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술과 철학, 그 두 개가 연결된 '놀이' -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글 입력 2021.10.07 14:1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내 얕은 인간관계지만, 내 주변 사람 중 미술을 좋아하면서 철학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그 반대로, 철학을 좋아하면서 미술을 싫어하는 사람도 없었다.

 

순수미술을 전공하는 지인은 툭하면 미술관에서 니체와 칸트의 철학을 함께 읊어내리기 일쑤였고, 나와 함께 이따금 철학적 질문을 주고받는 사이인 지인은 미술관과 박물관에 몸을 담았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독서를 사랑하여 자주 책과 시집 내용을 주고받았다. 통칭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그곳에는 나도 포함되어있었다. 어째서 우리는 철학과 미술을 함께 좋아하는 것일까?


철학과 미술을 포함한 인문학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일단, 언뜻 보기엔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 있다. 인문학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루하다`와 `잘 모른다`를 이야기했다.

 

생각보다 접근하기 쉽고 재미있다는 점도 인문학의 공통점이다. 많은 사람이 인스타그램에서 인기 드라마의 복선과 의미를 이야기하며 현대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감탄하는 것과 같은 것처럼, 인문학은 뜯어볼수록 소름 돋고 재미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공통점은 사람들을 깊은 생각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힘일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에는 정답이 없다는 점까지 완벽하다.


철학 글을 읽으며 그 의미를 곱씹으며 인생과 연결 지어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이 철학자의 주장은 나랑은 안 맞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해도 그것이 정답이다 정답이 아니다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라고 해도 `이 철학자의 주장`은 명확한 정답이 내려지는 것이 아닌 개인적인 취향에 가깝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를 싫어한다. 그렇다고 그 누구도 `너는 틀렸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과하게 심취해있지 않는 이상 말이다.


미술도 마찬가지이다. 화가는 그림 속에 많은 이야기를 숨겨둔다. 그럼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 그림을 곱씹어보며 화가의 의도를 파악하려 한다. 어째서 이 그림을 그렸는지, 어째서 이런 색감을 사용했는지, 이 그림 속 인물의 표정에는 어떤 것이 담겨있는지. 개개인의 해석에 정답도 없다. 나에게는 이 그림 속 인물이 고통스러워하는 이유가 사랑 때문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 옆 사람에게는 나르시시즘 때문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둘 다 정답은 없다.


도서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의 저자 이진민 작가도 이러한 이유에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의도는 `어려워 보이는 철학과 미술을 일종의 놀이처럼 느끼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미술사적 논의나 배경의 진위와 관계없이, 그저 미술 작품들을 철학적으로 느끼고 생각해보는 놀이를 하고 싶었습니다. (...) 정답 사회인 한국 사회에서 정답을 찾겠다는 강박 없이 내 생각을 자유롭게 이리저리 펼쳐보는 건 굉장히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라는 메시지를 꼭 덧붙이고 싶었고요."

 


이렇게 시작하는 그의 도서는 제목 그대로였다. `다정한 철학가의 미술관 이용법`이라더니,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쉽게 도입부를 들어서고, 그러한 경험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철학(혹은 미술)을 이야기하고, 이러한 철학과 함께 바라보면 더욱 좋고 재미있을 법한 미술 (혹은 철학)을 함께 이야기한다. 그렇게 처음과 끝은 니체가 장식하여, 총 13개의 챕터가 소개되어있다.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제1장이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함께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유명한 말을 소개한다.

 

 

131.jpg


 

위의 그림만 봤을 때 어느 쪽이 신의 손 같아 보이는가?

 

정답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주저 없이 왼쪽이라고 대답했다. 왼쪽의 나른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손은 어떻게 보면 오만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에 비해 오른손은 어떠한가. 왼쪽에 닿고자 있는 힘껏 노력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애써 검지를 들어 올려 손끝에 닿고자 힘쓰는 열망이 마치 신에게 닿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과도 닮아있지 않은가?

 

 

14111.jpg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신은 오히려 오른쪽이다. 나른히 누워있는 왼쪽은 신이 창조한 아담이고 말이다. 어째서 인간보다도 신이 더 상대방에게 닿고 싶어 하는 것일까?


첫 번째 해석으로는 아담은 여유로운 것이 아닌 몸만이 있는 `시체`와 같은 상태라는 것이다. 아담은 아직 신으로부터 지혜와 같은 인간으로서의 생명을 받지 못하였고 짐승과 같은 존재다. 그렇기에 온몸에 힘이 빠져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이다. 그렇기에 신은 기꺼이 인간에게 지혜와 사랑을 전달해주어 그를 인간으로서의 생명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기꺼이 그에게 손을 뻗는다.


하지만 두 번째 해석은 이러한 첫 번째 해석과 정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다. 신이라는 존재도 어디까지나 인간으로 인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인간 세상에서 신의 존재란 어디까지나 인간들이 만들고 인정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라며, `말하자면 나의 존재를 인정해달라며 애써 인간을 찾아와 손가락에 힘을 주어 팔을 뻗는 신인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둘 다 너무도 그럴듯하고 재미있는 해석이다. 아무래도 신의 존재를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서도 지지하는 해석이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유명한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선언한 니체는 이 그림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니체는 어떤 철학 속에서 그런 주장을 했으며, 이는 천지창조의 어떤 해석에 특히 기울어져 있을까?


작가가 이야기한 `놀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미술 작품 속에 숨어져 있는 의미는 어느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철학적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마치 고리와 고리가 연결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그 고리들은 `어떻게` 연결되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뜯어보며 신나게 노는 것이 이 책의 주 내용이다.

 

다정한철학자의미술관이용법_표지_평면.jpg

 

철학과 미술을 전혀 몰라도, 한글로 따지자면 `가나다`부터 알려주니 겁을 먹을 필요도 없다. 미술을 좋아하거나, 철학을 좋아하거나, 혹은 그 둘을 전부 좋아하여 생각을 곱씹는 것을 좋아하거나, 좋아해 보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신나게 놀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에는 `다정한 철학자`가 들어와 `미술관`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김혜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