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창백한 말 [만화]

다음웹툰의 수작 <창백한 말>을 되짚어보다
글 입력 2021.10.12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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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 다음

장르 : 판타지, 순정

연재 기간 : 2011.09.15 ~ 2020.11.25

 

 

 

창백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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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프랑스 한 시골 마을에 마녀가 다시 나타났다는 소문이 돈다. 십여 년 전, 마을 사람들은 사람과 짐승을 마구 잡아먹는 마녀에게 고통받은 끔찍한 기억을 안고 있다. 그녀에게 희생 당했던 사람들 중 일부가 “사냥꾼”으로 뭉쳐 마녀를 죽이고 일상으로 돌아온 듯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마녀에게 입은 상처가 너무 큰 탓인지, 마녀가 존재할 것이라는 위협감은 계속해서 그들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던 중, 마을의 한 소녀 로즈 뒤프레의 엄마 레아가 바로 그 마녀라는 모함을 당하게 되고, 로즈는 엄마와 함께 지내는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고만 싶다.

 

예민하고 소심했지만 순수한 로즈와 그런 그녀의 곁에 머물며 항상 토닥여주던 소년 피터 그랑. 그들이 시골 동네에서 보내던 소박한 삶은 마녀를 찾으러 왔다는 마녀의 시종 레몬의 등장과 함께 무너지고, 창백한 말의 끝없는 반전과 충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름다움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을까


 

주인공 로즈는 어떤 사람이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여성이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녀의 마음이나 생각은 타인들에 의해 왜곡되기 일쑤였다.

 

“그 얼굴로 바람을 피웠겠지", “네가 꼬셨겠지” “자고 싶어서 나한테 그런 게 아니야?”

 

로즈가 예쁘다는 이유로 원치 않은 호감을 먼저 주고서는, 대가를 바라는 남자들의 폭력을 받았다. 외모로 그녀를 사랑한 사람들은 외모로 그녀를 죽였다. 마음도 그녀의 인생도 목숨도 죽였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계속해서 같은 존재로 태어나는 일을 반복하는 로즈는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조력자 레몬과 함께 하지만 인간의 행위를 벗어나 인간과 짐승 그 사이의 존재. 사람들에게 “마녀”라 불리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녀의 반복된 삶은 애초에 레몬의 이기적이고 잘못된 바람으로 시작됐다. 멋대로 로즈를 아름답고 완벽한 존재로 바라보고, 신의 존재로 만들고자 한 지독한 바람이 그녀를 불완전한 불사의 존재로 있게 했다. 로즈의 삶은 또 타인의 삐뚤어진 감정으로 송두리째 뒤바뀐 것이다. 그렇게 100년도 안 되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평범하게 가족, 친구를 만들고 싶었던 로즈의 인간다운 삶은 무너졌다.

 

작품의 중후반부로 갈수록 로즈를 이해할 수 없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점점 늘어났다. 주인공이라 할지 언정 그녀의 행보를 납득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주인공이라 함은 응당 “선”을 실현하고 정의로운 존재여야 하니까. 실제로 로즈의 행동들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적도 많았고, 의도와는 다르게 결국 사람들을 괴롭힌 마녀 임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로즈의 인생이 오로지 그녀의 선택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름다움을 취하는 것을 권력으로 생각한 인간들에게 상처받은 작고 여린 영혼의 시작에 대해 우리는 지금의 현실을 빗대어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마냥 착한 이도, 마냥 악한 이도 없었다. 불완전한 존재들이 함께 있을 뿐


 

영원의 저주를 받아 살아가는 로즈. 형을 죽인 여자를 사랑해버린 페터. 그녀를 사랑한 마음은 진심이었을지 몰라도 지독히 엇나가버린 레몬, 마녀에게 먹혀 사람들을 먹고사는 괴물이 되어버린 쿼리들. 처음부터 악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세상에 손가락질을 받으며 외면당하거나, 사악한 존재로 여겨져 죽음의 위협을 당하거나, 양심이 없는 사람으로 인생을 살아갔다. 서로의 인생에 약인지 독인지 모를 관계 속에서 너무나 많은 불행과 사건이 일어나고, 이를 바라보는 독자들의 마음까지 어지럽고 심란하게 만든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극한의 불행에 부딪힌 인물들을 보며 분노와 안쓰러움이 동시에 드는 것은 모두 너무나 인간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밑바닥까지 꺼내 보여 불쾌감이 들 때도 있지만, 그것이 동시에 내 안에도 존재하는 것이기에 더더욱 안타까워하게 된다.

 

화려하면서도 동시에 음울한 기운을 내뿜는 화풍 또한 이 심란한 감정을 더욱 고조시킨다. 인간의 삶은 너무나도 찬란하고 아름답지만,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는 때론 이곳이 시궁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암울할 때가 있다. 그런 인생의 빛과 어둠을 작가는 특유의 색채 감각으로 유려하게 표현해 아슬아슬한 감정을 들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페터 그랑은 이 이야기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등장인물이다. 어린 시절 멋모르고 로즈와 우정과 사랑을 나눴던 동네 소년 페터는 마녀로서의 자각을 한 로즈의 폭주 사건으로 인해 형을 잃게 된다. 결국 페터 역시 마녀를 잡는 단체 "사냥꾼"에 들어가 로즈를 추격하고, 끝끝내 로즈를 자기 손으로 죽이며 복수에 성공한다. 하지만 영원의 저주를 받은 로즈가 다시 태어나고, 로즈의 삶이 어째서 이렇게 흘러가게 되었는지 이야기의 전말을 알게 된 페터는 그녀를 향한 동정과 공감,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숨길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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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는 창백한 말 세계 속에서 인간이 가진 순수함과 곧은 성질을 대표하는 존재다. 사람을 좋아하는 정도 지녔고 가족을 사랑하며 슬픔과 기쁨을 나눌 줄 알며, 자신의 신념을 꿋꿋이 지켜나가려고 한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의 주변에 나타난 신과 괴물 사이의 존재는 그의 삶을 깨부숴 버렸다.

 

자신의 형을 죽인 원수이지만 동시에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상처받은 로즈에게서 분노와 사랑의 감정을 모두 느끼는 페터는 결국 정신이상까지 나타나며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지만, 결국 그는 신들이 장난치는 운명 속에서 보란 듯이 자신의 선택을 이어나간다.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넝마가 되었더라도, 페터는 인간이기에 로즈의 운명을 함께 개척해나간다. 비인간적인 존재 로즈도, 강력한 마법의 힘을 지닌 레몬도 하지 못한 일을 나약한 인간이 이끌어낸 이 이야기의 끝에서 독자들은 복잡 미묘한 감정을 얻게 된다.

 

 

 

거대 팬덤의 응원과 비판 속에서 막을 내렸던 창백한 말


 

추혜연 작가의 창백한 말은 대한민국 웹툰들 중 손에 꼽을 독보적인 퀄리티의 작화로 명성을 쌓았다. 배경부터 효과, 인물까지 각각의 장면이 모두 일러스트 작품 한 페이지 같았던 그림이었기에 “작가님 무리하지 마세요”라는 댓글이 자주 베댓으로 올라오기도 했다. 그림체를 넘어서는 스토리까지 갖춘 작품에 추종자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작품을 애정 하는 거대 팬덤이 형성된 작품이었다. 하지만 잦은 휴재와 지각, 기타 논란 때문에 구설수에 자주 오르기도 해 연재 말기에는 독자들에게 “애증의 작품”으로 여겨지기도 하다.

 

결말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페터가 끝까지 로즈를 선택한 것이 스토리 전개 상 납득할 수 없다거나, 그동안에 던져놓은 떡밥이 많은데 다 회수하지 않고 모호하게 막을 내렸다는 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창백한 말이 한국 웹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명작이라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20대 초반, 첫 연재작을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끌며 거대한 세계관을 만들어낸 작가의 능력에 감탄을 보내며 다음엔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기대해 본다.

 

 

[이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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