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머스키 마일드',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향기

글 입력 2021.10.0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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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이 차단된 세상에서 살아간 지 어언 20개월째.

 

향수를 파는 많은 매장에서는 시향을 금지하거나 시향지에 여러 번 향수를 뿌려 마스크 위로 시향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오히려 향수, 디퓨저의 인기가 부쩍 높아졌다. 일 년에 한 두 번 향수를 살까 말까 하던 나도 니치 향수 브랜드에 관심을 두고 시향지를 택배로 받아보기도 했다.

 

최근 학생 신분을 벗게 되었고, 얼마 전부터는 사회에 발을 딛게 되어 대중적인 향 대신 나를 개성있게 표현하는 향을 찾고 싶어졌던 것이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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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향수를 뿌리는 순간의 만족감이나 향의 계절감 정도만 고려했는데, 누군가가 나를 향기로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했다. 간간이 시향하며 사 모았던 향수를 확인해보니 대부분 베이스 노트가 머스크 계열이었다.

 

그래서 생소한 브랜드라도 머스크가 들어간다면 시향해보고 싶었다. 또 비누향이 나는 향수는 지속력이 약한 편이라 오드 코롱이나 오드 뚜왈렛보다는 지속력이 강한 오드 퍼퓸에 관심이 있었다. 펄스테이의 ‘머스키 마일드’는 그런 기준에 맞는 향수였다.


 

“지난 겨울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퇴근길에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과 구름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향수입니다. 해는 어느덧 넘어가 하늘은 이미 붉게 물들고 있었고, 그런 하늘 빛을 받아 오묘한 주황빛을 내는 구름들이 너무나 포근하면서도 따뜻해서 그냥 푹 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머스키 마일드 제품 설명 중

 


TOP:  mandarin, black currant - ‘머스키 마일드’의 첫 향은 상큼한 향이었다. 시트러스 계열의 향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데, 탑 노트에 블랙커런트 향이 같이 있어서인지 부담스럽지 않게 부드러움으로 마무리되는 상큼함이었다. 노을빛으로 물든 주황빛 구름이 곧바로 떠올랐다. 쌉싸름하면서도 묵직한 가을의 과일이 떠오르기도 했다.

 

MIDDLE: orange flower, jasmine, tuberose - 상큼한 향이 지나간 자리에는 조금 더 무겁고 성숙한 꽃향기가 찾아왔다. 푹신푹신한 침구가 떠올랐다. 실제로 향수를 받자마자 베개에 뿌려두고 30분 정도 지나 침대에 누웠는데, 편안함과 따뜻함이 느껴져서 평소보다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다.

 

코로나 이후 향을 내는 제품의 인기가 많아진 건 집에서 휴식의 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경우 집에서의 휴식이 감금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는데, 부드러운 향기를 맡으며 침대에 누워 있으니 그동안 안전하게 집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BASE: white musk, vetiver, vanilla - 쌀쌀해서 걸친 체크 남방에 머스키 마일드를 뿌리고 출근해 보았는데, 달콤한 바닐라 향과 포근한 머스크 향이 하루종일 남아 있어, 낯선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나에게 편안함을 주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코를 찌르는 향이 아니었는데도 오랫동안 은은하게 남아 있는 향 덕분에 기분좋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탑 노트부터 베이스 노트까지 향은 하나하나 분명 새로웠지만 익숙한 따뜻함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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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내가 되고 싶은 나

 

매년 사 모았던 향수는 향수를 자주 뿌렸던 시기의 기억을 살아나게 한다. 새내기 때 선물 받은 향수는 플로럴 계열의 달콤한 향기임에도 설렘보다는 모든 것이 서툴고 어려워 외로웠던 시기를 떠올리게 하고, 처음으로 내 돈으로 산 파우더리한 향수는 비로소 마음 붙일 곳을 찾아 편안함을 느끼고 진심으로 즐거웠던 2학년 끝무렵을 떠올리게 한다.

 

머스키 마일드는 2021년 10월, 반팔에 얇은 외투를 걸쳐야 하는 애매하게 쌀쌀한 날씨에, 조용하게 타자 소리만 들려오는 낯선 공간에서, 얼굴에 따가움이 느껴질 정도로 오래 마스크를 쓰고, ‘직장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의 나를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는,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종류의 휴식과 위로를 필요로 하는 나를 떠올리게 할 것 같다.

 

직업으로 이름 붙이지 않은 꿈이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사람을 돕고 싶고, 행복을 주고 싶다는 꿈이었다. 그렇기에 내게 행복과 편안함을 주었던 머스키 마일드가 그 무엇보다도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잘 표현하는 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이 향과 함께하면 언젠가는 그런 사람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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