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개인적 감상의 가치 -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

글 입력 2021.10.17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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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생산되고 모든 게 팔리는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는 동안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아주 빨리 변했고 세상이 변한 만큼 예술도 변했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더는 아름다운 것만을 좇지 않는다. 아름답고 추한 것의 기준도 빠르게 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추한 것의 구분을 더는 하려 들지 않는다. (중략) 아름다움과 추함의 대립은 더는 어떤 미학적 가치도 가지지 않는다.

 

21세기의 현대인들은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별 갈등 없이 선택하고 누리고 즐긴다. 예술은 더 이상 '쓸모없는 아름다움'을 가르키지도 않는다. (중략) 니콜로 부리오의 말처럼 미술 작품은 더 이상 "유토피아적인 상상의 리얼리티를 추구하"지 않고 "실재하는 삶의 방식이나 행위의 모델을 구성"한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 표1.jpg


미술(美術)은 알면 알 수록 그 모습이 계속해서 변화한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들이 마주한 오즈의 모습처럼, 언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찬미의 대상이다가, 어떤 때는 세상에서 가장 낮고 추한 것들의 대변이자 그 자체가 된다.

 

이 책에서 조명하는 미술은 기존의 작품 감상에서 우리가 '응당히 느껴야만 하는'것이라 느꼈던 모든 것을 빗겨간다. 통념이나 고정관념을 벗어나 그림 이면에 담긴 진솔한 이야기, 삶의 단면을 통해 보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시도가 모여 최종적으로 '아름다움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하는 미학적 질문에 닿는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너무 멀리있지 않은 미술'을 깊이있게 다뤄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 꼭 목차를 먼저 보는 편인데, '아빠, 내 이름은 알아?','언니, 집 없어요?','백 년 후엔 이걸 볼 사람도 없을 텐데 왜 모아?'같은 직관적인 목차들은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이 흥미가 생겼다. 시대사조별로 정리되어 있거나, 거창한 개념을 학습시키고자 만들어진 책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읽어야한다는 강박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이 책은 어떠한 사례를 소개할 때, 작품의 도판은 물론이고 설명의 이해를 돕는 영화 등 다른 매체를 개입시키길 전혀 주저하지 않는데, 읽기 쉬운 이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보면 좋은 도슨트 설명을 통해 전시와 작품을 더 잘 이해하게 될 때 느끼는 기분이 찾아온다. 비단 검색이나 공부를 통해 찾을 수 있는 정보 외에도, 한 사람을 거쳐서 전해지는 설명에서만 얻어지는 감상의 여운이다.

 

워낙 다양한 시사점을 건들이다보니 마음에 크게 와닿는 목차도 있었고, '그렇구나'하고 스쳐지나간 목차도 분명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던 부분을 특별히 꼽아 리뷰를 남기고자 한다.

 

 

 

당신은 계속 당신인 거야?


 

많은 미술의 갈래 중에서도 초상화를 좋아하고, 또 초상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 입장으로서 이 대목은 무척 반가웠다. 평면회화에서 더 확장시킨 시야에서 논하고자 사진을 언급하는데, 결론은 '사진에서든 회화에서든' 초상은 자신의 얼굴 그 자체를 대변하는 '존재의 동일성'이라기보다 일종의 페르소나, 혹은 타자화된 이미지가 반영된 초상의 의미에 더 가깝다고 본다. 외면을 재현하는 것 이면에는 내면의 욕망, 개성, 잠재의식 등이 함께 재현된다는 것에 무척 큰 공감을 했다. 결국 여전히 현대에서도 셀피(selfie)가 흥행하고 사람들에게 '얼굴'이 중요한 역할을 갖는 것 또한 얼굴이 '자기 존재의 개별성을 주장할 수 있는 마지막 근거'가 되어주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결론이 매우 좋았다. 저자의 관점에서 서술한 이 대목에 대한 더 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감상을 더 구체화 시키기 위해 마지막 목차인 '생각 근심 속에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가?'의 관점을 빌려오고 싶다. '관람객이 어떤 작품을 보며 느끼는 깊이는 작품의 깊이가 아니라, 많은 경우 그 작품이 촉발한 관람객의 사유의 깊이다.'라는 저자의 말을 인용해 초상에 대한 목차를 다시 조망해보자면 결국 '좋은 초상화'란 한 폭의 그림에 맺힌 상을 통해 그 사람의 내면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 그를 처음 대면한 누군가에게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호소력이 요구될 것이다.

 

저자에게 있어 이미지도 언어도 없이 회화가 할 수 있는 역할 내에서 궁극의 감정고조를 의도하는 것은 역시 추상회화였는데, 이러한 관점은 미술사의 긴 역사에서 당연한 진리처럼 여겨져왔고 현재까지도 여전한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초상화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있는 나 자신을 확인하게 되었는데, 어쩌면 이 책의 제목처럼 나는 초상, 그리고 그 초상에 담긴 각각의 사람들을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기 떄문이리라.

 

'예술이 촉발하는 사유의 고통은, 그 예술의 이해되지 않는 아름다움처럼 때때로 충분히 즐길 만한 고통이기 떄문이다. 무해한 고통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끝 맺음은 결국 이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은 곧 '형용할 수 없을 뿐 감상의 차원에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아름다움'으로 해석되는데, 나에게 있어서 그 대상은 인물과 초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현대미술에 있어 어떤 작품을 보았을 때 그 작품에서 의미의 레이어를 찾거나, 혹은 작품 외적인 부분에서 감상의 폭을 확장해나가는 것은 감상자 본인의 몫이 크다.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반가운 일이며, 21세기에 있어 창작가와 감상자의 역할은 완전한 자유를 획득했다는 반증처럼 느껴진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감정적인 동요가 일어나는 것, 결국 그것이 저자가 전하고 싶었던 시각예술의 본질이 아닐까?

 

그것의 정체를 찾기 위해 우리는 때로 예술이 아닌 또 다른 영역과 연관을 지어보기도 하고, 개인적 기호나 경험, 혹은 학습된 정보들 사이를 누비기도 한다. '아름다움'과 '미학'에 대한 논의는 분명 이성과 감성이 결합된 학문의 총체적인 한 분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이 책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보다 미시적인 각 개인의 기억과 감상에서 시작과 끝을 함께하고 있다. 이 부분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좋은 도슨트'를 만난 기분이 들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오랜 시간 미술을 공부한 내게도 심오한 학술적 설명과 함께 작품을 보는 것은 무척이나 큰 소모감이 드는 일인데, 반면에 깊은 배움에 기반해 사유의 폭이 넓어질 수 있도록 보조하는 누군가의 존재는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싶었다.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결국 '직접 감상하고 생각할 때 느껴지는 그만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행여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정녕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나에게는 진심으로 '아름다운' 것일 수 있으니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핵심은 거대한 담론이나 미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쉽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미시적이고 지극히 사적인 누군가의 감상을 긍정하는 태도 자체의 힘이라 생각한다. 작가에게든 감상자에게든 예술을 대하고 애호하는 것에 있어서 이러한 마음가짐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는데, 예술은 결국 한 사람의 마음에 닿아야만 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미술사적으로 이슈가 될만한 개념적 센세이션이든, 혹은 지극히 사적인 감동이든 간에 예술이 그만의 아름다움과 가치, 의의를 갖고 있는 것과 그것을 작가 본인이 인지하고 관람자들을 설득시키는 것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예술의 본질이다.

 

결국 '아름다움'이란 수많은 이성적, 감성적 관념과 정의의 총체라 할 수 있고, 아무리 이론적으로 정의해두어도 사람마다 이 아름다움을 대하고 느끼는 것은 각기 다르기에 양측의 균형을 잘 맞추어가며 접근하는 것이 좋은 감상이자, 비평이고, 작가의 도리겠다.

 

짧은 칼럼을 묶어놓은 것 같은 이 책이 내게는 무척 깊은 시사점들을 남기고 갔다.

 

어쩐지 책을 다 읽고다니 저자의 예술관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면 어떨까.

 

 

[지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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