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다.리' 세 번째 이야기 : '다름'을 우리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10.14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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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 <코다>(CODA) (감독 션 헤이더)의 개봉 소식을 듣자마자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원작인 <미라클 벨리에> (원제 La Famille Belier, 2015)를 인상 깊게 보기도 했고 리메이크 과정에서 <라라랜드>(원제 La La Land, 2016)의 음악 감독이 참여했다는 소식까지 들은 이상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아무래도 예전만큼 영화관을 자주 들르지 않았던 만큼 어느 정도 걱정도 되긴 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흘러나오는 주인공의 노래를 조금이라도 더 듣기 위해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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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인 ‘코다’는 농인 부모를 둔 청인 자녀(CODA, Children Of Deaf Adult)를 이르는 말로 가족 중 유일한 청인인 주인공 루비를 가리킨다. 영화는 어린 나이임에도 소리를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가족들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주인공이 오래도록 간직해왔던 음악의 꿈을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초반부까지만 하더라도 영화는 어디까지나 루비의 입장에 서서 그의 생각과 감정을 좇아 움직인다. 루비는 음악은 ‘함께’ 공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단정 지으며 자신의 꿈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심술이 나면서도 자신의 도움 없이는 일상적인 활동도 해낼 수 없는 그들을 위해 새벽마다 일을 나서는 한편 일을 마무리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른 학교에서는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농인 가족들을 두었다는 이유로 놀림을 당하는 것이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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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곁에서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힘이 되어주는 친구 거티가 있었지만 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변 인물들도 처음부터 루비의 기댈 곳이 되어준 것은 아니었다. 루비가 자신의 꿈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게끔 합창부로 이끌어주고 가장 많이 의지하고자 했던 친구(마일스)도 다른 친구들에게 루비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루비를 실망하게 했고 루비의 재능을 알아보며 그에게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고자 했던 선생님(미스터 V) 역시 자신만의 확고한 교육관과 욕심에 애꿎은 루비를 나무랄 뿐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집이나 학교에서 ‘붕 떠 있고’, ‘불안정한’ 그래서 마냥 ‘안타까워’ 보일 수도 있는 루비의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관객들에게 동정이나 연민 같은 것들을 부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루비의 편이 되어주지 못했던 이들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자아내지도 않는다. 그 대신 영화는 전반적으로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그간 서로에 대한 ‘오해’로 얽혀있던 인물들이 진정한 의미의 ‘이해’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슬며시 관객들을 ‘초대’할 뿐이다.

 

그와 함께, 중반부를 기점으로 영화는 서서히 다른 각도로 옮겨가며 초반부 내내 말하지 못했던, 우리가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전하고자 한다. 누구보다 딸을 아끼면서도 그에게 가장 많이 의지해왔던 만큼 쉽사리 놓아주지 못했던 엄마 재키는 루비에게 자신의 속사정을 털어놓게 되고 현실적인 문제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고민만 하기에 바빴던 아빠 프랭크는 노래를 부를 때 가장 행복해하는 딸의 모습을 본 이후 무심하게 딸의 노래를 더 듣고 싶다고 말한다. 짓궂은 장난을 칠 정도로 가까웠지만 동생 없이도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일부러 그를 멀리하던 오빠 레오도 스스로 느껴왔던 부담감과 열등감을 내려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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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영화의 중후반부쯤 등장하는 루비의 가을 학예회 장면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노래가 절정으로 치달을 즈음 러닝타임 내내 스크린을 꽉 채웠던 모든 사운드가 순식간에 음소거되면서 무대에 서 있는 루비와 그를 지켜보던 가족들의 모습이 교차 연출되는데 이를 통해 영화는 마침내 서로를 헤아릴 수 있게 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작고 소소한 그러나 결코 무의미하지 않은 ‘변화’를 전하는 한편 나아가, 그저 ‘관찰자’에 불과했던 관객들까지 그 변화의 순간순간에 동참할 수 있게끔 유도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오디션장에서 루비는 그만 긴장감에 실수를 연발하고 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같이 오디션을 준비해왔던 마일스와 미스터 V, 그리고 멀리서 그를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가족들의 모습에 안정을 되찾게 된다. 자신에게 끝없는 믿음을 보내준 존재들 앞에서 비로소 ‘온몸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 루비의 맑고도 밝은 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희망이 가득 담긴 루비의 노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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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영화를 두고 단순히 가족과 성장, 음악이 어우러진 그래서 인물에 대한 궁금증도, 서사에 대한 기대감도 잘 생기지 않는 ‘그저 그런’ 영화였다는 반응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을 가까이에서 혹은 멀리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더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내용들을 ‘충분히’ 곱씹어볼 수 있게끔 만들었다. “장애-비장애”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미처 몰랐던 혹은 모른 척해왔던 인물들이 뒤늦게나마 서로의 진심을 깨닫고 이에 대해 각자만의 방식으로 사과하고 반성하며 결과적으로 극복해 내는 그런 이야기를 우리가 경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우리는 부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우리는 진짜 사람이 필요합니다.


-버나 마이어스, <우리의 편견을 극복하는 방법은?> (2014년 TED에서)

 

다양성 존중 운동가이자 넷플릭스(NETFLIX)의 포용성 전략 담당 부사장을 맡고 있는 버나 마이어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공정하고 균형감 있는 시각을 가진 그런 ‘좋은 사람’이라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연기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수많은 차별과 편견, 선입견들로 물들어버렸음에도 아예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자신만은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름’이라는 가치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어떠한 이유도, 필요조건도 없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똑같은 것’은 없다. ‘똑같다거나’ 혹은 ‘똑같아야 한다고’ 여기는 우리의 잘못된 인식만이 남아 우리를 아프게 하고 사회를 병들게 할 뿐이다. 지금 당장 느껴지는 불편함과 그러한 불편함을 온당하고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불온한 태도로부터 벗어나 이제는 우리와 다른 것을 ‘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넘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움직일 시간이다. 마치 거티와 미스터 V가 서투르게나마 수어를 연습하듯, 루비 가족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듯, 그렇게 잔잔하지만 계속해서 퍼져나가며 결국 기억에 남는 어떤 잔물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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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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