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피트 닥터 감독의 '업' [영화]

못다 이룬 꿈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글 입력 2021.09.1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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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칼'의 유년 시절 꿈은 찰스 먼츠와 같은 위대한 모험가였다. 찰스 먼츠가 했던 것처럼, 칼은 큰 비행선을 타고 파라다이스 폭포를 횡단하는 꿈을 꾼다. 칼은 자신과 같은 꿈을 가진 앨리를 만나 사랑을 키우고 결혼을 하게 된다.

 

긴 시간이 흘러, 앨리는 세상을 떠난다. 칼은 앨리와 함께 가기로 약속했던 파라다이스 폭포에 가지 못했다. 칼은 크게 상심하지만, 그의 처지를 위로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에게 남은 것은 앨리와의 추억이 담긴 집뿐이다.

 

칼은 고심 끝에 떠나기로 한다. 앨리와의 추억이 담긴 집에 수많은 풍선을 매달아 파라다이스 폭포로 떠난다. 순탄할 것만 같았던 칼의 여행에 변수가 생긴다. 노인을 도와 뱃지를 받고 싶어 하는 여덟 살 소년 러셀이 그의 집 현관에 머무르다 우연히 여행에 합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파라다이스 폭포에 안전히 도착할 수 있을까.

 

 

 

#1


   

극의 초반, 픽사 역사상 가장 위대한 5분이라고 칭송받는 칼과 앨리의 결혼 생활이 펼쳐진다.

  

대사 한마디 없이 아름다운 왈츠 선율에 맞춰 펼쳐지는 장면들은, 칼과 앨리의 결혼식에서 시작한다. 한없이 기쁘기만 할 줄 알았던 그들의 나날은 앨리가 임신에 실패하면서 서서히 먹구름이 드리운다.

 

칼은 앨리와 함께 꾸었던 꿈을 상기시키며 그녀를 위로한다. 그들의 사랑이 시작할 수 있었던 파라다이스 폭포를 떠올리며, 언젠가 그곳에 함께 가자는 약속을 한다. 여행 비용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저금을 시작한다. 하지만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가 나고, 태풍에 집 천장이 무너지는 일들에 의해 저금통은 무참히 깨지기 일쑤였다.

 

조금씩 나이를 먹자, 칼과 앨리의 저금통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의 꿈은 이미 먼 옛날이야기인 듯 희미해진다. 앨리가 먼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칼은 뒤늦게 꿈을 실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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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치여 젊은 시절의 꿈을 잊어가는 서사는 많은 영화에서 다루어져 왔다. 다른 영화들처럼 영화 <업> 또한 꿈을 잃지 말고 꼭 이루어야 한다는 정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지만, 칼이 찰스 먼츠를 실제로 마주하게 되는 순간부터 영화의 메시지는 경로를 살짝 바꾼다.

 

꿈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찰스 먼츠의 모습은 꿈을 이루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는지 묻는다. 자신의 우상이었던 찰스 먼츠의 악랄한 행동을 본 칼 또한 같은 물음에 빠진다.  칼은 이에 대한 해답을 앨리로부터 찾아낸다.

 

그녀와 함께 만들어온 책장을 넘기면서, 칼은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에게 남긴 메시지를 읽는다. '우리의 모험에 고마워요. 이제 당신의 모험을 떠나요.'라는 그녀의 메시지에 칼은 깨닫는다. 꿈을 향해 떠나지 못하게 자신을 발목 잡는다고 느꼈던 일상이 그녀에게는 매 순간 모험이었고 꿈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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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이 여행이었고 꿈이었음을 깨닫게 된 칼은 본격적으로 찰스 먼츠에 맞선다. 그의 집을 가득 채웠던 가구들을 땅에 내려놓은 채로 새로운 모험을 떠난다.

 

 

  

#2


 

칼이 앨리의 메시지를 보기 전까지, 그의 모습은 찰스 먼츠와 유사하다. 두 사람은 항상 인상을 쓰고 있는 표정과 꿈에 대해 집착하는 모습이 닮아있지만, 무엇보다 주거하는 공간과 여행을 떠나는 공간이 동일하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들은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은 채 꿈을 향해 떠났다.


이는 두 사람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찰스 먼츠는 과거의 영광에 얽매여있고, 칼은 앨리와의 추억에 얽매여있다. 두 사람에게 행복이란 과거의 모든 것들을 놓치지 않은 채 꿈에 도달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었다.


둘은 꿈을 이루는 날만 보며 살아가기에, 그 외의 것들은 의미를 잃는다. 찰스 먼츠가 생명을 해치는 데에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과 칼이 말하는 개와 희귀한 새에 집착하는 러셀에게 매몰차게 구는 모습은 동일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두 사람에게 행복은 결과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칼은 앨리 덕분에 결과가 아닌 과정이 모험이고 꿈이며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칼은 파라다이스 폭포를 뒤로 한 채 러셀과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지만, 찰스 먼츠는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추락한다.

 

 


#3



중요한 건 여행 그 자체이며 목적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삶이란 여행에서 전력으로 노력해도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없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원하는 곳에 언제 어디든 내릴 수 있는 찰스 먼츠의 비행선이 아닌,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풍선 달린 칼의 집에 몸을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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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업>은 꿈이 이루어지는 단 하루를 기대하며 다른 것들을 놓치기보다, 매일 일어나는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을 놓치지 않는 쪽을 권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진주알을 꿰어내듯 하나씩 우리의 일상에 풍선을 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풍선의 개수가 늘어갈수록, 파라다이스 폭포로 두둥실 떠나간 칼의 집처럼 어느샌가 우리도 꿈을 향해 떠나갈 것이다.

 

도착의 순간보다 떠나는 모든 순간을 사랑할 때, 여행은 계속되고 행복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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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균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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