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봄이여, 부디 오지 말아다오 - 2021 서울오페라페스티벌 '라보엠'

글 입력 2021.10.1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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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2021서울오페라페스티벌-최종.jpg

 

 

오페라는 그 이름부터 왠지 어렵다. 공연의 한 장르를 이르는 명칭보다 디저트 이름으로 더 친숙할 정도면 말 다했다. 한번도 관람해본 적 없는 것은 또 아니다. 다만 관람 당시에 초등학생이었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일지도. 무엇을 봤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꿈뻑꿈뻑 감겨오는 눈과 내 마음대로 흔들리는 고개를 애써 고정시키려 노력했던 건 확실하다. 어린 눈으로는 인형 옷 같은 것들을 걸친 사람들이 멀리에서 무대를 오가는데 당최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뿐더러,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의 향연이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오페라 관람에 대한 갈망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언젠가 교회에 성악을 전공하시는 형제님이 찾아오셨고, 그분의 노래를 듣는 순간 아 이 세계는 또 다른 클래스가 있구나 하고 무릎을 쳤다. 가슴을 웅장하게 울리는 목소리와 우아하면서도 힘있게 이어지는 선율. 연극과 뮤지컬은 주기적으로 관람하는 편이었으나 오페라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때 이후로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다. 뭐든지 경험해보면 달라지는가보다.

 

그리하여 현재, 2021년 가을. 그러나 결국 아직까지 오페라를 보지 못했다.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그 이전에는 왠지 모를 부담감과 비용의 장벽으로 시도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때마침 강동아트센터에서 약 열흘간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을 진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021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은 평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오페라 전막 공연은 물론 교육 프로그램과 갈라 콘서트, 국립오페라단과 협업 공연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의 신선섭 예술총감독은 이번 페스티벌은 단순한 오페라 페스티벌 이상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2021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은 코로나바이러스-19의 여파로 침체된 문화예술계에 상생과 활력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올해 축제를 통해 오페라가 관객들에게 작게나마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은 오페라의 대중화를 넘어 많은 젊은 음악인들의 활로를 열고 축제의 명맥을 이어나가 대한민국의 대표 문화축제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후략)"

 


아마도 많은 이들이 오페라를 접하기 어려운 이유는 비용 문제나 접할 기회 자체가 많지 않음을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막연한 부담감'이 아닐까 싶다. 전문 지식도 없고 음악에 민감하지도 않은데 내가 오패라를 봐도 될까? 클래식도 잘 모르는데 오페라를 들으면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주저함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것이다. 일단 가보자고! 라고 호전적으로 외치기도 어렵다. 관람한 후 뭔가 디테일한 감상과 분석을 할 수 있어야 할 듯 한데 그건 또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은 이런 이들에게 딱 알맞다.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전막 공연을 감상할 수 있으며, 오페라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돕는 교육 프로그램이 편성돼 입문자에게 편안히 다가간다. 국립오페라단과의 협업은 말할 것도 없다. 고퀄리티의 무대를, 체계적인 구성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형태로 만나볼 수 있는 경험.

 

결과적으로 페스티벌 기간 동안 <라보엠>과 <허왕후>를 보고 기분 좋게 돌아왔다. 오페라 최고다. 단 전문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강박이 아니라, 무대의 매 순간을 깊이 보고 듣고 즐긴다고 생각하는 마인드로 접근할 것! 그리고 스토리 라인의 개연성에 집착하지 말고 파트마다의 감정선에 귀기울여 볼 것! (특히 정통 오페라극은 아무래도 시대의 변화를 감안하고 봐야 한다)

 

올해가 6회째라니 내년엔 7회를 맞이하겠지. 벌써 내년의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이 기대된다. 우선 주섬주섬 <라보엠>에 대한 가볍고 짧은 감상을 옮겨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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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초청 오페라 <라보엠>


 

서울오페라페스티벌 조직위원회는 지난겨울 많은 이들의 관심과 찬사를 받은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라 보엠>을 초청해 아름다운 선율의 푸치니 음악의 감동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했다.

 

꿈과 사랑을 갈망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그린 오페라 <라보엠>은 청춘의 활기, 설레는 사랑, 가슴 시린 이별까지 더해져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현실적인 공감을 끌어내는 작품이다. 끊임없이 가슴을 울리는 선율의 아리아 '그대의 찬 손(Che gelida manina)', '내 이름은 미미(Mi chiamano Mimi)'등 유명하고 주옥같은 대목들이 관객을 맞이했다.

 

더욱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제작진과 출연진으로 구성되어 수준 높은 무대를 펼쳤다. 지휘 박준성, 연출 김숙영을 필두로 미미 역에 소프라노 서선영, 권은주, 테너 박지민, 최원휘, 무제타 역에 소프라노 김유진, 마르첼로 역에 바리톤 김기훈 등이 출연했다.

 

 

 

감정을 끌어올리는 아리아


 

시작되고 초반에 당황했던 것은 서사와 감정이 급전개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노랫말로 대사와 감정을 전달하는 극 구성 자체가 다소 낯설었다. 오페라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해 낯설어하던 자신을 단숨에 편안하게 만들어준 것은 아리아의 시작이었다.

 

빈 집에 촛불을 얻으러 온 미미에게 불꽃 같은 플러팅(...)을 시도하던 로돌포가 불편하던 와중 로돌포의 '그대의 찬 손'을 시작하자 떨떠름하던 마음이 싹 내려갔다. 모든 감정선을 납득하게 만드는 호소력 짙은 음색이었다. 이래서 오페라를 보러 오는구나, 하고 입을 벌리며 듣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로돌포를 향한 미미의 답가가 이어졌다. '내 이름은 미미'를 부르며 자신을 소개한 것이다. 상냥하고 사랑스러운 미미의 모습을 너무도 잘 담아낸 노래에 고개를 끄덕이며 얼떨결에 두 사람을 응원하게 됐던 듯.

 

3막에서는 여느 연인들이 그렇듯, 불같이 타올랐던 로돌포와 미미의 마음이 이제는 서로에게 이별을 고한다. 단순히 손바닥 뒤집듯 감정이 변해서는 아니었다. 생계는 빠듯한 가운데 건강이 점차 악화되는 미미를 보며 로돌포가 절망감을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이별이 찾아오는가 싶었던 순간 그들은 다시 노래한다. 이번 겨울까지는 같이 보내자고, 이번 겨울까지는 함께 사랑하자고. 따스한 봄이 오고 추위와 외로움에 고통받지 않을 때면 서로 헤어지자고. 그 마음이 감히 짐작되지 않아, 절절히 울려퍼지는 아리아를 들으며 먹먹해진 마음을 조용히 다스릴 수밖에 없었다. 겨울이 끝나지 않길 바랐을까, 봄이 어서 찾아오길 바랐을까.

 

 

 

크리스마스를 사랑하는 이라면


 

듣기로는 12월은 오페라 <라보엠>의 계절이라고 했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극중 배경이 겨울, 그리고 주인공들이 운명적으로 만나는 시기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12월이 <라보엠>의 계절임을 인정하고 말았는데. 2막을 보고 나서였다.

 

무대 연출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나 그 기대감을 완전히 전복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프랑스의 거리 풍경이 너무도 아기자기하고 포근해서 가슴이 뛰었다. 소박한 멋이 있는 이층 건물 여러개가 줄지어 있고, 그 사이마다 크리스마스 대목을 맞이한 상인들, 구석구석 구경하고 다니는 어린이들, 그리고 저마다의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까지. 크리스마스의 설렘을 가득한 표정을 보니 아직 가을임에도 벌써부터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무대를 가득 채운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정말 그 광경을 보고 들으면서 완전히 힐링했다. 주연들의 아리아도 인상적이었지만 아이들의 맑고 가벼우면서도 간질간질한 합창이 계속 가슴을 들뜨게 했다. 정말로 가장 좋았던 막. 유럽 풍으로 꾸민 거대한 스노우볼 안에 내가 들어가 곳곳을 기웃대는 듯한 기분이 아직도 선명하다.

 

 

 

오페라에 깃든 시대의 초상


 

푸치니의 <라보엠>은 앙리 뮈르제의 소설 <보헤미안들의 인생 풍경>을 바탕으로 작곡된 오페라다. 극을 관람하다보면 가난한 예술가들이 뭉친 로돌포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당대 파리의 풍경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극중 로돌포는 난방을 위해 소설 원고를 스토브에 넣는가 하면, 철학가 콜리네는 책을 전당포에 맡겨 난방비를 구하려 시도한다. 당대 예술가들의 험난한 생활고를 유머러스하게 연출하며 암시하는 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한 마을에서는 거리를 가로지르는 군악대가 등장해 시대상을 다시 은근히 드러내는 등 극의 입체감을 높인다.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하려 한건 사실이나 확실히 사전 정보를 주워담아가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 다음에 <라보엠>을 한번 더 만나게 된다면 그 때는 조금 더 공부해봐도 좋겠다고, 고개를 주억거려본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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