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묵묵한 자연의 메시지 - 고래가 가는 곳

글 입력 2021.10.05 13:3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고래도 인간들처럼 포유류입니다." 그들이 설명했다. 모든 해양 생물은 어류일 거라 지레짐작했던 사람들은 놀란 눈을 했다.

 

… 내가 점점 조사에 몰입하면서, 고래는 이전에 나에게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해 주었다. 인간의 삶이 어떤 식으로 꼬박꼬박 야생의 생태에 전가되는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야생은 우리에게 망각의 증거물을 갖고 되돌아오는가를 말이다.


그리고 고래가 지울 수 없는 인간의 과거와 그것의 예기치 못했던 결과를 상기시켜 주었다는 것을 자각한 순간 내 마음에 더욱 형언하기 힘든 질문이 둥실 떠올랐다.

 

고래는 자신의 비극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변화의 가능성을 찾아보라고 충고하고 있지는 않은가?

 

- 본문 중 인용



20211005013509_sqfpufky.jpg

영화 그랑블루 포스터 중 일부, 고래가 인간과 조응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처음 이 책을 받아보고 싶다는 흥미가 생긴 것은 뤽 베송 감독의 영화 <그랑블루>가 연상되었기 때문이었다. 러닝타임 내내 바다와 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잠수와 수영을 반복하는 일상의 모습을 보이지만, 어쩐지 이 영화를 보던 시간은 내게 고요한 사색의 시간이자 치유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랑블루>에서 고래는 인간과 조응할 수 있는 동물로 그려진다. 고래를 유별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유독 추천했던 것도 그 때문이리라.


특정한 대상에 대한 기호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통념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는 관념이 필요하다. 고래와 바다는 우리 인간에게 어떤 존재이기에 '고래'라는 단어 자체로 묘한 고요를 느끼는 것일지 궁금했다. 생각해보면 '고래'라는 단어를 활용한 단어들도 존재하고, 고래의 꼬리나 형태는 도상으로도 흔히 쓰인다. 고래에 대한 사건이나 이슈를 생각해보면, 환경에 대한 이야기까지 확장된다. 인간의 욕심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고래들도 많지만, 자연사한 고래의 경우 그 몸집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해변에 떠밀려온 고래의 몸에 구멍을 내어 부패 과정에서 생기는 가스를 배출시키지 않으면 팽창 끝에 고래가 폭발하면서 온 동네가 고래의 사체로 쑥대밭이 된다는 이슈도 연상되었다. 이처럼 고래는 생각보다 우리 인간에게 가까운 존재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유인원처럼 동물적 동질감을 느끼기보다는 묘한 낯섬을 느끼게 되는데, 아마도 고래가 포유류임에도 어류의 특징과 외형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고래가 가는 길>은 이처럼 우리의 친숙함, 자연에 대한 경외심, 일부의 파괴, 그리고 생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아울러 보게 하는 책이다. 그 내용은 저자의 조사가 수집되는 형식으로 주제에 따라 정리되어 있는데, 마치 한 평생 곤충만 연구하던 파브르처럼 고래만을 연구하고 저술했다.

 

'지구상 최대의 생물'이라는 고래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만, 결국 그 내용은 '인간과 자연'이라는 거시적인 주제를 관통한다.

 

이 책은 그런 부분에서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반드시 남기는데, 2가지 인상을 중심으로 리뷰를 해보고자 한다.

 


고래가가는곳_표1.jpg


 

1. 인간은 망각의 동물


 

책의 시작은 해변으로 떠밀려온 거대한 혹동고래의 일화에서 시작한다. 앞서 언급했던 책을 접하기 전부터 익히 알고 있던 일화였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제시하는 관점은 내가 생각했던 시선의 오류에 대해 논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나는 고래의 사체가 부패하는 과정의 결과로 인해 사람들이 받는 피해에 대해 집중해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당시 현장에서의 일화도 동일했다고 전하며 다이너마이트로 고래의 사체를 처리하거나, 거대한 주삿바늘로 고래를 위한 안락사를 시행하자고 주장하는 것의 목적은 결국 '인간적인 차원에서의 자비'라는 한계를 지적한다. 만약 그 선택이 실현된다면, 고래 내부에 존재하는 유기적인 생명들은 어떻게 되는가? 혹은 그 사체가 자연분해 되도록 돕는 또 다른 생명들을 고려할 때 이것은 자연스러운 행위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잠깐 다른 얘기로, 나는 종종 <동물의 왕국>을 애청한다. 먹이사슬에 의한 당연한 포식이 매번 충격적이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매일 먹고 마시고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동물과 자연으로부터 비롯되었음에도 그 당연함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잊고 있다가 인간이라는 동물이 아닌 다른 동물들의 생태를 목격하는 순간 깨닫는 것이다. 책은 바로 이 '망각'에 대한 환기를 목적으로 한다.

 

우리는 자연을 인간 중심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선의,도의라고 부르는 것 역시도 지극히 '인간적인' 것은 아닌가?


 

 

2. 고래는 죽어서 고래를 남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한국 속담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인간은 동물의 패턴을 보관하기 위해 모피를 만들거나 박제 등을 해서 그들의 모습을 보존하고 싶어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인간적인' 시선에서 이루어진 일들 같다. 누가 엄청난 크기의 고래를 보존하고 싶어하는가? 크릴새우까지 긁어모아 인간의 것으로 삼고싶어하는 우리의 이기심에 고래는 묵묵히 삶과 죽음 전체에서 자신을 내어주는 모습으로 일관된 메시지를 전한다.

 

전혀 모르던 사실인데, 고래가 살아있으며 해양을 누비고 생명활동을 하는 모든 과정이 자연에 이롭다고 한다. 심지어 배설 활동까지도! 인간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만 할 뿐 -그마저도 인간적인 관점에서- 정작 생태의 일부로서 자연에 도움이 되었던 적이 없던 것 같은데, 고래는 진정으로 '존재 자체가 유의미한' 생명이었다.


한 생명이 죽어도 그 생명과 유기적으로 연관되어있던 문화적, 생태적 관계는 상실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책의 슬로건 '바닷속 우리의 동족'은 인류가 고래를 우리의 공동체인 '자연'으로 인식하고 우리의 먹을 것을 함께 나누고 그들의 삶과 생태를 보존하고자 하며 남겼던 말이다. 우리가 인간중심적 사고의 오류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 다른 동물의 삶과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며, 그 결과는 결국 다시 우리 인간에게 돌아온다.

 

*


결국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고래'를 통해 '자연'으로 시야를 확대해달라는 것이다.

 

고래로만 국한된 내용처럼 보이겠지만, 결국 발 없는 고래의 족적을 따라가다보면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묵묵하게 자연의 몫을 다해왔던 고래와, 더불어 살아가던 크고 작은 또 다른 생명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그 중 고래를 앞장세워 우리가 잊고있는 것이 있지 않은지 반문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고래에 대해 배울 때 '인간처럼 포유류인 동물'이라고 배워왔다.

 

만일 정말 우리가 성숙한 인간이자 생명을 존중하는 존엄성을 가진 생명체라면, 우리는 '인간다움'에 대한 것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의 선택과 판단, 가치기준은 생태 전체를 아울러 최선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인간만의 감정과 판단에 젖어있지는 않는가?

 

이 부분에 대한 담론은 책 밖의 현실에서 보다 치열한 실천적 방향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고래와 자연은 늘 우리에게 묵묵한 메시지를 남겨왔다. 자연의 일부이자 '같은' 포유류인 우리 또한 고래와 자연에게 묵묵한 성찰과 새로운 실천으로서 답변을 해야할 책임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지현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