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난 슬플 때 빨래를 해 [사람]

어느새 쌓여버린 빨래 무덤과 함께
글 입력 2021.10.10 14:3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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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 음악을 재생 후 읽으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동영상 출처 : 유튜브 채널 Epidemic Classical

 

 

당신에게 빨래란 무엇인가요? 참 뜬금없죠. 갑자기 허무맹랑하게 빨래란 무엇이냐고 묻는 게. 어쩌면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그리고 받아보지 못한 질문일 수도 있겠네요. 빨래는 인간 생활의 삼대 요소라고 일컬러지는 의, 식, 주 중에서 '의', 즉, 옷을 세탁하는 활동이지요. 흔히들 빨래란,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귀찮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실 거라 예상해 봅니다. 혹은 빨래를 하는 것이 자신의 직업이거나, 옷을 좋아하는 누군가에게는 아주 심혈을 기울여 해야 하는 작업이 될 수도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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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빨래는 말이야,


 

요즘에는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위생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잖아요. 밖에서 한번 입은 옷을 집안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이는 게 조금은 찝찝해졌달까. 사람 많은 곳을 쏘다녔던 옷은 더욱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저에게 있어서도 빨래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것, 그리고 남들에게 적당히 깔끔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그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좀 아이러니한 게 무엇이냐 하면, 저는 요즘 일상을 살아가느라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빨래를 미루고 있다는 거예요. 제가 최근 며칠간 너무나도 정신없는 일상을 보냈거든요. '24시간이 모자라'라는 노래처럼, 정말 24시간이 모자라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이게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하루인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또 그렇게 살아지더라고요.

 

근데 잘 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지금 노트북을 두드리며 글을 쓰고 있는 저의 등 뒤편으로 커다란 빨래 무덤이 쌓여 있거든요. 바쁜 와중에도 점점 쌓여가는 빨래 무덤을 바라보며, 당장 세탁기에 밀린 빨래들을 밀어 넣고 세제와 섬유 유연제를 때려 넣고 싶은 충동도 생기긴 했어요. 근데 집에만 도착하면 밀려오는 피로함에 전원 스위치 끄듯 스스로를 OFF 하는 충동이 더 컸었죠. 그렇게 저의 빨래 무덤은 더욱 커지다가 결국 오늘이 되었네요.


흔히들 그렇겠지만, 저는 바쁘거나 아프거나 하는 순간들이 종종 찾아오면, 가장 일상적인 것들, 어쩌면 꼭 필요한 것들을 포기하곤 해요. 밥을 굶거나 잠을 자지 않는 거죠. 청소나 빨래도 그중 하나에요. 빨래를 세탁기에 욱여넣고, 1시간의 시간이 지나면 젖은 빨래를 건조대에 널었다가, 마른 빨래를 다시 접고, 옷장에 넣는 그 과정들이 너무 귀찮기도 해요.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옷이 정말 없구나 싶을 때, 툴툴거리며 빨래를 돌리죠. 간혹가다 가는 빨래를 개는 것도 너무 귀찮아서, 빨래가 마르면 그냥 바로 건조대에서 걷어서 쓰기도 해요. 이러한 저의 빨래 습관에 공감하실 자취생분들 많으실 거라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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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반면에, 저는 일상에서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그제서야 밀린 청소와 빨래를 하는 편이에요. 그럴 땐 아주 꼼꼼히, 온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몇 시간 동안을 대청소하죠. 깨끗해진 집에서 방금 막 세탁된 빨래를 건조대에 널면, 밀린 숙제를 끝낸 성취감과 함께 행복감이 밀려들어와요. '삶이 부질없을 땐 불질(요리)을 하고, 속절없을 땐 솔질(청소)을 해라.'라는 어록도 있잖아요. 청소, 그리고 빨래는 우울한 기분을 단시간에 효과적으로 잊을 수 있고, 해소할 수 있는 비상 상비약 같기도 해요. 저는 8평 남짓한 좁은 자취방에서 살고 있어서, 빨래를 널면 포근한 섬유 유연제 향기가 온 집안에 진동하거든요. 침대에 누워 그 냄새를 맡으면 푹신한 구름에 안긴 기분 좋은 생각이 마구 피어나요. 최고의 향수는 역시 섬유 유연제라는 말을 실감하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빨래는 원래 햇빛 아래에서 말라야 빨래의 섬유가 햇빛의 따스함을 닮아서 더 부드러워지잖아요. 더 빨리 마르기도 하고. 저는 꼬마 시절일 때, 엄마랑 아빠가 맞벌이하셔서 낮에는 친할머니 댁에서 지냈거든요. 할머니 댁은 시골이었는데, 매일 할머니 옆을 쫄래쫄래 강아지처럼 쫓아다니면서 구경했던 기억이 나요. 할머니는 종종 마당에서 돌판에 빨래를 늘어놓고 방망이로 두드리며 손빨래를 하셨어요. 빨래 두드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 소리가, 냄새가, 상상하면 아직도 선명해요. 방망이로 두드리는 것에 맞춰서 비눗물을 뿜어내는 빨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빨래는 끝나서, 빨랫줄에 빨래가 하나둘씩 널려졌거든요.

 

그 빨래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뛰어놀면 강한 비누 향이 온몸에 배었어요. 그 향은 지금 흔하게 파는 섬유 유연제처럼 꽃향기를 흉내 낸 향기가 아니라, 빨랫비누 그 자체에서 나는 강한 비누 향이었지요. 바람을 받은 빨래들은 살랑살랑 움직였어요. 빨래가 다 마르고 나면 빨래에서 햇빛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어요. 웃기죠. 햇빛 냄새라니. 근데 정말 햇빛 냄새가 났어요. 부드럽고 따뜻한 냄새. 마치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품에 포근히 안긴 듯한 기분이 드는 그런 냄새 말이에요.

 

요즘도 가끔 그 냄새가 그리워요. 그렇지만 대학생인 저는, 작은 자취방에서 겨우겨우 생긴 공간에 빨래를 너는 것만으로 만족하려고 해요. 이런 자취생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어느 섬유 유연제 회사에서는 실내 건조 전용 섬유 유연제를 출시하기도 했어요. 야외가 아닌 실내에서 빨래를 건조했을 때의 특유의 꿉꿉함을 방지시켜주는 기능이 있다는데, 사용해 본 결과 차이는 잘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햇빛과 바람이 자유로운 곳에서 빨래를 널기 힘들다는 건, 좀 슬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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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슬플 때 빨래를 해


 

'빨래'하면 떠오르는 것은 뮤지컬도 있어요. 뮤지컬 《빨래》는 이미 국내에서 유명한 가족 뮤지컬이지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의 졸업작품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아 2005년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에서 정식으로 초연됐어요. 작품에는 사회 초년생, 외국인 노동자 등의 인물이 등장해서 현실적인 소시민의 삶을 담아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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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작품의 제목이 '빨래'인 만큼 작품에서는 빨래가 중요하게 작용해요. 빨래를 널다가 이웃과 만나서 대화의 싹을 트기도 하고, 인물의 슬픈 정서나 반면에 장애물을 딛고 일어서는 심경의 변화 또한 빨래하는 모습을 통해 드러나기도 해요. 이쯤에서 뮤지컬 《빨래》에 삽입된 유명한 넘버의 가사를 소개해 드릴게요.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시간이 흘러 흘러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슬픈 네 눈물도 마를 거야

자, 힘을 내!

(...)

슬픔도 억울함도 같이 녹여서 빠는 거야

손으로 문지르고 발로 밟다 보면

힘이 생기지

깨끗해지고 잘 말라 기분 좋은 나를 걸치고

하고 싶은 말 다시 한번 하는 거야

(...)

뭘 해야 할지 모를 만큼

슬픈 땐 난 빨래를 해

두리 기저귀 빨 때,

구씨 양말 빨 때,

내 인생이 요것 밖에 안 되나 싶지만

사랑이 남아있는 나를 돌아보지

살아갈 힘이 남아있는 우릴 돌아보지

 

뮤지컬 《빨래》 넘버 「슬플 때 빨래를 해」 가사 中

 

 

가끔씩 우리 모두는 삶을 너무나 엄격하게 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실패에 쉽게 좌절하고, 나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남들과 비교하며, 눈치 보고, 스스로에게 채찍질하면서 말이에요. 근데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아도 될 것 같아요. 이물질이 묻으면 빨래를 해서 지워버리듯이, 틀리면 지우고 고쳐 쓰면 되니까요.

 

빨랫감들은 우리의 일상, 가장 가까이에서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요. 빨랫감들에 새겨진 주름들이라던가, 냄새, 묻은 이물질 같은 것들이 그렇지요. 그것들은 우리가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의 지문들이 가득 담긴 기록 같기도 해요. 그 지문들이 잘나든 못나든, 우리는 또다시 준엄하게 찾아올 내일을 위해서 습관처럼 빨래를 세탁기에 밀어 넣고 세탁 버튼을 누르지요. 그러고는 지난 시간들이 사라진 깔끔한 옷을 갖춰 입고, 또 살아가고, 살아가고, 살아가요.

 

이 글의 서문에서 드렸던 질문을 다시금 드려볼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빨래란 무엇인가요?

 

저의 경우처럼, 바쁘다는 이유로 가득 쌓여버린 빨래는 어쩌면 스스로를 내밀히 살피는 자기 보살핌이 그만큼 숙제처럼 쌓였다는 증거 아닐까요. 저는 이만, 뮤지컬 <빨래>의 넘버를 들으며, 밀린 빨래를 하나둘씩 정성스럽게 살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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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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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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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ㅈㅎㄱ
    • 죻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1 0
  •  
  • 채승현
    • 공감가는글이네요.
      잘읽고갑니다.
      요즘 이런감성의글을 잘 찾아볼수없기에 감사하다는말도 남기고 갑니다^^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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