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대 나 없는 가을을 미워하지 말아요 [음악]

가을에 듣기 좋았던 노래들
글 입력 2021.09.2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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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에는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여름은 길게 느껴졌고 가만히 있으면 춥지만 조금 움직이면 등에 땀이 흐르는 그 온도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봄으로부터 가을까지, 여름을 경유하는 동안에는 늘 도피처로서의 가을을 그리워했다.

 

정신 차려 보니 가을의 초입이다. 새벽 다섯 시에도 방이 밝아지지 않았고 산책을 나가기 위해서는 겉옷을 챙겨야 했다. 기다리던 것에 비해 환대해 본 적 없었던 가을이지만 올해는 이 계절에 정성을 다해 보기로 다짐하며, 가을에 버릇처럼 들어왔던 노래들을 뒤죽박죽 섞어 소개하려 한다.


 

 

가을, 저 별은 외로움의 얼굴

다린


 

 

 

그대 나 없는 가을을 미워하지 말아요

우리는 흘러가고 나는

지금도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으니

 

 

지난 여름에는 ‘라디오 몬스테라’라는 메일링 서비스를 구독했다. 한 달에 네 번, 다린이 이야기와 노래를 담아 메일을 전송하는 서비스였다.

 

빼곡하고 다정하게 적혀 있는 메일의 내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는지 눅눅한 여름을 보내고 난 뒤에도 다린의 여운은 가시지 않았다. 여운은 소강상태에 든 몸과 마음에게 따뜻한 바람을 불어 넣어 주는 것만 같은 것이어서 있는 그대로 좋았고, 이번 가을에는 다린의 음악과 함께 쉽게 행복해졌다.

 

‘가을’을 듣고 있으면 영원 불변한 것들에 의존할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고 그래서 아무도 없는 자리를 원망하지 않게 된다. 다린이 말하는 것처럼 나부터 ‘지금도,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으니’ 말이다. 순간의 최선이 전해졌기를 바랄 뿐이다.






그대 외로운 밤

어떤 의미도 되지 못한 채

사라지는 듯해도 


작은 후회 

안부처럼 돌아와 길을 묻지

너의 매일은

내일의 빛이었다고  

 

 

다린의 목소리는 가장 앞, 내세우고 있는 그 담담함 뒤에 다양한 감정들을 응축시켜 갖고 있다는 점에서 큰 호소력을 갖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 별은 외로움의 얼굴’을 듣다 보면 담담한 듯하다가도 슬퍼지고 슬퍼지다가도 다시 희망을 찾게 된다.

 

나의 상태가 너무 많은 결을 갖고 있어 담담해지기를 선택하는 과정과 다린의 ‘담담한’ 목소리는 어쩌면 비슷한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그대 외로운 밤, 어떤 의미도 되지 못한 채 사라지는 듯 해도’ 그렇지 않다고 노래하는 다린의 음악은 가을을 보낸 뒤에도 계속 듣고 싶어진다.

 

 

 

Falling Slowly, Lies

Glen Hansard, Marketa Irglova




 

 

뻔한 순간에 뻔하게 행동하는 순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것들이 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따뜻한 국물을 먹어 줘야 하고 여름에는 단내 나는 자두를 먹어 줘야 하는 그런 것.

 

영화에서는 무언가를 해야 하는 순간을 정해 놓지 않는 편이지만 <원스>를 만날 때만큼은 달랐다. 영화는 본 적 없지만 날이 차가워질 때쯤에는 <원스>의 메인 테마곡인 ‘Fallig Slowly’를 자주 찾아 들었었고 그 기억을 발판 삼아 춥고 비 오는 날 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따뜻하면서도 쓸쓸하고 영화를 채우는 음악들 역시 그러하다. 의도적으로 따뜻한 것과 쓸쓸한 것들을 동시에 찾으려 하는 마음이 피어오르는 이 계절에는 <원스>가 갖고 있는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성격이 딱 맞아떨어진다.




 

 

당신의 노래를 따라 부르겠다고 노래하는 ‘Falling Slowly’를 지나 lies에서는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다. 남자 주인공인 ‘그’가 전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회상하며 부르는 lies는 지난 사랑에서의 거짓된 마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에서 ‘그’와 ‘그녀’는 결코 작은 것이라 할 수 없는 감정들의 격동을 느끼고 그것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어 준다.

 

기댈 수 있는 어깨라는 것은 곧 그동안 해오고 싶었던 말들을 ‘해도 괜찮은 것’으로 만들어 주는 힘을 갖고 있다. ‘그녀’는 ‘그’에게, ‘그’는 ‘그녀에게’ 발언권을 건네 주고 음악으로 이야기한다. 시절이 묻은 노랫말과 멜로디는 또다시 쓸쓸하면서도 속이 풍족해지는, 다소 생경한 경험으로 우리를 이끈다.

 

 

 

처음 느낌 그대로, 난 별

이소라


 


 

 

잠이 안 오는 새벽에는 평소 관심 있어 했던 분야 하나를 붙잡고 끝없는 디깅을 하곤 한다.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정보의 홍수’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의 장점을 굳이 찾아보자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 속에 좋아하는 것들을 길어올리는 재미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느 날 새벽에는 이소라의 러브레터를 틀어 놓았고 그것은 취침을 위한 것이었지만 나는 그날 아침이 되도록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이소라의 러브레터를 광적으로 돌려 보기 시작했던 해의 가을에는 김광진 작곡, 이소라 작사의 ‘처음 느낌 그대로’를 귀에 딱지 않도록 들었다.

 

노래에서 이소라는 차갑게 대하고 혼자 있는 자신을 믿어 달라 한다. 그 누구보다 믿음이 절실해 보이는 이소라는 믿어 달라 말하면서도 ‘처음 느낌 그대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믿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가볍게 사랑한다는 말을 털어낼 수 없는 상태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서늘한 공기가 배로 와닿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014년 발매된 이소라 8집은 장르 구분이 ‘락’으로 되어 있다. 서정성을 대표하는 아티스트인 이소라에게서 락을 상상하기란 이질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소라는 8집에서 담담하고도 큰 몸짓(혹은 목소리)으로 그 전형성을 깬다. 이소라에게서 다양한 방식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해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삶과 죽음의 답없는 끝없는 질문에 휩싸인 채 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에 빠져 혼자 괴로울 때조차

별처럼 저 별처럼

난 별 넌 별 먼 별 빛나는 별

 

 

‘난 별’에서의 이소라는 기도하듯 가사를 읊조리다가 난 별이고, 넌 별이라 말한다. 하늘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가을에는 유독 하늘이 높고,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고 운 좋은 날에는 세다 지칠 만큼의 별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난 별’은 유독 깊고 까만 하늘, 그 속에 빛나는 별들을 자주 마주하게 되는 이 계절과 잘 어울리는 곡이다.

 

 

 

이틀 전에 죽은 그녀와의 채팅은

자우림


 

 

 

몇 년 전 가을에는 외출만 하면 비가 왔다. 화창한 하늘에 변덕처럼 비가 쏟아지는 날도 있었지만 우연히 ‘이틀 전에 죽은 그녀와의 채팅은’을 들었던 날은 달랐다. 세상의 종말을 앞두고 있는 것처럼 비가 왔다. 그날의 하늘에는 구름이 꽉 채워져 빛이라고는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고 비가 끝도 없이 쏟아졌다.


 

잠 오던 때쯤에 넌 내게 말했지

이틀 전에 넌 이미 세상을 떠났다며

싸늘한 자정에는 너와 얘기를

너와 얘기를 해 달라고 

 

 

이 노래에는 앨범 발매 년도인 1997년, pc통신 채팅으로 대화를 주고받던 시대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의 경계에서,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지는 ‘온라인 채팅’은 원인 모를 흥미와 공허를 동시에 남긴다. 싸늘한 자정에 나누는 대화와 나는 기억되고 싶다는 말.

 

비가 많이 내렸던 몇 년 전의 가을에는 이 곡이 남기는 이유 모를 공허와 우울이 더 깊게 와닿았다. 비가 오는 가을이 되면 이틀 전에 죽었다던 채팅 속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싶어진다.

 

이번 글을 기회로 들어왔던 음악들을 되돌아보며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가을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쓸쓸한 정취만이 가을의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가을이 가진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많은 것을 느낄수록 내 안이 풍부해지는 계절이다. 음악과 함께 가을의 여러 정취를 느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마친다.

 

 

[박이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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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김수지
    • 안녕하세요 작가님! 봄에는 사랑 없이 사랑 찾게 되는 노래나 극도로 발랄한 노래를, 여름에는 싱그럽고 템포가 빠른 노래를, 겨울에는 차분하고 온도 따듯한 노래를 듣길 선호하는 저는 유독 가을에는 어떤 음악을 들을지, 어울릴지 잘 모르겠다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글 속에는 제가 좋아하는 노래들, 이전에 듣고 좋아요 표시만 해둔 채 잊고 있던 노래들, 최근에 듣고 좋아하게 된 노래가 섞여있었어요. 계절의 정서와 특유의 분위기를 특정하는 건 쉽지 않지만 글을 따라가며 가을의 여러 모습 담은 노래들을 들으니 가을에 살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가을의 마음과 기분을 느끼게 해준 이번 글도 너무 잘 읽었어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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