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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나는 고래에 대한 어떠한 환상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와 같은 포유류 였던, 그 거대한 몸집을 지닌 채 바다 위를 제 집처럼 자유롭게 드나드는 고래는 어떤 생물보다 자유로워 보였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드넓은 세계를 일생 동안 너무도 쉽게 표류하는 고래가 조금은 부럽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고래는 우리와 같이 땅 위에서 다리를 가지고 살다 자유를 찾아 바다로 떠나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은 고래가 그 어떤 구속도 벗어 던진 존재처럼 보이게 했다.


그렇게 그저 바다 위의 최상위 포식자이자 근심 하나 없어 보이던 고래에 대한 나의 조금은 편협한 생각이 달라진 것은 유튜브를 통해 한 영상을 접하고 나서부터였다. 해안으로 떠밀려 나온 고래에 대한 이야기 였는데, 당시 너무나도 큰 몸집을 가진 고래를 어찌할 수 없어 결국 고래의 몸에 다이너마이트를 달았고, 그렇지 않아도 팽창하며 부풀고 있던 고래의 몸뚱이가 한꺼번에 터지며 그 파편이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았다는 이야기였다.


살아가는 내내 자유로워 보이기만 했던 생명체의 죽음이 어떻게 이렇게 비극적이기만 할까? 고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나의 생각은 그러했다. 도서 <고래가 가는 곳>에서도 숨이 붙어 있는 상태로 해안에 밀려온 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글쓴이에 따르면 고래가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이나 다름 없어 보인다.

 

고래는 너무나 크고 복잡한 몸을 가지고 있기에 잘못 했다가는 고래를 위해 안락사 주사를 놓거나 하는 일이 고래의 시체를 처리하는 작은 생물체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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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고래는 정말 그 자체로 거대한 하나의 ‘자연’같다. 세상 어떤 생명체 보다도 거대한 몸집을 지닌 채 지구 곳곳을 동네 마실 나가듯 유영하는 이 생명체의 몸 속에는 그만큼 전세계에서 고래가 경험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리고 앞서 본 바와 같이 고래는 죽으며 그 모든 것을 다시 수많은 생명체들을 통해 자연에 풀어 놓고 떠난다. 그렇다면 고래의 몸 속에 쌓인 그 세월의 흔적이야말로 우리의 자연이 현재 지닌 모습이 아닐까?


그러나 고래가 보여주는 자연의 모습은 결코 유쾌하지 만은 않다. <고래가 가는 곳>에 따르면, 맨 처음 스페인 해안으로 밀려 들어와 죽음을 맞이한 고래의 배 속에는 비닐하우스 한 채가 통째로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고래의 사체 속에는 그가 소화 할 수 없는 매트리스 조각, 아이스크림 통, 옷걸이 등 플라스틱으로 넘쳐 있었다. 결국 고래는 인간이 내다 버린 수많은 생활 쓰레기로부터 천천히 오염되었고, 그 거대한 몸 속에 폐기물을 축척해가며 인간이 자연에 저지른 업보를 품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저 바다 위의 무법자 정도로 생각했던 고래에게 여태까지 우리가 외면해왔던 자연의 실체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은 정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인류가 고래 사냥에 나섰던 그 오랜 시간 전부터 고래는 인간의 식량 확보를 위해 사냥의 대상이 되거나,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이용되고 버려진 생활 폐기물을 담은 채 살아있는 오염원 그 자체가 되어 왔다. 어쩌면 우리는 육지의 삶에 지쳐 바다로 떠나버린 고래를 바다에서 마저 쉬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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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내게 비극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고래가 생을 마감한 이후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아 심해 생물들에게 유일한 식량이 되어주는 '고래 낙하'를 더이상 신비로운 '생명의 탄생'의 시초만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고래가 낙하한 이후 200종 이상의 심해 생물체가 고래 사체 하나를 공유한다. 물론 이는 한 생명의 죽음이 새로운 생명을 싹트게 하는 자연의 법칙이며 이로 인해 새 생명이 움트는 봄이 올 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고래가 품고 있던 오염물이 이를 통해 수많은 생명체에게로, 결국은 자연 곳곳으로 퍼져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고래는 물리적으로 인간에게 매우 먼 전설적인 동물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어쩐지 고래에게 이유 모를 친숙함을 지니고 있다. 동화 속에서, 혹은 다양한 매체 속에서 고래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우리에게 '거대하지만 다정한' 친구같은 존재로 비추어져 왔고, 그래서인지 우리는 어쩌면 고래를 '아낌 없이 주는 나무'같은 존재로 보아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큰 몸집을 가지고 있으니까, 누구보다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 누구도 고래의 실제 생태를 깊이 들여다 보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고래가 우리 본성에 더 선한 의지를 심아 줄 수 있으며, 그가 불러일으키는 경이로움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우리의 영향력울 재고하게 한다'

 

도서 <고래가 가는 곳> 中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의 말처럼 고래는 인간이 자연에 가지고 있는 태도와 생각의 표본이 될 수 있다.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고래에게 우리가 저질러온 잔인한 현실의 실체를 보는 순간을 반환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고래에게 가진 친숙함과 연민, 동정을 고래에 대한 '관심'으로 돌리고 아주 작은 선한 행동을 시작하기만 하더라도 고래는 우리 행동의 증표를 언제나 그랬듯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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