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세기 미술 지도 – 아트인문학 [도서]

25개의 생성점, 5개의 경로선
글 입력 2021.09.2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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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들을 이은 선들.


현대미술의 친절한 안내서와도 같은 이 책의 뼈대를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저자는 20세기 문화예술의 지평을 넓힌 25개의 중요한 순간들을 집어내고, 이 새로운 미술이 생겨난 순간을 ‘생성점’이라 일컬었다. 그리고 그 점들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면서 현대미술이 거쳐온 경로를 선명히 보여주는 5개의 ‘경로선’을 만들었다. 25개의 생성점과 5개의 경로선으로 만들어진 20세기 미술 지도는 현대미술이 과거의 미술을 해체하고 붕괴시킨 과정과 그 자리에 새로운 예술 양식을 도입해온 경로를 한눈에 보여준다.


저자는 약 100여 년에 달하는 현대미술의 역사를 단순히 시대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독자들에게 더 쉽고 일목요연하게 전달하기 위해 생성점이 만들어진 순간으로 찾아가 현대미술의 창조자에 이름을 올린 예술가들이 벗어던진 과거의 낡은 틀은 무엇이었는지, 이들에게 찾아온 사고의 도약은 무엇이었는지 면밀히 살펴본다. 책을 통해 예술가의 삶과 작품에 대한 정보와 지식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을 보는 눈을 일깨울 수 있도록 전체의 구조와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구성한 것이다.


 

어느 날 한 예술가가 깨닫는다. 그간 남들 뒤만 따라왔다는 것을. 그는 벽을 기어올라 홈에서 탈출한다. 드넓은 세상과 마주해 감격한 그는 영감에 휩싸여 과거에 없던 미술을 창조한다.


이로써 미술의 지평을 넓힌 그는 미술의 지도에서 빛나는 하나의 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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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 저자가 만든 20세기 미술 지도를 살펴보자. 먼저 지도에서 가로축은 ‘시간의 흐름’을 의미한다. 세잔에서 기원한 현대미술의 물줄기가 마티스, 폴록, 워홀, 뒤샹, 백남준 등을 지나면서 어떻게 변화해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세로축은 ‘중심과 변방’을 의미한다. 세로축의 가운데는 당대를 지배한 주류 예술을, 그 위로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탄생한 예술을, 아래는 그 외의 국가에서 나타난 예술을 표현했다. 저자가 오랜 시간 공들여 구상한 이 책의 골격 덕분에 난해하고 복잡해 보이기만 했던 현대미술의 흐름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잭슨폴록.jpg

 

 

이렇듯 저자가 공들여 찾아낸 다섯 가닥의 선들은 다섯 개의 키워드가 되었다. 이들을 다시 두 그룹으로 나누어 이 책은 총 2부, 5장의 구성을 취하게 되었다. 1부 [미술, 홈에서 빠져나오다]에서는 미술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살펴본다. 앙리 마티스에서 잭슨 폴록에 이르는 1장의 경로선 [그림, 다시 평면이 되다: 공간의 붕괴]는 원근법이 해체되어 캔버스 너머의 공간이 붕괴되고 완전한 평면에 이르는 여정을 보여준다. 새로운 미술이 탄생하기 위해 이전 시대의 산물인 재현으로서의 미술이 파괴된 것이다.


에른스트 키르히너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에 이르는 2장의 경로선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지각의 해체]는 주제 측면에서 재현의 대안, 즉 대상이 아니라면 무엇을 그려야 하느냐에 대한 모색을 보여준다. 과거 재현 미술은 ‘작품-지각-머리’로 이어지는 단순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면, 새로 생겨난 미술 감상의 구조는 ‘장소-감각-몸’으로 이어졌다. 미술에서 지각이 누리던 절대적 지위가 사라지고 보이는 것 너머를 추구함으로써 미술 구조를 변형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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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 <샘>, 1917(1950년에 다시 제작), 개인 소장/(C)Association Marcel Duchamp

 

 

2부 [미술, 드넓은 세상에 펼쳐지다]에서는 고전미술에서 완전히 해방된 미술이 부단히 자신의 지평을 넓혀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마르셀 뒤샹에서 플럭서스의 백남준에 이르는 3장의 경로선 [처음부터 옳았던 것은 없다: 권위 너머로]는 미술 자체가 재정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1부에서 탄생한 여러 상과마저도 부정하고 무엇을 어떻게 그리느냐의 차원을 넘어 미술의 권위 자체를 허물어버리는 탈권위의 미술을 보여준다.


블라디미르 타틀린에서 비디오 아트의 백남준으로 이어지는 4장의 경로선 [그 무엇을 가져와도 예술이 된다: 형식 너머로]는 미술이 회화와 조각이라는 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평으로 뻗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과거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예술이 쏟아지며 탈형식에 이르는 이들은 미술에서 더 이상 정착하지 않고 유목민으로서 나아간다.


앨런 카프로에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에 이르는 5장의 마지막 경로선 [결과물로서 작품은 없어도 된다: 물질 너머로]는 개념과 행위가 강조되는 예술, 즉 물질성이 매우 약해진 예술의 등장을 보여준다. 개념 및 행위가 중시되는 장면들을 통해 결과물로서의 작품을 뛰어넘는 탈물질의 경향을 알려준다. 이제 예술가는 작품의 제작자이면서 동시에 연기자이며 기획자가 된 것이다.

 

*


끊임없이 당대의 고정관념을 뒤엎고, 새로운 방향의 예술과 삶의 방식을 제시해왔던 '현대미술'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 140여 점의 도판들과 함께 5개의 경로선을 따라가다 보면 현대미술의 흐름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진다. 책의 탄탄한 내용과 구조에 어렵게만 느껴졌던 현대미술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특히 각 장이 끝날 때마다 3개의 꼭지를 덧붙여 내용을 보완했는데, 덕분에 시대와 함께 현대미술의 변화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틀 밖에서 생각하라’에서는 하나의 경로선이 갖는 의미를, ‘시대를 보는 한 컷’에서는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20세기의 주요 사건을 통한 문화 전반을, ‘현대미술 돋보기’에서는 본문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다루었다. 이해의 폭을 넓혀 독자들이 미술사의 전체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든 책의 긴밀한 구성은 마치 길을 알려주는 지도와 같았다.


『아트인문학: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은 20세기 현대미술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세밀하게 포착하여 복잡한 현대미술에서 길을 잃은 우리를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더불어 지난 역사를 발판으로 우리가 미래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140여 점의 작품들을 바탕으로 알려주는 인문 교양서이자 자기계발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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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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