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의 시간, 너의 시간 - 세븐씬

'우리'에서 너와 나로 바뀌는 순간들
글 입력 2021.10.2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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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멀리 멀리 도망간 공주와 왕자는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옛날 동화들의 엔딩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꼭 어디로 도망간다. 도망가서 그들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소식만 전해주고 끝을 맺는다. 어떤 집에서 살았는지,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아이를 낳았는지 등의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행복하게 살 것'이라 얘기한다.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찾았으니 어쩌면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하면서 말이다.

 

애석하지만, 그 어떤 동화도 그들의 뒷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그때부터 그들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인데 말이다. 동화가 뒷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아름답지만 씁쓸한 동화의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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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는 현실에 없을 법한 이야기를 그린다. 사람들의 이상을 담는 역할을 하고, 우리 세계에서는 보지 못할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는 것에 치중한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현실도 충분히 지치고 힘든데, 동화에서까지 힘든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동화를 보는 우리들은 동회에서만큼은 주인공들이 영원히 행복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는 아름다운 엔딩을 꿈꾼다. 학창시절에는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는 엔딩을, 대학생때는 좋은 취업 자리를 구하는 엔딩을, 직장인이 되면 좋은 사람과 결혼하는 엔딩을 바란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 엔딩이 끝이 아니라는 걸. 대학교에 들어간 뒤엔 취업을 걱정을 하고, 취업한 후엔 결혼, 집, 아이 등의 걱정을 한다. 그 모든 것을 갖추고 나서는 또 다른 걱정거리들이 우리를 심란하게 만든다. 우리의 인생엔 영원히 행복한 엔딩이 없다.

 

그나마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때 동화같은 엔딩에 가장 가까운 일은 뭐가 있을까? 결혼이 가장 대표적인 예시 아닐까?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는다는 점, 그 날 하루만큼은 모두가 행복에 가득 차 있다는 점, 두근거림과 설렘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보면 결혼이야말로 기존 동화의 엔딩에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을 테다.

 

우리의 예상은 딱 거기까지다. '결혼'의 뒤에 마침표를 찍고 싶어하지, 쉼표를 찍고 싶어하지 않는다. '결혼하는 것'까지만 주로 행복할 뿐, 그 이후의 삶은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듯, 결혼 또한 행복한 순간이 오래 지속되지 않음을 인지한다. 결혼 이후의 삶으로도 충분히 머리 아픈데, 그게 '이혼'으로 이어진다면?

 

..더욱더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혼, 어쩌면 누군가에겐 새로운 시작이었을 그 순간


 

연극 <세븐씬>은 이혼 이후의 삶을 조명한다. 여타 이야기들과 다르게 이혼이 출발점이다.

 

이혼은 사실 거의 끝에 가깝다. 이혼을 하는 것은 합쳐졌던 하나의 세계가 다시 둘로 갈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분열, 갈라짐, 분리는 보통 우리에게 불안한 요소다. 어릴적 부모로부터 떨어져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며 우리는 불안을 처음 느끼게 되고 나를 지탱해주는 학교라는 안전망에서 벗어남으로써 또 다른 불안을 느끼게 된다. 홀로서기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항상 불안을 겪으며 이혼 또한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불안의 시작이 된다.

 

하나였던 우리가 남이 되는 일. 그 전엔 겪은 적 없던 불안을 겪으며 그들은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다.

 

그들은 해야할 일들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해결해 나간다. 일을 하고 친구와 만나고 여행을 떠나기도 하며 곁에 남은 다른 사람을 돌보는 데에 최선을 다한다. 그들이 이혼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연극을 본다면 그냥 평범한 일상물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각자의 일생을 보내며 그로부터 기인한 웃음으로 하루를 채운다.

 

그렇게 10년, 20년, 30년이 지나는 동안 그들의 딸만이 서로의 시간을 넘나들며 둘 사이의 공간을 왔다갔다 한다. 딸이 어른으로 성장하고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은 긴 시간 동안 그들의 시간은 교차되지 않는다. 주어진 자신의 시간을 살 뿐이다.

 

연극이 끝날 때 그들은 서로를 마주본다. 하고 싶었지만 못내 하지 못한 말들을 한다. 추억이 되어버린 한 사람을 향해 그저 잘 살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들의 눈이 향하는 곳은 상대의 눈이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다. 서로를 바라볼 수 없게 되어버린 그들이 혼자 하는 독백이었던 것이다.

 

*

 

분명 주제는 이혼 이후의 삶이었지만 연극을 보는 내내 불편한 감정보다는 잔잔하고 평온한 감정만 느껴졌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지도, 특정한 교훈을 주지도, 사회적 메시지를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이 좋았던 것은 우리 삶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헤어짐과 이별로 고통받는 시간이 없다고는 얘기할 수 없지만, 그것도 순간일 뿐, 지나고 나면 다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웃는 순간이 도래할 것이다.

 

동화의 엔딩인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순간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는 영원히 행복한 일만 있는 것도, 영원히 불행한 일만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다 순간일 뿐, 우리는 다시 평범한 일상을 누리게 될 테다. <세븐씬>의 두 주인공이 언제 그랬냐는 듯 평범한 시간을 살아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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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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