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의 면역력을 키워주는 병균 같은 '혐규 만화' [만화]

껍데기 같은 희망을 벗긴 불안전한 네 컷 만화
글 입력 2021.10.0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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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실체 없는 희망을 갖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것을 마주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예상보다 엄청난 용기와 시간이 필요하고, 자칫하면 건강하지 못한 생각의 늪으로 빠져버릴 위험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숱하게 깨져보고 아파봤기에 잘 알고 있다. '괜찮다'라는 말이 쌓이고 더해져도, 차마 가릴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것을.

 

나는 과거에 어떤 상담가의 조언을 통해, "괜찮다"라는 말이 얼마나 얄팍하고 무용한 말인지 몸소 느꼈다. 그 당시 나는 종종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튀어나온 삐죽삐죽한 가시들이 주변 사람들과 나 자신을 쿡쿡 찌르는 걸 느꼈었다. 그게 참을 수 없도록 너무 아파서, 용기 있게 찾아갔던 상담 선생님과 함께 나는 나의 아주 오랜 과거부터 차근차근 되밟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건, '괜찮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살아갔던 수많은 '나 자신들'이었다. "괜찮다"라는 말에 정말 다 괜찮아졌을 줄 알았는데, 그건 정말 큰 착각이었다. 상처를 입었던 수많은 '나 자신들'은 내가 느끼지도 못할 만큼 훨씬 더 거대해져서 어느새 나에게 또 다른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괜찮다'라는 말로 상대방에게 위로를 건네지도, 스스로에게 위안을 얻지도 않는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정말 다 괜찮아질 것만 같은 그 말에 속아서, 차마 보지 못했던 나의 상처가 언젠가 다시 부메랑처럼 나에게로 다시 돌아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 "태어나줘서 고마워" 따위와 같은 위로가 그저 눈 가리고 귀를 막는 회피 같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항아리의 밑동은 깨져서 물이 무섭도록 끊임없이 새어 나오고 있는데, 그 구멍을 메우고자 구멍의 크기와 형태를 살피지는 못할망정, 가냘픈 유리조각 몇 개만으로 그 항아리의 구멍을 간신히, 그렇게 꾸역꾸역 메꾸고 있는 말처럼 느껴진다. 내가 본래 그렇게 생겨 먹은 사람이다. 한동안 불안한 마음 때문에 힘들었을 땐, 예쁜 단어와 어조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전부 다 지나갈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는 서적보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철학적 시선으로 '불안'을 고찰한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서적이나 쇼펜하우어의 서적이 더 도움이 됐다.

 

이렇게 자칭이자 타칭으로 지독한 염세주의자인 필자가 좋아하는 어느 작가가 있다. 바로 네 컷에서 여섯 컷의 짧은 만화에 우리가 모두 한 번쯤은 느꼈을 법한 우울과 자괴, 분노, 허무함, 혹은 삶의 무상성 같은 것들을 녹여낸 작가 '혐규(본명 송현규)'다.

 

혐규는 자신의 작품을 본인의 SNS를 통해 공개한다. 또한 2019년도엔 280 페이지 분량의 만화를 엮은 도서 《혐규 만화》를 출판하기도 했다. 그의 만화는 이미 각종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꽤 알려져 있다.

 

아래는 그의 작품 중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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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 혐규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다. 너무 조용해서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다. 마음속에 쌓인 것들은 조용히 썩어갔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알지도 못한 채 울고 싶은 심정으로 비명을 지르듯 만화를 그렸다.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을 작고 귀엽게 축소해 웃을 수 없는 것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내 삶의 고통이 아무것도 아닌 티끌처럼 느껴지도록 파편 같은 만화들을 되는대로 쌓아 거대한 송신탑을 만들고 싶었다.

 

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괜찮아"라는 말에 누군가는 위로를 받겠지만 나에게 상처를 가릴 휴지 한 장 정도의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희망은 삶의 표면에 쌓인 먼지 같은 게 아닐까. 나는 막연하고 실체 없는, 껍데기 같은 희망들을 다 부수고 손에 남은 견고한 한 톨만을 쥐려고 했다. 괜찮다며 외면하지 않고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삶을 똑바로 바라보고 꾸역꾸역 삼키고 싶었다. 부정적인 면들을 긍정하고 웃어넘기기보다 더 헤집고 쑤셔 더 나은 삶을 상상하기를 바랐다. 누군가는 내 만화를 병균이라고 했다. 기분 나쁜 만화. 삶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주는 효과가 있지만 백신처럼 안전하지만은 않은. 그래서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오히려 그들의 존재가 이 만화의 정체성을 지켜준다.

 

출처 《혐규 만화》 page. 4 中 에서

 

 

혐규 만화는 여타의 그림체가 예쁜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만화들과는 확실히 다른 것처럼 보인다. 대충 그린 듯한 그림체가 가벼워 보이지만, 만화의 내용은 결코 대충 읽힐 수 없는 것들을 다루고 있다. 회화과 출신인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고민들을 주로 담은 혐규 만화는 염세적이고, 허무주의적이며, 때론 독특한 유쾌함까지 곁들여져 있다. 그의 만화에는 막연한 긍정이 없다. 오로지 답이 없는 질문과 함께 지독하리만큼 냉소적인 통찰력이 녹아들어있다.

 

그래서 "상처를 치유한다기보다는 굳은살이 박이게 해 쉽게 상처받지 않게끔 하는 만화"라는 찬사를 받기도 한 혐규 만화에는 차마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녹아들어 있기도 하다. 대충 그려진 듯한 일러스트 속 인물의 가냘프면서도 확실한 선들이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그렇게 혐규 만화에서는 찝찝했던 것들을 굳이 들춰낸다. 한 겹 한 겹 껍데기를 벗겨낸 '그것'. 그리고 '그것'의 밑바닥까지 굳이 또 한 번 더 헤집어 놓고는 아프도록 쿡쿡 찌르는 것이 그의 만화가 가진 특징이다.

 

막연한 말로 예쁘게 포장된 위로를 전달했던 이전의 다른 작품들에게서 피로함과 진부함을 느꼈던 이들은, 그의 만화가 아주 썩 끌리지는 않으면서도 또 찾아서 보게 된다. 그리고 점점 그의 작품이 가진 예리한 통찰력과 놀라운 상상력에 감탄을 하기도, 결코 무겁지 않은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내는 그의 유머러스함에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미소를 띠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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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의 만화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덮어놨던 것들을 구태여 들춰내는 이 만화가 기분 나쁘다는 것이 이유다. 너무 과한 해석이 곁들어진 확증편향에 빠진 작품이라는 의견, 지나치게 암울해서 건강하지 못한 작품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그의 만화를 애정 하는 나 같은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의 SNS에 달린 댓글 일부는 그가 이 시대가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명료하게 풀어내는 천재적인 작가라며 깊은 팬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의 만화에는 인간의 나약함과 삶의 무상성 같이 해롭게 보이는 것들이 녹아들어 있지만, 결국에는 공감이 간다. 그래서 더 눈길이 간다. 힘들 때 "괜찮아"라는 위로보다 "X발, 세상 살기 X 같다!"라는 말을 같이 외쳐주는 게 더 도움이 되기도 하듯. 혐규의 만화는 삶을 긍정하라고, 스스로를 사랑하라고도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의 깊은 어두운 내면의 깊은 바닥에서 출발한 냉소적인 이야기들은 유난히 아픈 구석을 마구 후벼판다.

 

아프면 딱 아픈 만큼만 생각해야지, 내가 왜 아프고, 어떻게 아프게 됐는지 생각하는 건 그다지 건강하지 않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다가는 더 깊은 우울의 늪에 나 자신을 빠뜨리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괜찮다"라는 말이나 "파이팅"을 외치는 것으로 가려지지 않는 상처가 존재하고, 마음이 존재한다. 그런 땐 갖가지 방법을 써서 그 순간을 넘기려고 애쓰기보다는, 그 마음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서 그것을 온전히 마주하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우울도 나의 일부분이고, 삶의 뒤틀리고 모순된 모습도 결국에는 부정할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다.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굳이 들춰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혐규의 만화는 결론적으로 이 '빌어먹을' 세상을 살아갈 색다르고도 현명한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감정에 빠지지 않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현실을 오롯이 마주하며, 관찰하고, 질문하며, 웃어버리는 것. 이를 통해 그는 마침내 이 세상을 버티며 끝까지 살아내기 위한 굳은살이 배기게끔 돕는다.

 

*

 

지금까지 삶의 면역력을 키워주는 병균 같은 만화, '혐규 만화'에 대한 소개 글이었다. 혐규의 작품은 앞전에도 소개했듯 그의 SNS(인스타그램), 혹은 도서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비상식적이도록 병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오늘도 기꺼이 병균 같은 그의 만화를 온 마음을 다해 즐기고자 한다. 소리 없는 비명과 조소로 꿈틀거리는 그의 작품이 더 많은 이들에게 가닿기를 바라본다.

  


참고 자료 출처

혐규 인스타그램 (@gyuhyeom)

도서 《혐규 만화》 (2019|송현규 저|도서출판 흔)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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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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