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측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것에 대하여 - 연극 '세븐 씬'

글 입력 2021.10.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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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영(필자본인촬영)

 

 

지난 9일, 삼일로창고극장에서 프로덕션IDA의 연극 <세븐 씬>을 관람했다.

 

프로덕션IDA는 2017년 공연예술, 영상예술, 순수미술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만든 창작 단체이며, 공간IDA에서 모인 그들은 새로운 시도를 통해 형식과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개성 있는 작품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41회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인 연극 <환희 물집 환상> 작품을 올리기도 했던 단체다.

 

본 글은 연극 <환희 물집 환상>, <인간의 가장 오래된 외부>, <마음의 범죄>, <배소고지 이야기>에 이은 프로덕션IDA의 다섯 번째 작품인 연극 <세븐 씬>의 관람 후기이다. 그전에 먼저, 연극 <세븐 씬>의 공연 장소이기도 한 삼일로창고극장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남겨 본다.

 

 

 

나눴던 서로의 정을 기억합니다 : '삼일로창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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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영(필자본인촬영)

 

 

삼일로창고극장은 서울 중구의 명동성당 뒤편에 위치하였으며, 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소극장이다. 1975년 5월 28일 '에저또창고극장'으로 첫 개관한 삼일로창고극장은 본래 일반 가정집을 극장으로 개조한 곳이었다. 당시 극단 에저또의 방태수 대표와 단원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공사를 진행하여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없는 아레나 무대의 극장을 국내 최초로 탄생시켰다. 이후 서울 백병원 신경정신과 의사인 유석진 박사와 이원경 연출가가 운영을 맡으며 '삼일로창고극장'으로 이름이 바꾸었다. 당시에는 연극뿐만 아니라 마임, 판소리 등의 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공연들이 앞다투어 공연되었고, 따라서 젊은 연극인들의 다양한 예술적 시도가 펼쳐지는 실험의 장이 되기도 했다. 많은 공연예술인들의 배출은 물론(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중견 연출가 한태숙도 1977년 삼이로창고극장을 통해 데뷔했다), 명동 소극장 연극 부흥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1977년 8월 20일 초연된 추송웅 배우의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은 삼일로창고극장의 이름을 알린 대표작으로도 유명하다. 이후에는 개정된 공연법과 재정난으로 인해 수차례 개관과 폐관을 반복하며 결국 2015년에는 폐관되었다.

 

그러나 2017년 서울시에서 삼일로창고극장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하였고, 그로부터 1년 뒤인 2018년에는 공공기관인 서울문화재단의 운영으로 재개관하였다. 1975년 첫 개관 이후, 총 다섯 번의 (재)개관이 이뤄지다가 2015년에 폐관된 이래 3년 만에 이뤄진 쾌거인 것이다. 현재 삼일로창고극장은 1975년 개관 당시의 아레나 무대를 최대한 보존하여 60~80석 규모의 가변형 무대 형태를 띠고 있다. 현재 극장의 운영은 삼일로창고극장의 역사적인 정체성이기도 한 '실험'에 주력하여, 신진 예술가들과 소규모 극단의 지원, 그리고 공연 분야만 안주하지 않는 다채로운 프로그램 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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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영(필자본인촬영)

 

 
1970년 첫 개관부터 2015년 폐관까지 약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총 279편의 올렸던 삼일로창고극장. 과거의 관객들은 극장의 좁은 아레나 무대 주변에 빽빽하게 둘러앉아, 당시 젊은 연극인들의 뜨거운 예술적 탐닉 현장 속에서 함께 웃고 울었을 것이다. 재개관의 소식이 들려왔을 2018년 당시, 많은 이들이 큰 기대를 품고 다시 극장으로 발길을 옮겼던 것에서, 삼일로창고극장은 공연을 올리는 극장의 공간으로써의 역할을 넘어 개개인의 역사인 기억과 경험이 공존하는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삼일로창고극장 입구에 쓰인 '닫혔던 창고의 방을 개방합니다. 멈췄던 시계의 추가 진동합니다. 나눴던 서로의 정을 기억합니다.'의 문구처럼, 코로나 시국이라는 공연예술계의 직격타 속에서도 많은 이들이 극장의 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써 역할을 다하며, 오래도록 창고의 문이 열린 채 유지되길 바라본다.

 

 

 

예측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것에 대하여 : 연극 <세븐 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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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도

 

예측하지 못했던 어떤 사건이 삶의 문을 두드릴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극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결혼 혹은 출산, 투병, 죽음 같은 사건이 삶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혼을 쉽게 예상하지는 않는다. 이 극은 이혼 후 30년에 이르는 긴 시간들을 다룬다. 그 시간 동안 한 여자와 남자의 삶이 흘러간다. 그들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순간 중 여와 남 각각의 일곱 장면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그 장면들을 통해 끝나도 끝나지 않은 것들과 초대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삶에 도착해버린 많은 것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프로덕션IDA


 

시놉시스

 

여자는 이혼을 했다. 남자도 이혼을 했다.

이별은 관계의 맺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얽히고설킨 관계들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데...

남자는 회사 탕비실에 앉아 있다. 동료가 들어와 남자의 고장 난 시계를 지적한다. 남자는 아주 오랫동안 고장 난 시계를 차고 다녔다. 동료는 시간이 틀린 시계는 쓸모가 없다고 말한다. 여자는 예물 시계를 잃어버렸다. 온 집안을 뒤지다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평생 뭘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는 엄마의 이야기에 여자는 소리친다. "내가 잃어버린 게 얼마나 많은데!" 결국 여자는 시계 수리 영수증을 찾아 전화를 건다. 그리고 묻는다. 찾아가지 않는 시계는 어떻게 되는지, 결국 버러지는지. (이하 중략)

 

©=프로덕션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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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세븐 씬> 무대 이미지 (필자본인촬영)

 

 

이 극은 이혼을 한 남자와 여자의 30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자와 여자는 이혼 이후,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둘의 딸인 '채원'도 점차 성장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추정컨대) 이혼을 한 지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을 땐, 여자가 혼수 시계를 잃어버려서 찾는 장면이 나온다. 남자도 쓸모없는 시계라는 동료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고장이 나서 맞지 않는 시계를 꿋꿋이 차고 다닌다. '시계'라는 오브제를 통해서 이혼을 경험한 남자와 여자의 정서를 드러내는 것이다. 다급하게 시계를 찾는 여자의 행동. 잃어버린 것이 많다고 이야기하는 짜증 섞인 여자의 목소리. 그리고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쓸쓸함이 묻어나는 얼굴로 고장 난 시계를 바라보는 남자의 표정. 이를 통해 이혼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이벤트를 경험한 남자와 여자의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이후 시간이 흐르며 삶을 이루는 거대한 테마이기도 한 직업, 가정, 사랑과 결혼, 우정, 죽음, 고독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은, 이혼을 경험한 후 남자와 여자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작품에서는 둘이 아예 분리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묘사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둘은 29년이라는 시간 동안 직접 대면하는 사건이 없었다. (1년 뒤인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둘은 대면하고 공연은 막을 내린다) 그러나 작품은 시공간의 중첩을 통한 연출을 통해, 이혼 이후에도 둘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연극적으로 무대 위에 그려낸다.

 

장면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통화를 하는 장면이 있다. 일반적으로 연극에서 통화 장면을 표현할 때, 무대 위의 두 인물은 어느 정도 물리적인 거리를 가지며, 각자의 공간 안에서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마치 통화하는 것처럼 연기한다. 이를 통해 둘은 물리적으로 각자 다른 장소에 있으며 통화 중이라는 상황이 설명된다. 그러나 연극 <세븐 씬>에서 묘사하는 남자와 여자의 통화 장면에서는 서로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지 않는다. 표현의 클리셰를 부수고, 과감히 서로의 곁을 스쳐 지나가기도, 딸 채원을 통해 물건을 주고받기도 한다. 다만 여기서 지어진 최소한의 '약속'은 서로 시선을 마주하지 않는 것. 이러한 시공간의 중첩을 활용한 장면은 연극 <세븐 씬>에서 다수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딸 채원은 종종 남자와 여자의 삶에 등장하고, 이를 통해 그 둘의 쉽게 끊어지지 않는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남자와 여자는 위에서 이야기한 시공간의 중첩을 통한 연출로 같으면서도, 반면에 아예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로의 다른 삶이 장면마다 교차되면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작품은 인간의 삶을 통째로 무대 위에 올렸다기보다는, 삶에 있어서의 주요 테마들(직업, 가정, 결혼, 죽음 등)에 나눠서 장면이 진행되고, 따라서 삶이라는 거대한 것의 중요한 파편적 사건들을 무대에 올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딸 채원은 이러한 남녀의 파편들마저도 연결 짓는 실과 바늘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둘의 시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는 채원의 모습은 마치 시간여행자 같기도 했다. 순수하고 독특한 관점을 가진 캐릭터로, 극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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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세븐 씬> 무대 이미지 (필자본인촬영)

 

 

또 한 가지 흥미롭게 관람했던 지점은 잘게 부순 나뭇조각들을 활용한 연출이다. 나무 톱밥보다는 굵직해 보이는 나뭇조각들은, 공연 시작 전부터 적지 않은 양들이 무대 위, 그리고 무대와 객석 사이 부분에 이리저리 널려 있었다. 무대가 검은색 덧마루(무대의 바닥을 부분적으로 높여야 할 경우에 쓰는, 일정 규격을 가진 마루 형식의 무대 장치)가 주된 심플한 디자인이었기 때문에, 나뭇조각들이 난잡하거나 지저분해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세련된 극의 분위기를 구성하는 데에 큰 일조를 했다. 등장하는 대·소도구들도 나뭇조각들의 톤에 맞춘 나무 재질이었다. 배우들은 나뭇조각들을 컵에 담아 커피처럼 마시고, 쌓인 나뭇조각들을 파헤쳐 소품을 꺼내고, 일상 속에서 청소를 하듯이 나뭇조각들을 쓸어 담는 연기 등을 통해 끊임없이 장면의 연극적인 재미를 불어넣었다. 이를 통해 장면이 진행되면서 나뭇조각들은 끊임없이 무대에 흔적을 남겼고, 장면이 변화될 땐 남긴 흔적을 굳이 치우거나 하지 않았기에, 그 흔적들은 계속해서 변형되며 무대 위에 존재했다. 거창하지 않은 나뭇조각들이지만 이는 연극의 수행성 역할을 충실히 할뿐더러,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꽤 일조했다.

 

조명 디자인 또한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다. 인물이 무대 위에 등장하면, 그 인물에 집중된 좁은 영역의 조명이 쓰이다가, 이후에 다른 인물이 등장하거나 대사를 통해 장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조명은 확장되어 점차 넓은 영역에 비쳤다. 인물에 집중됐다가 마침내는 공간으로 확장되는 조명 디자인은 매우 감각적이고도 연극 <세븐 씬>과 잘 어울리는 조명 디자인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연극 <세븐 씬>은 견고한 플롯의 큰 줄기를 따라 진행되는 드라마극과는 다른, 어찌 보면 분절된 씬들의 연속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작품을 관람할 때 눈여겨보면 좋을 지점들은, 각기 다른 장면에 어떤 방식으로 연속성을 부여하는가이다. 그 '연속성'이란 연출의 콘셉트 내지는 작품의 콘셉트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담아낼 것이며, 따라서 작품을 해석하는 중요한 단초로써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분된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 그 장면과 장면 사이에 일일이 많은 암전(연극에서 무대를 어둡게 한 상태에서 무대 장치나 장면을 바꾸는 일)을 썼다면 너무 뻔한 장면의 구분이 되었을 테고, 관객들 또한 쉽게 그 규칙을 읽어내면서 진부한 작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러한 고민들을 연극 <세븐 씬>의 창작진들도 거듭하였는지, 연극 <세븐 씬>에서는 조명 디자인을 통해 감각적이고도 세련된 장면 전환 방식을 택했다.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아예 모든 조명을 off 한 암전이 단 한 번 이뤄졌음에도) 장면의 전환과 시공간의 변화가 잘 전달되었던, 매우 탁월했던 조명 디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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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세븐 씬> 커튼콜 이미지 (필자본인촬영)

 

 

정리하자면, 연극 <세븐 씬>에서는 시공간의 불분명한 구분과 중첩을 활용한 연출, 그리고 무대 위 나뭇조각들을 통해 끊임없이 무대에 변형되는 흔적을 남긴다. 이는 각각 거부할 수 없는 인연,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을 상징하는 듯하다. 여기에 더해진 배우들의 숙련된 듯한 자연스러운 연기와 감각적인 조명 디자인, 여러 각도로 무대 위 배우들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열어놓은 양면 객석은 연극 <세븐 씬>만의 고유한 작품적 색깔을 확립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연극 <세븐 씬>은 이야기한다. 예측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일들이 모이고 모여서, 결국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그러니 구태여 앞서서 겁을 낼 필요는 없다고.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함께 공연을 본 지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연극 <세븐 씬>처럼, 요즘 공연되는 연극 작품들은 인간 삶에 대한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 것 같다고. 당연하리만큼 변하지 않고 지속될 것만 같았던 일상이 코로나로 인해 균열이 일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연극 작품들을 통해 사람들이 일상으로의 회귀 욕구를 토닥이며 위로받으려고 하는 것 같다며 씁쓸함을 삼켰다.

 

그도 그럴 것이, 연극은 그 공간, 그 시간에서 이뤄지는 분야기 때문에 동시대적인 특징을 많이 담아내기도 한다. 공연되는 연극의 흐름들을 살펴보면, 시대상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너도나도 거리로 나가 촛불을 꺼내 들었을 땐 얼마나 풍자적이고 저항적인 연극들이 많이 공연되었는지, 아이들이 탄 배가 가라앉아 온 국민이 깊은 슬픔에 잠겼을 땐 얼마나 암울하고 날카로운 질문이 담긴 연극들이 많이 공연되었는지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연극 <세븐 씬>에서 이혼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을 경험한 이후를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누가 이 시국을 예측했을까. 누가 이러한 일상의 변화를 예측했을까. '예측하지 못했던 어떤 사건이 삶의 문을 두드릴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연극 <세븐 씬>. 초대하지 않았지만 어느덧 우리의 삶에 방문한 많은 것들에 대한 질문들을 녹여낸 작품이기에, 관람 후엔 왠지 모르게 암울하기만 했던 일상의 변화가 조금은 위로된 채로 극장 밖을 나설 수 있었다.

 

 

참고 자료 출처

[월간 객석] 소극장에서 만나는 공공의 실험, 삼일로창고극장 재개관

(이정은 기자, 20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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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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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도미
    • 극장을 둘러보고 연극 한 편을 보고 난 느낌입니다.
      위로가 되는 글  감사합니다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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