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유년의 취미에 대하여

글 입력 2021.09.1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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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함을 잃고 경직되어버린 내 안에 숨을 불어넣어 주는 나의 유년의 바람들을 위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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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불쑥 그럴듯한 취미를 갖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무엇이 좋을지 고민하는 친구를 위해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단어들을 던졌다. 수영, 운동, 베이킹, 악기 연주. 조금 뻔한 단어의 두서없는 나열들은 즉각적으로 기각되었다. 공통적인 결격 사유는 꾸준히 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현재 지속해온 취미랄게 없는 나도 내 제안들이 썩 매력적이지 않다는 생각에 다소 찔린 얼굴을 감추며 웃어 보였다.

 

사회에 나와 새로운 사람들과 계속 만나면서 취미에 관해 답해야 할 순간들이 많아졌다. 전시회를 가고, 메모를 하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것. 정말 좋아하는 것들이지만 글쎄, 왠지 상투적일 뿐 정직한 답변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취미란 좋아서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들이 종종 나의 ‘일’이 되기 때문일까, 매일 그것들을 오롯이 순수한 마음으로 즐길 수만은 없게 되었다.

 

그러다 나의 유년 시절의 취미를 떠올렸다. 아주 단순하고 본능적이고, 특별했던 취미. 나의 영역과 세계를 견고하게 설정하던 순간들이 있었다. 인간이 아닌 것들과 교감하던 시간. 그야말로 내 유년의 취미는 우주적이었다.

 

그 시절 나의 취미는 쿰쿰하고 좁은 옷장 안을 찾아가 틀어박혀 있는 것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장롱은 안방 왼쪽에서 첫 번째 장롱이었다. 몸집이 점점 커지고 나서는 작은방에 딸린 벽장으로 보금자리를 옮겨야 했지만, 어쨌든 그 장롱은 거의 내 소유였다. 장판이 운 것처럼 울컥거리는 무늬가 이지러져 있는 장롱. 고전적으로 세공이 되어 있는 길쭉한 손잡이를 열어젖히면 빽빽하게 걸린 옷들 밑으로 자그마한 공간이 있었다.

 

잽싸게 몸을 접어 안으로 파고들면 옷가지들이 흔들거리며 제습제 냄새가 훅 퍼졌다. 끼익거리며 음산한 소리를 내는 문이 닫히면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할 일을 제때 안 해서 어른들의 동정을 살펴야 할 때는 실낱같이 가느다란 빛줄기를 남겨두곤 했다. 그렇게 정말 자주, 가만히 유영하다 할머니가 밥 먹으라고 부를 때 아쉬워하며 공간을 나섰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는 그곳을 애정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굳이 뽑아보자면 오래된 나무내음과 엄마의 가죽점퍼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때릴 때, 고조곤히 웅크리고 누워 까맣고 부드러운 밍크코트의 소맷단을 만지작거리는 일.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양손의 감각으로 가늠해보는 게 좋았다. 빛 아래서는 흔해 빠진 것들이 빛이 사라지면 낯설어져서, 알아볼 수 없는 것들을 알아내기 위해선 오감을 동원해서 탐색해야 했다. 명탐정이라도 된 듯이 정체를 구분해내는 일에 심취해 있었다. 그 애들도 그걸 기뻐할 거라고 혼자 확신하기도 했다.

 

나와 놀아주는 낯설고 다정한 옷장 안의 존재들은 늘 침묵으로 함께했다. 내가 실수로 할머니의 두꺼운 양장 원피스와 이모의 갈색 코트를 헷갈렸을 때도 핀잔 하나 없었다. 그 묵묵함과 잔잔함에 기대곤 했다. 부드럽거나 까끌까끌한 섬유의 촉감으로—여러 내음이 뒤섞인 독특한 향으로—내 움직임과 함께해주는 음 없는 가락으로 말없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웠다. 무언의 다정함과 무형의 안온함. 결코 질릴 수 없는 것들의 매력을 일찍부터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옷장도 벽장도 찾지 않는 나이가 되고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시작할 무렵에는 무無-에 관한 것들을 다 잊어버렸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잊는 것은 쉬웠고, 보이는 세계를 살피는 것은 벅찬 일이었기 때문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굳이 이름도 존재감도 없는 조각들에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눈이 보여주는 것들에만 충실했다. 그건 일종의 망각이자 세계의 고요한 파괴, 그리고 소꿉친구들의 실종이 동시에 일어난 거대한 비극이었다고, 십몇 년이 지난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내 몸을 장롱 안으로 밀어 넣기에는 이제 너무 커버렸다는 사실이 자못 슬프면서도, 살면서 다시는 가질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음을 실감한다.


가끔 <나니아 연대기: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떠올리며 나의 좁고 아늑했던 장롱에 대해 생각한다. 스무 살이 되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온 탓에, 나의 최초의 기억부터 함께해온 그 붙박이 벽장은 이제 유물이 되어 사라졌다.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밤에 눈을 감고 침대에 누우면 볼 위로 따끔하게 보드라운 밍크코트의 털 몇 가닥이 느껴진다. 제습제 때문에 건조했던 공기 중에 맴돌던 특유의 나무내음을 맡을 수 있다. 연탄 색으로 뒤덮인 시야 사이로 실금처럼 새겨진 빛 줄기 하나가 보인다. 특별할 것 하나 없지만 아주 특별한 취미가 이루어지던 공간을 나 혼자서 그렇게 기념하고 있다. 그 시절을 졸업하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유년의 취미 안에 머무르는 중인 셈이다.


남은 날들 동안 어쩌면 이 취미를 능가할 더 우주적인 취미를 찾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장롱과 옛 친구들은 나의 마음속에 살며 계속해서 풍차를 돌릴 것임을, 결코 지겹지 않을 노란 촛불같은 기억들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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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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