탄생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다.

 

 

[문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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