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어른의 대화

글 입력 2021.10.16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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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따질 때는 두 가지가 있다. 수치로 표현되는 실물 경기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느끼는 체감 경기다. 같은 숫자라 그런지 나이를 따질 때도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법적으로 성인과 미성년자를 구분하는 만 19세와 지극히 주관적으로 작용하는,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나이다.


분명 법적으로는 성인이 되고서도 무려 6년이 더 지났지만,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아직 어리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나는 한참 어른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상황이 만드는 괴리감 탓에 나는 자신이 어른인지 아직 아이인지 판가름하기가 힘들지만,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 오고 가는 내용들은 이제 내가 마냥 어리지는 않다는 걸 넌지시 알려주기도 한다.

 

 

 

어른의 대화



전에 일했던 매장의 점장 형과 같이 일하던 직원 셋이서 술자리를 가졌다. 어느덧 30대가 되어버린 형과 26살의 동생 둘이지만 서로가 함께 있을 때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형이 보기에 우리는 아직도 아이 같은 동생이었고, 우리가 보는 형의 모습도 별다를 것 없는 동네 친한 형 정도였다. 이제는 5년도 안 지나서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이지만 사람은 그리 쉽게 달라지지 않나 보다.


함께 일하던 시절에는 기껏 해봐야 말도 안 되는 서비스를 요구하던 진성 고객에 대한 험담이나 대학교의 학점, 복학이나 휴학 따위의 다소 가벼운 것들에 관해 떠들 뿐이었다. 이 두 사람이 아니라 주변의 누구를 만나도 대게는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고, 조금 더 나아간다 한들 연애 문제 따위가 더해질 뿐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생활 자체가 학교에 묶여있어 그 외에 다른 일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지금의 우리에게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나누는 대화 속에 좀 더 깊은 주제가 많이 담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인간관계가 빚어낸 심적인 부담감이나 퇴사했을 때의 생활과 일을 할 때의 차이, 혹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갈 것인가를 주고받는다. 돈, 인간관계, 사회생활 등등이 담기기 시작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문득 우리가 이제 막연히 어리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났다는 걸 실감한다. 언제나 어린 상태로 남아있을 것만 같았던 착각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오늘 뭐 하지?`라는 질문이 `앞으로 뭐 하지?`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어른이라는 계단을 한 걸음 더 올라간다. 모든 대화에 가벼운 것보다 무거운 것들이 더 많아졌으나 애써 웃으며 가벼운 척을 할 뿐이다. 때 묻지 않은 깨끗하고 가벼운 웃음과 시답잖은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는 날을 줄여가며 우리는 억지로 어른에 더 가까워진다.

 

 

 

인생; 가성비가 너무 안 좋은 설계



어렸을 때는 그렇게도 어른이 되고 싶었건만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어쩐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더 크다. 100세 인생이라고 하니 못해도 100살은 살 터인데, 법정 성인 나이를 기준으로 우리가 아이로 살 수 있는 건 약 20년이 전부다. 나머지 80년을 어른으로 살아야만 하는데 어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이점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더 억울해진다. 최소한 인생의 2/5 정도는 아이로 살게 해 줘야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가.


어른이라는 신분은 아이보다 많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어렸을 때는 남에게 맡겨뒀던 많은 책임과 의무를 다시 돌려받아야만 한다. 변함없는 내 인생의 첫 소원은 이번 생을 날로 먹는 건데 세상은 자꾸만 나를 방해하고 어른으로서 자신을 책임지고 살아가라 압박한다. 20년의 4배는 되는 80년을 그 책임과 의무를 양어깨에 짊어져야 한다. 약간의 자유와 아주 많은 의무라는 비율은 가성비가 심히 나쁘다.


억울한 심정은 크지만도 남에게 민폐 끼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 하나 분량의 책임과 의무는 다할 수 밖에 없다. 그걸 내려놓는 순간 아주 조금의 자유마저 사라진다. 그 조금의 자유를 알차게 누리면서 마음만은 최대한 오래 아이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 외의 선택지는 없다는 걸 한 살 더 먹을수록 더욱 뼈저리게 느낀다. 이 가성비 나쁜 인생에서 최대한 가성비를 누려야겠다는 생각은 다시 한번 내가 뱉는 모든 말이 이제 어른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일깨워준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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