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은 계속해서 일렁인다 삶처럼 - 아트인문학: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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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책 <아트인문학-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은 문학적 감성으로 예술 이야기에 인문학을 녹여내는 작가이자 강연가인, 김태진 작가님이 쓴 책이다. 처음 ‘아트인문학’이라는 개념은 생소했지만 부제로 쓰인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이라는 문구가 끌려 집어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던져진 정보화 시대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과거로 뒷걸음질하게 되는 상태에 대해, 저자는 ‘홈에 빠져있다’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 깊은 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차별화를 지속할 필요가 있으며, 이때 필요한 것이 독창적인 사고력, 즉 ‘틀 밖에서 생각하는 힘’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날 한 예술가가 깨닫는다.
그간 남들 뒤만 따라왔다는 것을.
그는 벽을 기어올라 홈에서 탈출한다.
드넓은 세상과 마주해 감격한 그는
영감에 휩싸여 과거에 없던 미술을 창조한다.
이로써 미술의 지평을 넓힌 그는
미술의 지도에서 빛나는 하나의 점이 되었다.
- 프롤로그 中
바로, 이 책에서 20세기 미술의 지도에서 빛나는 점을 찍은 예술가들이 틀 밖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벌인 놀라운 모험을 추적하며 현대미술이 거쳐온 경로를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미술의 변환점에서 예술가들이 벗어던진 과거의 낡은 틀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찾아온 사고의 도약은 무엇이었는지’이다.
이때 책의 구성이 눈에 띈다. 전체 2부 5장의 구성으로, 변곡점을 이루는 지점마다 녹색 페이지의 한 페이지 안에 짧은 예술가의 이야기가 담기는데 여기서 저자의 문학적 감성을 엿볼 수 있다. 이때 한 인물이 어떤 사건을 겪고 그 지점에서 어떤 새로운 영감 또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지를 다루며, 그 인물은 어떤 예술가일지 또는 왜 그러한 기상천외한 일을 벌였는지 물음을 던진다.
그로부터 새로운 예술가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 이야기들은 공통적으로 어떤 예술가에게 스파크가 튀는 영감의 순간이었던 동시에, 멀리서 보면 거대한 현대미술사의 흐름 속 하나의 새로운 생성점이었다. 또한, 이러한 생성점은 기존의 미술에는 없던 ‘무언가’가 새롭게 던져지는 변곡점이었던 순간이다.
그 밖에도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내용을 보완하는 세 개의 꼭지들을 덧붙였다. ‘틀 밖에서 생각하라’에서는 한 장에서 다룬 예술가들의 경로를 한 번 더 깔끔하게 정리하고 그 의미를 되짚어본다. ‘시대를 보는 한 컷’에서는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20세기 주요 사회문화적 사건을 통해 전반적인 흐름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마지막으로 ‘현대미술 돋보기’에서는 본문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심도 있게 조명하여 미술사의 전체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책의 구성을 볼 때 미술사의 전반적인 흐름은 물론 그중에서도 변곡점이 되는 사건 및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꼼꼼히 그리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제 책 구성에 따른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자.
책을 읽으며
1부 ‘미술, 홈에서 빠져나오다’에서는 1,2장에 걸쳐 미술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살펴보며, 2부 ‘미술, 드넓은 세상에 펼쳐지다’에서는 3,4,5장에 걸쳐 고전미술에서 완전히 해방된 예술가들이 새롭게 열어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 1장: 그림, 다시 평면이 되다.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야수주의부터 입체주의, 절대주의, 그리고 추상주의로 넘어가는 부분까지. 그림에는 원근감 기법을 통한 공간감이 사라지고 색채와 형태의 해방을 이루며 완전한 평면의 추상으로 나아가는 역사를 담았다. 이때 눈으로 본 것을 재현하는 틀에서 벗어나 색채의 무한한 자유를 펼치기 시작한 그 시점의 변곡점을 둘러보았을 때 공통적으로 무한히, 그리고 부단히 작품의 형식을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다.
당시 미술 해방의 욕구 및 충동이 있었던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시대적으로는 산업혁명과 함께 고전주의를 탈피하려는 모더니즘으로의 변화가 있었고, 당시 화상과 수집가들이 비싼 값에 되팔기 위해 많은 가치 있는 작품들을 사들였으며 그만큼 화가들은 자신의 투자가치를 보여주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그 결과 예술가들은 작품을 그려내는 것에 있어서 억압을 느끼거나 부족을 느낄 때면 자기복제를 피하기 위해 부단히 변신을 꾀했다. 더욱 파괴적이고 실험적으로. 그리고 언제나 그런 극복의 순간에서 새로운 발상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미술의 시대의 흐름을 바꾸어 나아갔다. 당시에 휘몰아치는 사건 및 변화가 많아서 그런지 급변하는 미술사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 2장: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생겨난 미술의 흐름을 다룬다. 인상주의를 시작으로, 그와는 반대로 마음속의 뭔가가 밖으로 분출된 느낌의 표현주의, 그리고 초현실주의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추상미술로 들어가면서 예술가들은 점점 대상이 없는,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기를 시도했다. 보이지 않는 것 대신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를 그려내야 했고, 자연스럽게 ‘무의식의 세계’ ‘정신세계’에 입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무의식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또는 추상적으로 그려내는 초현실주의 미술이 도래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당시 많은 예술가들에게 ‘무의식의 세계’를 알려준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예술가들은 기꺼이 광기, 꿈, 비합리성의 세계를 작품 위에 드러내려 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이러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을 기분 좋게 바라보지는 않았다. 이유는 무의식의 세계 역시 보이지 않는 세계이기에 바깥으로 그려내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의식적인 노력이 불가피하며, 그렇기에 ‘무의식을 꺼낸다는 개념 자체는 난센스’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프로이트의 입장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 인상적이다.
예술가들은 집요하다.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달려든 초현실주의자가 시행착오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결국 시간의 문제일 뿐,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그 세계를 관객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길을 예술가들은 찾아낼 것이기에.
- 본문 p.135 中
다시 말해, 예술가들의 노력은 지각에 갇힌 미술을 해방시키는 것이었고, 머리로 이해하는 미술을 몸으로 느끼는 미술로 바꾸고자 한 것이었다.
◈ 3장: 처음부터 옳았던 것은 없다.
전쟁과 같은 시대적인 혼란은 예술에도 파격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20세기 후반부, 1960년대는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었던 추상표현주의에 이어, 이를 의식하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네오다다와 팝아트, 미니멀리즘과 같은 새로운 미술이 만개하였다. 이때 미술에서의 다양한 권위와 규칙이 무너지고 미술 자체가 재정의되기 시작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 어떤 창조 행위도 그 시작은 파괴일 수밖에 없다.
- 파블로 피카소
3장에서 등장하는 모든 예술가들과 예술운동은 모두 파괴적이었으며, 피카소의 말처럼 파괴를 통해 새로운 창조의 물결이 일어났다. 틀에 박힌 예술을 거부하고 예술과 삶의 경계도, 예술가의 지위로 없애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의 변화는 생활 방식에서도 큰 변화를 일으켰다.
다다처럼 예술을 통해 노골적 풍자와 조롱을 즐겼고 사회를 향한 과격한 도발을 일삼았으며 이는 대중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앤디 워홀의 팝아트는 상업미술의 이미지를 끌고 들어와 순수미술의 규칙은 허물어졌으며, 스텔라의 미니멀리즘은 추상표현주의의 과도한 의미 부여와 감정 과잉을 거부하고 회화나 조각은 물론 예술 작품을 사물로 만들었다. 이를 비판하는 물결로 생겨난 움직임이 ‘플럭서스’였는데, 예술의 거의 모든 것을 부정한 최강의 반예술운동이라 말할 정도로 가장 파괴적인 예술운동이었다.
플럭서스는 ‘흐름’이라는 뜻으로, 이 세상을 고착된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으로 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플럭서스 예술에서는 예술과 삶을 구분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으며 또한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 불분명한 경계 속 뻗어있는 다양한 예술의 얼굴과도 참 많이 닮았다. 핵심은, 플럭서스는 삶이 틀에 박혀 반복되는 것, 관계가 익숙해져 버리는 것, 기존의 성공이나 추억에 안주하는 것, 이 모든 종류의 고착을 넘어 다시금 앞으로 흘러나가는 삶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오늘날 코로나 시대에 추구해야 할 삶의 방식과 맞닿아있다. 불완전한 격동의 시대에 무엇이든 유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변화 속에서도 다시 적응하고 나아가기 위해 고착을 넘어서는 삶을 살라고 말이다. 어쩌면 이 책에서 말하는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의 핵심은 ‘플럭서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4장: 그 무엇을 가져와도 예술이 된다.
늘 보던 것이라 새로울 게 없었는데 어느 날 문득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 본문 p.260 中
타틀린은 ‘우리가 종교화를 성스럽고 신비롭게 느끼는 이유가 금속 장식 때문이 아닐까’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당시 기존 미술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틀린은 회화적 장식을 모두 제거하고 재료만으로 작품을 만들게 된다. 엉뚱하다고 할 법한 생각을 실제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구축주의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1914년 탄생한 구축주의는 ‘구성주의’라고도 하는데, 핵심 개념은 가공하지 않은 원재료만으로 만드는 미술이다. 과거의 예술가는 물감을 칠하든 돌을 깎든 재료를 가공하고 변형시키는 사람이었지만, 구축주의에 따르면 예술가는 드로잉을 할 필요 없고 조각을 할 필요도 없는 사람이다. 그저 원재료의 물리적 특성을 잘 살려내 배치하면 그뿐이었다.
4장에서는 미술이 회화와 조각이라는 형식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지평으로 뻗어나간다. 앞선 타틀린처럼 회화적 장식을 제거하거나, 예술가의 생각과 감정이 작품에 개입하는 것을 ‘해체’ 시키거나, 회화와 조각 없이 사람들의 주목만 받으면 공간 자체만으로도 예술이 되거나, 그림의 배경이기만 했던 자연이 예술 그 자체가 되기도 하는 등 당시 예술가들은 스스로를 회화나 조각의 틀에 가두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장소의 제약이 사라지고 동시에 예술가의 상상력에도 한계의 범위가 없어졌다.
◈ 5장: 결과물로서 작품은 없어도 된다
‘다른 걸 들고, 다른 행동을 해도 당연히 예술이 되는 거잖아!’ (p.332)
침묵도 음악이 된다. (p.334)
해프닝도 역시 일종의 퍼포먼스이다 (p.336)
마지막 5장에서는 ‘예술은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과감히 부수고 개념과 행위가 강조되면서 ‘그 어떤 행위도 이제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새로운 개념예술, 행위예술이 등장한다. 이제 예술가는 작품을 제작하는 제작자의 역할을 넘어서 ‘기획자’와 ‘연기자’와 같은 새로운 역할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책에서는 지금의 삶을 멋지게 기획하고 또한 신들린 것처럼 연기하는 사람은 곧 예술가라고 말한다. 결국 우리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틀 밖에서 생각하려는 이유는, 우리는 저마다 자기 삶의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 다시 말해 온전히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멋지게 살아내기 위해서이다. 그것이 곧 예술적인 삶이기도 하다.
책을 나오며
해당 책에서는 현대미술사를 다루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예술가들의 이름 및 미술사조가 등장한다. 그렇기에 초반부에는 살짝 방대하게 느껴지는 미술사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며, 무엇보다 처음 보는 예술가의 이름 및 미술 개념과도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부지런히 차근차근 읽다 보면 급진적이지만 다채롭게 일렁거렸던 현대미술사 속 변화의 물결이 잔잔히 밀려들어온다. ‘아 그래서 이런 일을 벌인 거구나.’하고 이해가 되기도, 또는 ‘어떻게 이런 생각이 번뜩였을까? 대단하다.’하고 감탄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특히, 이 책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예술이 생겨나는 생성점’들을 이어보면 몇 가지 공통점들이 보인다.
▶ 역사가 남겨준 모든 것들이 부질없이 느껴질 때 과감히 전통과 단절하고 새로움을 추구했다.
▶ 불편하고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들에 대해서는 반박하거나 파괴하였다.
▶ 이면에 숨겨진 강력한 고정관념을 뒤집었다.
▶ 스스로를 울타리 안에 가두지 않는다. 즉, 자신의 영역에 한계를 두지 않는다.
▶ 누군가의 말, 욕, 상황, 장소 등 무엇으로부터든 영감을 얻었다.
▶ 예술을 재정의하고 자기만의 미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 자신의 예술이 남들과 어떻게 다른지 증명하려 한다. .
▶ 자기복제를 피하기 위해 부단히 변신을 꾀한다.
▶ 온전한 ‘나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 완전히 자신의 영역에 몰두했다.
이처럼 지금의 불균질하고 다채로운 예술로 이르기까지 무엇보다 예술가들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우리가 예술에 주목하고 예술가들의 자취를 추적하는 이유는 먼저 예술가처럼 생각하기 위해서이며, 이어서 우리의 삶을 예술처럼 만들기 위해서다.
그대는 예술가다.
그리고 그대의 삶은 예술이어야 한다.
그러니 무작정 남의 뒤만 따르지 말라.
이제 그대가 가는 곳이 곧 길이다.
- 에필로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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