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예술과 학문이 나누는 지적, 미적 대화 -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그림과 철학의 지혜로운 결합
글 입력 2021.10.10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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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제목에서부터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물씬 풍긴다. 이런 느낌의 근원은 ‘다정한’이라는 형용사에서 시작했을지도, 혹은 철학과 미술이라는 학문과 예술의 산뜻한 결합에서 시작됐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철학자라고 부르기가 부끄러워 제목을 짓기에 앞서 수줍은 망설임을 마주했다던 저자는 우리 모두는 어떤 의미에서 철학자라고 기술한다. 

 

철학이라는 단어를 연상했을 때 제일 처음 떠오르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루소 등 여러 저명한 철학자의 이름들과 그들이 강조했던 학문 속 이념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의 사전적 의미를 난생 처음 검색해보니 인생, 세계 등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철학의 사전적 의미를 탐구하는 동안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그 어원에 담긴 의미와 나와의 연관성이었다. 영어로 Philosophy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의 Philosophia에서 유래하며, Philo는 ‘사랑하다’, ‘좋아하다’라는 뜻의 접두사이고 ‘Sophia’는 ‘지혜’를 뜻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철학은 지(知)를 사랑하는것, 즉 ‘애지’의 학문’을 뜻하는 것이다. 나의 한글 이름인 Sohee와 비슷하고 내 이미지와 잘 매칭된다는 이유로 지인들에게 반응이 뜨거웠던 Sophia라는 내 영어 이름이 한층 더 철학적인 순간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 경제학이나 물리학과 다르게 그 이름만으로는 무엇을 연구하는지 불분명한 모호한 학문, ‘철학’이라는 학문은 정말이지 그 이름을 탐구하는 과정에서부터 나로 하여금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게 만들었고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나는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예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사랑사 할 때 내게 찾아오는 그런 설레임이 느껴진다. 그 중 아름다운 영역인 미술과 철학의 결합은 독서내내 날 생각의 미술관에 초대해 ‘행복’이라는 미스트를 쉴새없이 뿌려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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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모 발라, <가로등>

        

 

그 중에서도 자코모 발라의 <가로등>과 어몽룡의 <월매도>에 담긴 달이라는 대상을 날카롭게 분석하여,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전달하는 챕터는 특히 더 인상깊었다. 인상깊었던 느낌을 넘어 챕터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그림에 담긴 메세지에 대한 여운때문에 다시 돌아오게 만들만큼 깊이있는 감동이었다고나 할까.

 

발라의 그림이 내게 주는 첫 이미지는 화려하고 강렬한 따스함이었다. 그림에서 달은 가로등 불빛보다 작게 뒤편으로 밀려나있고, 알고보니 달의 존재감이 가로등에 미뤄졌던 이 부분은 산업화, 기술화가 한창이었던 20세기 이탈리아의 퓨처리즘, 미래주의 사상이 반영된 것이었다. ‘새로운 시대의 미는 속도의 미’라는 마리네티에게서 영감을 얻어 미술의 표현 영역에 ‘속도’를 도입하고자 했던 미래주의는, 과거의 예술과 문화유산과 결별하자는 공격적인 아방가르드 운동과도 연관이 깊었다.

 

미술이라는 아름다운 예술의 한 영역이 ‘옭고 그름의 구분’이라는 잣대에 의해 평가되고 결국엔 약하고 부드러운 것에 대한 구토와 혐오를 주창했던 파시즘과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는 암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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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몽룡, <월매도>

 

 

알록달록한 털실로 성글게 짠 니트처럼 표현된 빛에서 포근한 느낌을 받았다던 저자의 말에 공감했던 나는, 자코모 발라의 <가로등>이 보이는 것만큼 따스함만 담겨있는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처음 느꼈던 강렬함의 근원이 어디서 찾아왔는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이에 반해 어몽룡의 <월매도>는 달을 신성하고 특별한 존재로 그려내고 있다. 꽉 찬 보름달 아래, 찬바람의 냉기가 잔재한 매화가 피어나고 있고, 달빛은 험한 세상에서도 단단하고 아름답게 피어난 매화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오만원권의 지폐에 삽입된 어몽룡의 다른 <월매도>에서 매화가지가 싹뚝 잘려나가고 원작품에서의 담백한 여백이 사라진 것을 말하며, 저자는 기술이 우리에게 뺏어간 것들을 날카롭고 분석적인 통찰력으로 그려낸다.

 

 

인간의 기술은 도시를 과밀하게 만든것도 모자라 이렇게 그림 안의 아름다운 여백마저 없애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달이 추락한 그림이 든 지폐로 오늘도 기술을 사고 여유를 팔고 유행을 먹고 낭만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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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모 발라, <줄에 메인 개의 움직임>


 

기술과 속도의 힘을 강조했던 미래주의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기술과 돈의 의미는 무엇인지, 우리에 달이 지니는 의미는 또 어떤 것인지에 대해 물으며 묵직한 물음표가 가슴에 박히는 대목이었다. 파시즘과 미술을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또다른 부분은 파울클레의 작품에서였다. ‘점이 산책을 떠나면 선이 되고, 선이 산책을 나가면 그림이 된다’라는 귀여운 어록을 남긴 쿨레는 다방면에 두루 조예가 깊었고, 그의 작품엔 음악과 문학, 철학이 고루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찬양과 예찬을 상징하는 듯한 검은 화살표와 군중을 뜻하는 네 개의 발, 공허한 눈알에서도 무언가를 또렷하게 응시하는 눈동자는 <공포의 가면>에 대한 감상을 처음과는 180도 뒤바꿔 놓았다. 처음 이 그림을 마주했을 때 공포심보다는 호기심이 나를 더 자극했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에 대한 나의 미술적 감상은 '우울한 달걀의 외로운 몸부림' 이라는 제목으로 함축하고 싶었던 것에 반해, 그 속의 철학적 내막을 새로이 접하게 되었을때 오는 신선한 통찰은 작품감상의 밀도를 더 빼곡히 채워주었다. 클레의 작품 몇 점을 이전에 본 적이 있긴 하지만, 그의 이야기 혹은 작품에 대해 통찰해 볼 수 있었던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은 기대했던만큼 흥미롭고 알찬 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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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클레, <물고기 마법>

 

 

미술과 철학의 공통점은 우리에게 생각과 호기심을 끊임없이 유발시키는 점인것 같다. 생각과 호기심으로 마음을 채움에 있어 어떤 한계도 없으며, 제한 없는 이 자산들이 삶 속 여러 물음표에 대한 통쾌한 답을 가끔 내어주기도 한다는 것. 그렇기에 소중하면서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예술이자 학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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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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