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래와 생물을 위한 시 - 고래가 가는 곳

글 입력 2021.09.2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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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물을 사랑한다`라는 문장에는 어떤 동물의 실재가 없다. 대개 무언가를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일은 대상이 아닌 주체를 위한 일이다. 이 비극적인 사랑의 굴레가 공유되지 않은 정신세계를 가진 존재에게 씌워지는 순간, 우리는 더 큰 모순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동물을 다른 동물보다 사랑하며, 사랑하는 존재를 표현하고 보호하려는 방식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을 초월한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은 심화된다. 우리는 동물을 활용한 상품들을 집에 나가지 않고서도 받아들 수 있지만, 막상 그 원재료인 동물을 접하지 못한다. 따라서 도시인에게 각 동물은 하나의 상징 코드로서 존재한다. 통통한 몸매를 자랑하며 서있는 닭 상징이 실제 닭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며, 똘망똘망한 눈을 한 동물들은 관심의 대상이 된다.


상징이 실재를 꿰찬 시대. 상징과 실제간 갭은 다시 동물의 권리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 증거로 최근 돼지를 반려동물처럼 키우다 잡아먹는 유튜브 동영상과 동네 길고양이를 둘러싼 담론이 인터넷 커뮤니티 구석구석을 송곳처럼 찌르고 있다. 이런 논쟁은 근본적으로 윤리적 모순을 마주한 인간의 감정-사랑, 죄책감, 분노-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논쟁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우리의 시대정신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하기에 긍정적이다.


하지만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 이 논쟁에서 깔끔하고 명확한 답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며, 사실 그런 것을 진정으로 찾길 바라는 이 역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 잡아먹혀 모순을 인지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것은 현상을 유지할 뿐, 진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간은 발전하는 것에 의미가 있고, 따라서 우리는 안간힘을 다해 모순을 직면하고 객관적인 언어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동물의 권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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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뷰할 도서, `고래가 가는 곳`은 그러한 고민을 열정적으로 탐구하여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책이다.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인간의 눈으로 정의되어온 동물의 존재를 다시 돌아보고, 재정의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러한 과정에 이르기 위해 이 책에서 주요 중심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은 고래다. 그녀는 고래를 생물, 상품, 상징, 생명의 상징이 생태계, 문화, 경제적 위계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핀다.


이 책은 자연과학 도서로 분류되어 있지만, 어떤 과학적 사실을 열거해 놓은 책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고래에서 영감을 받은 에세이로 분석한다. 내가 이렇게 표현한 것은 에세이에 관한 정의가 확립되어서가 아니라, 에세이가 아닌 책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책은 자연과학 도서에서 기대되는 서술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목차만 봐도 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충분히 공감하리라 생각된다. 챕터의 제목은 모호하게 작성되었으며, 본문을 읽은 후에 살펴봐도 잘 와닿지는 않는다. 심지어 책에서 나온 목차의 이름을 본문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도 아니다. 모호한 제목에 책의 각 챕터와 내용의 전체적인 구성은 비체계적이기에, 어떤 이정표 역할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번역가의 노력으로 색인이 있지만, 이는 다 읽고 난 후에 유용한 것이지 처음에 전체적인 윤곽을 잡는 데는 주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책은 `고래`라는 존재가 다양한 맥락에서 존재하는 방법에 관해 서술하고 있지만, 명확한 하나의 결론으로 다다르지는 않는다. 물론 이 책의 후반부에서 던지는 메시지-고래가 고래로서 존재하는 것-가 이 책을 묶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책에서는 표류한 혹등고래, 저자의 경험, 일본 방문 이야기 등 너무 많은 이야기가 얽혀있기 때문에, 이러한 의도가 명확하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고래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를 얻고,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물의 권리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질문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각 정보와 에피소드가 산발적으로 흩어져 전개되는 탓에 정작 제목에서 제시한 `고래가 가는 곳`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책을 모두 읽고 난 후에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중심에 왜 고래가 있어야 했는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이것이 책에 관한 비판적 요소가 아님을 먼저 밝힌다. 일반적인 자연과학 도서에서 기대되는 구성과 비교해 독특했다는 것이지, 이 책의 구성이 엉성하다거나 내용이 비논리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정체성은 일반적인 대주제로 묶인 에세이에 가깝다. 그래도 고백하자면, 생태보고서를 기대하고 책을 들었을 때는 쉽게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직관적이지 않은 책의 구성과 핵심을 빙빙 돌고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저자의 문체는 내 기대와 비추어서는 고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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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책의 방식에 점점 익숙해진 중반 즈음에는, 나는 이 책에서 놀라움을 넘어선 경이로움을 느꼈다. 저자는 어떤 장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데 대단한 재능이 있다. 각 챕터에서 잡아내는 장면들의 표현은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비유로 가득 찬 시에 가까울 정도다. 진심으로 나의 부족한 언어적 능력으로 인해 내가 느낀 감탄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책에서 묘사한 것 중에 내가 아직도 잊지 못하는 상황들은 `표류한 고래에게 화관을 씌워주려는 여인`, `죽은 고래를 소중하게 닦는 박물관 사람`, `박제된 고래 안에서 정사를 나누는 연인`, `나는 함께 바라보고 있지만 사실 나를 잘 보지도 못한 혹등고래`이 있다. 애정을 갖고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각 장면이 갖는 복잡한 상징에 전율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마치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사진가처럼, 각 챕터의 장면에서 저자는 인간과 자연이 갖는 관계에서 모순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담는다.


저자의 뛰어난 역량은 표현방식뿐만 아니라 태도나 내용에서도 드러난다. 사실 과학적 사실을 담는 대신 아름다운 시 같은 에세이로 완성한 이 작품이 어떤 교훈만을 남기려고 했다면 그가 제아무리 대단한 작가적 역량을 가졌다 하더라도 독자에게 불쾌함만을 남겼을 것이다. 저자는 교조적이지도 않고, 감상에 젖어있지도 않는다.

 

그는 이 책에서 고래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명하는 데 몰두한다. 이 책에는 인간이자 특별한 개인인 작가 그 자신이 고래를 사랑하고 바라보는 방식뿐만 아니라, 상품으로서 바라보는 방식, 생태계의 하나로 보는 방식, 나아가 고래가 그를 인식하는 방식을 독자에게 소개한다.


이러한 방식을 두루 소개한 이 책은 독자들에게 특정한 태도나 사상을 강조하지 않는다. 책의 전반에서 작가 개인이 갖는 특별한 감정이 드러나지만, 그는 그가 사랑하는 방식의 모순을 인지할 뿐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책이 갖는 독특한 매력은 이러한 작가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상황을 시적인 표현으로 다양한 해석의 틀을 열어놓았다. 하지만 그 끝에는 모두가 공감할만한 공감대가 존재한다. 인류의 생존과 생명의 공존을 위해, 생물을 인간 문명의 들러리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것 말이다.


종합하면, 이 책은 과학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시에 가깝다. 자연과학 도서로서 이 책은 뚜렷한 한계가 있다. 책은 과학적 사실들을 묶어 어떤 현상이나 해결방안을 논리적으로 기술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자연의 위대함을 놀라운 상징으로 표현한다는 데에 있다.

 

과학적 탐구와 아름다운 시 사이에서 완성된 이 책의 독특한 매력은 정말로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책을 통해 많은 독자가 `나를 바라보지 않는 고래`를 사랑하는 것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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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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