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상하고 아름다운 옥토의 나라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9.12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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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이옥토는 정 반대에 있는 이야기를 한다. 그는 ‘YCK’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진은 상당히 교묘하게 거짓말을 하는 장르라고 생각하거든요. (중략) 이런 식으로 ‘이게 진짠가?’ 싶은 지점들이 생겨요. 이걸 통해 제가 의도한 대로 대상을 왜곡할 수 있죠. 이게 저는 매력적이었어요. 누구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정확하게 얘기 할 수 없다는 것.”


그의 말대로, 사진은 사진 고유의 방식으로 거짓말을 한다. 그것은 다른 어떤 매체의 방식과도 다르다. 누구나 회화와 조각은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관람한다. 그러나 사진을 볼 때는 이것이 솔직할 것이라고, 작가의 역할은 그저 포착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흘러가는 시간 중 하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그 순간을 제외한 다른 순간들은 포착하지 않겠다는 선택-즉 삭제를 하는 일과 동일하다. 그래서 사진의 거짓말은 교묘하다. 이러한 거짓말의 진실을 알고 있는 옥토는 누구보다 교묘하고 아름다운 거짓말을 해내는 포토그래퍼이다.

 

 


옥토에게


 

이옥토프로필크기조정.jpg

 


이옥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영 쉽지 않다. 나는 그를 적당하게 가까운 거리에서 이래저래 햇수로 5년 남짓 보아왔다. 그리고 5년 동안 그에 대해 3인칭의 관점에서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나 아닌 다른 것, 그 중에서도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원래도 두려운 일이다. 그것은 나의 시선대로 그 사람을 해석하는 일이고, 그 과정이 얼마나 투명하게 이루어질지 나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옥토는 내가 아는 한 누구보다 타인을 해치지 않으려 애써온 사람이므로, 나도 그를 해칠 수 있는 어떤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난 이 지면을 빌려 처음으로 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내가 투박하게나마 예술의 길을 걸어오는 데에 미친 그의 영향을 결코 모른 체 할 수 없을뿐더러,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부디 나의 시도가 그에게 어떤 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무얼 먼저 이야기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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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ucent' 중 일부
copyright ⓒ 2019 OKTO LEE. All rights reserved.

 


2016년 우리는 합정역에서 처음 만났다. 실제로 길었는지 어쨌는지와는 관계없이 내게는 한없이 길게 느껴졌던 합정역 2번 출구의 계단을 오르며 저 위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두 사람의 얼굴을 상상했다. 계단에서 어정쩡하게 인사를 하기가 싫어 오르는 내내 한 번도 위쪽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땅 위에서 옥토의 얼굴을 처음으로 마주하며, 계단을 오르느라 가빠진 숨이 그에게 닿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던 것이 기억난다.


B와 옥토와 나는 지금은 사라진 합정 경스시에서 초밥을 일인분씩 시켜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솔직히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그 때의 나는 사람과 마주 보고 밥 먹기를 무척 어려워했기 때문에 초밥집에 다찌 자리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밥을 먹는 상대가 팬심 가득한 마음으로 오랫동안 좋아한 작가님이었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하지만 옥토를 처음으로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했던 생각만은 또렷하다.


이 사람, 정말 꼭 자기가 쓰는 글처럼, 찍는 사진처럼 말하는구나.

나는 그를 만나고 단어를 하나하나 ‘밟아가며 말한다’는 게 뭔지 알게 되었다.


이옥토는 사진을 찍고 영상을 담으며 가끔은 글을 쓴다. 그의 시선은 서늘하거나 따듯하고, 적막하거나 멈칫거리거나 때로는 오랫동안 머무른다. 투명하고 엷고 유약한 것들은 옥토의 사진 속에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담는 옥토는 결코 유약한 사람이 아니고, 그가 사진을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이 유약함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나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피사체를 바라보는 옥토의 손과 눈이 얼마나 공고한지, 또 얼마나 다정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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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malin' 중 일부
copyright ⓒ 2019 OKTO LEE. All rights reserved.

 

 

그가 사진으로 그려내는 세계는 서늘하고 질량 없고 섬세하다. 그 성질은 특히 ‘결’을 담아낼 때에 드러난다. 물결, 살결, 꽃잎결과 같이, ‘들여다보겠다’는 다짐이 있을 때 포착할 수 있는 것들. 그의 시선은 사물과 풍경과 인물의 아주 내밀한 면을 보는가 싶다가, 때로는 겉으로 드러나는 면만을 세밀하게 보려는 시도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당신이 내게 보여주기로 선택한 것만을 보겠다는 다정하고 사려 깊은 선언이자 배려와도 같다. 굳이 보여주지 않은 것이 눈에 들어오더라도, 의도적으로 모른 척을 하고 당신이 보여주려던 것만을 주목하겠다는 이야기다. 옥토는 이런 일에 탁월한 작가다.

 

 


발 뒷꿈치를 들고 있는 사람


 

한 편 옥토는 사진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사진이 무언가를 감추고자 할 때 그 방식이 얼마나 교묘해질 수 있는지, 사람들이 어떤 것에 주목해줬으면 할 때 사진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누구도 상처 입히지 않을 수 있는, 무해한 사진을 찍고자 한다.


옥토가 타고난 예민함은 작품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 자신이 ‘담기는’ 입장으로 활동했던 시기는 예민함이 벼려지는 데 얼마간 영향을 미치기도 했을 것이다. 그는 찍히고 선택되고 노출되는 사람이 얼마나 물화되기 쉬운지, 카메라 렌즈가 만드는 위계의 무력감 속에서 피해자조차 피해인 줄 모르고 생겨내는 피해가 얼마나 많은지 옥토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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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ucent' 중 일부
copyright ⓒ 2019 OKTO LEE. All rights reserved.

 

 

어떤 아픔은 배타적이다. 그 아픔을 겪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내부와 외부로 가르고 배타적인 이해를 만들어 낸다. ‘자기 일이 되어봐야 안다’고들 하지만 이따금 그 문장이 이렇게까지 맞는 말이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대가 건네주는 이해와 위안의 깊이를 가늠해가며 받아들이는 스스로를 알아차릴 때는 속절없이 쓸쓸해진다.


그래서 유달리 배려심과 이해심이 깊은 사람을 마주하면 그들의 지난 날들을 상상하게 된다. 당신은 어떤 시간을 보내서 이런 마음을 다 알게 되었느냐고 묻고 싶어진다. 그리고 옥토와 옥토 사진 앞에서는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뒷꿈치를 땅에서 높이 띄우고 조심스럽게 걷는 옥토는 희한하게도 그 발걸음이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걸어온 사람처럼, 그게 자신에게 꼭 맞는 발걸음인 것처럼 걷고 말하고 찍었다.


누군가 그랬다. 어떤 일이 굉장히 쉬워보인다면 그건 일이 쉬운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일을 정말 잘하는 거라고. 그 동안 내가 본 옥토는 사진도 잘 찍고 영상도 잘 담고 글도 잘 썼다. 아무튼 딱히 못하는 게 없다. 사람을 한 발 먼저 배려하고 이해하는 일도 그에게는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사려를 앞에 두고 막연하게 이해하고 마는 것이다. 그가 타인의 고통을 기민하게 알아차리는 모습이 그저 한들한들 걷는 모습과 같아 보일 때까지 어떤 지난함이 있었을까. 자신이 겪은 괴로움을 바깥으로 분출하지 않되 타인을 헤아리는 데 쓰는 사람이 찍는 사진이 어떻게 유해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지나온 자리


 

2020년, 코로나19가 덮친 세상에서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잘 가누지 못하고 일상을 잃던 시기에 옥토는 'What we came through' 연작을 찍었다. What we came through. 우리가 지나온 것들. 옥토는 한창 지나는 중에 있는 분주하고 생생한 좌절, 분노, 우울보다는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온기나 냉기를 가만가만 쓸어 보는 사람에 가깝다.


아픔은 때때로 사람을 마비시킨다. 아파도 아픈 줄 모르게, 아픔을 인정하지 못하게. 그건 차라리 우리 몸의 방어 기제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아픔을 인정하는 순간 견딜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옥토는 아픔이 지나간 뒤 우리 몸에 남기는 것들을 깊게 들여다본다. 그 자욱은 우리가 지나온 아픔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것을 쓸어볼 때야 비로소 아, 내가 아팠구나, 깨닫게 되는, 그런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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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we came through' 중 일부
copyright ⓒ 2020 OKTO LEE. All rights reserved.

 

 

푸른 공기를 입고 있는 옥토의 'What we came through' 연작은 보는 사람의 숨을 고요하게 한다. 선명히 드러나는 뼈대. 오래 일한 누군가의 손등 피부 - 혹은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입술의 표면같은 질감을 가졌거나, 투명하게 그림자가 비춰 보이는 꽃잎들. 그리고 온 몸과 온 얼굴을 감싼 천과 그 안의 갑갑한 숨은 ‘지나온 것들’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눈앞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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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we came through' 중 일부 copyright ⓒ 2020 OKTO LEE. All rights reserved.

 

 

완치. 병을 완전히 낫게 함이라는데. 어쩌면 완치는 또 다른 병명일까. 나의 신체가 아팠던 시간에서 벗어낫다 한들 그 시간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을 지나온 신체-나는 여기에 있고, 죽을 때까지 이 몸 하나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이 영원하고 오롯한 절망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아픔이 지나갔던 자리에는 몸이든 마음이든 흉이 남는다. 흉을 가지고 살아갈 완치의 시간은 우리가 견뎌야 하는 또 다른 상처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옥토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았구나, 아니 오히려 다행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서로의 잔흔을 겹쳐보고 서로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는 경험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 경험은 공간적 거리와는 관계없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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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we came through' 중 일부 copyright ⓒ 2020 OKTO LEE. All rights reserved.

 


옥토의 'What we came through' - '우리가 지나온 것들' 연작은 코로나라는 팬데믹, 그리고 개인적인 재난 속을 제각각의 모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서 작가 개인이 겪은 시간을 보여준다. 이윽고 '우리'는 작가가 겪은 재난과 그 잔흔의 목격자가 되어 각자가 가진 흉터를 쓸어보게 된다. 그 행위는 만나본 적도 없는 누군가의 비슷한 흉을 쓸어보는 행위와 비슷하다.

 

결국 지나온 것들과 흉이라는 교집합으로 한 데 모인 옥토의 목격자들은 서로의 위안이 되어줄 것이다. 옥토의 사진에는 그런 힘이 있다. 그래서 옥토의 사진 속 세계는 현실에서 붕 떠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땅에 정말로 발을 착 붙이고 살아가는-그리고 살아가려는 사람이 담은 것이라고,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옥토의 나라


 

옥토가 담아내는 순간들은 그 누구도 짚어낼 수 없는 것이다. 물결과 사람과 꽃잎을 찍는 사람은 많지만, 그 중에서 옥토의 시선이 각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옥토라는 사람 자체가 너무나도 고유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진은 렌즈에, 또 찍는 사람의 시선에 여과되어 만들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옥토 작가의 사진을 보며 그가 보는 세상을 어렴풋하게나마 체험하게 된다. 그 여과가 이렇게나 기꺼운 이유는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 어떤 유해함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옥토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무해하고 자유로운 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무해함은 유약하지 않고 자유로움은 유해하지 않다. 참 희한하다. 이렇게 이상하고 아름다운 옥토의 세계의 목격자가 되어서 다행이다. 그것은 너무나 막연한 세상이지만, 아름답다. 앞으로도 그가 살아가며 보여줄 세계의 목격자로 남고 싶다. 아주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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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iss, copyright ⓒ 2021 OKTO LEE.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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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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